현재 우리 불교의 실정은 교화, 조직, 운영면에서 크게 위축되어 최악의 상태임을 알아야 한다.
해방후 38년간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불교는 그칠줄 모르는 시련과 간접적인 박해를 받아 왔다. 무엇보다 장기적인 내부분열이 큰 원인이겠지만 이러한 내부의 분열이 계속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외부의 큰 작용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그것은 남북이 사상적으로 적대시되어 있는 상태에서 대한민국은 자유진영 국가들에 의하여 힘의 균형이 유지되었다. 이 힘의 배경을 바탕으로 서식한 것이 서구종교요, 이러한 지정학적 특수성에 힘입어 종교의 자유를 최대한 일방적으로 보장 받으면서 전통 불교를 기술적으로 대중과 격리, 비방, 배격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침식한 것이 서구종교이다. 그 결과 세계전도사에 일찌기 볼 수 없었던 성장기록을 남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한국종교의 전도의 특수성은 국내정치와 외부의 강대국 세력과 피할 수 없는 함수관계 속에서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받아 온 것이다.
몇가지 예를 든다면 대한민국 수립 제헌국회 개원시 이승만 박사는 기독교 의식에 의한 기도를 강요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였으며, 그후 6.25동란 기간에 외국의 온갖 원조품을 대부분 교회를 통하여 들어오게 하는 정책을 써서 굶주린 민중이 교회로 몰리게하여 전란 중에 기독교의 전도기반을 구축케 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나라의 지도급 인사 행정은 기독교인을 기용함으로써 모든 정책면에서 기독교 국가를 연상케 하리만큼 철저했다. 여기서 역사에 길이 남을 불교와 내부분열을 가져오게 한 “대통령 담화”는 불교인끼리의 피나는 싸움을 시작케 한 제 1차 법난이었다. (이것은 후대 사가에게들 잘잘못을 논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1차 법난의 시기에 어부지리(漁父之利)격으로 성장한 기독교는 그 힘의 조직력을 이용, 후에 국가 최고영도자가 불교인이라 하여 온갖풍설로써 몰아 부쳤고 외국 원수란 사람이 방한하였을 때는 지나친 종교성을 보임으로써 의기양양한 그는 우리 대통령에게 「기독교를 신봉하는 것이 좋겠다.」는 웃지 못할 일이 있어 그 나라 유력지는 「국가원수가 상대국 국가원수에게 전도하러 갔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더우기 우리 불교가 잊지 못할 일은 지난 80년 10월 27일 타율적인 정화이다. 이 사건은 불교가 결정적 타격을 받은 제2차 법난이요 큰 정치적 외부작용이었으나 그 결말은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종교행정의 지속적 편파성, 기독교인들의 악의에 찬 비방, 언론의 편향적 보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제는 민족종교로서의 전통성마저 잃게되어 위험수위에 와 있는 것이다. 반대로 이 기간 서구 종교들은 년 100만 신도증가를 가져왔다고 호언하고 있으니, 어찌보면 약속된 일련의 일들이 아닌지…?
여기서 참고로 3년 전후의 우리나라 대표 종교의 신장을 비교하여 보고자 한다. (문공부통계, 일간신문, 주간종교자료)
교세신장(1979년-1980년)
불교
-. 사찰 : 8,022개(1979년) -> 8,082개(1980년)로 60개 증가
-. 승려 : 23,482명(1979년) -> 23,372명(1980년)로 110명 감소
-. 신도 : 13,390,975명(1979년) -> 13,091,571명(1980년)로 299,404명 감소
기독교
-. 교회 : 21,205개(1979년) -> 22,217개(1980년)로 1,012개 증가
-. 목사 : 21,205명(1979년) -> 29,321명(1980년)로 1,802명 증가
-. 신도 : 5,985,609명(1979년) -> 6,986,409명(1980년)로 1,001,200명 증가
이상의 종교신장 배교표에서 한국불교는 너무나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교화장소(포교당), 교화인(포교사), 교화대상(신도)의 수가 너무도 큰 차이로 변모하여 가고 있는 것을 명백히 볼 수 있다.
교회가 l 년에 1,000개소 이상이 서고 목사가 1800여명이 배출되고 일년에 100만 명의 신도가 증가되는 반면에 불교의 역비례적 현상을 볼 때 우리는 현시점에서 어떤 대안을 강구해야 할 것인가? 현대화된 교화방법과 조직관리, 능력의 부족, 교화활동에 필요한 재정 염출의 어려움, 다변화된 국제사회에서의 외부세계와의 단절, 설상가상으로 언론의 편파성, 지도급인사의 기독교적 성향, 공공연한 기독교의 도전 등 현실적인 어려움을 우리들 스스로가 해결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그렇다고 이러한 누적된 어려움은 일조일석에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불자들의 지혜와 사명과 염원을 모아 하나 하나 해결하여 나가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현 시점에서 불교인들은 신라의 불교가 유입될 때 어려움을 해결한 이차돈의 각오가 없이는 아니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