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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의 사명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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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돈연 1983년 07월 17호
불교와 불교도의 역할이 오늘날처럼 심하게 비판된 적은 없었다. 불교전래사의 긴 역사를 더듬어 볼때 오늘 한국에서의 불교활동처럼 시대적 좌표설정이 어려운 시기도 찾아보기 힘들다.
문화 또는 사상은 상호교류를 통해서 비판되고 변모해 간다. 두개의 상이한 문화가 충격적으로 부딪쳤을 때 어느 한쪽의 문화는 침체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상승해 간다. 이것은 역사의 발전논리이며 삶의 보편적인 질서이기도 하다. 갑오경장이후 이 땅이 받아들인 문화는 대부분이 비불교권의 문화였고 반불교적 성향을 갖고 있었다. 이에따라 기존의 도덕이나 사회관념은 계몽적인 의미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전통관념이 희박한 우리 문화의 어떤 측면처럼 기존의 모든 문화는 관념적으로 파기되고 실제적으로 소외되어 왔다. 그러한 문화 충격의 소용돌이 한 복판에 불교는 가차없이 휘말려 들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역사수용의 기간을 효과적으로 단축시키지 못한 불교 교단 내부의 갈등 때문에 불교활동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수행자와 포교자 양성이 제도적으로 뒷받침 되지 못했다.
역사의 바람은 불어오는 것이 아니고 일으켜 지는 것이며 정의로운 사회는 정복이 아니라 희생과 인내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문화의 전통은 굴곡을 이루며 발전한다.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고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다.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요구하며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인간의 정신이야말로 삶의 불변적 표상이다. 불교전래사가 천 육백 년이라는 시간곡선을 지냈다고 해서 그것이 명백한 전통의 축척력이 될 수만은 없다. 천 육백 년이라는 길고 느슨한 퇴적 속에는 반드시 역사가 지니는 후미진 뒤안길이 있기 마련이다. 새것과 헌것이 교차할 때 새것은 벌써 새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것을 기다리는 헌것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끊임없는 갈등이 기다리고 있으며 인내라는 긴 통로가 남겨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오늘날 한국 불교도들에게 지워진 사명의식은 갈등의 극복과 인내의 끝없는 여로만이 빛을 발하며 늘어서 있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떤 가르침이 필요한가, 그리고 그 가르침은 어디에 있는가, 어떤 모습인가.
경전과의 새로운 만남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렇지만 불교적 사회관을 형성하는 형식에 있어서도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있은니 그것은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사회비판정신이다. 성인의 가르침은 물론 포용의 극대화를 의미한다. 끝없는 자비이며 한량없는 희생이다. 선한 것에 대해서도 악한 것에 대해서도 성인은 명확하고 실천적인 모습으로 사랑과 인내를 베푼다. 그러나 그것만이 성인의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직접적인 행동의 비판으로 때로는 간접적인 설교를 통해 억제시키고 비평하는 것을 남기셨다.
현대사회에서 정치가 민중의 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국가의 이즘이 향상되고 있는 개발도상국가에 있어서 권력이 맺어내는 사회정치적갈등이 현대국가에 있어서 심각한 사회적 갈등의 요인이 되어왔다. 물론 불교 수행자는 권력이나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없다. 이러한 전통은 수세기동안 본의 아니게 불교가 국가권력과 아무 불편없는 관계를 지속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과연 부처님이 가르치신 사회비판정신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과정에 있어서 절대적 포용만을 요구한 것이었을까는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아함경의 많은 가르침들은 불교수행자는 비법(非法)이 행해지는 그 어떤 사회풍조에 대해서도 방관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장아함의 유행경에서 대신우사와의 정치문답이나 잡아함의 독재자의 노래에서 보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어느 사회비평서보다 훨씬 격렬하고 실제적이다. 혜택받지 못하고 찌든 삶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고뇌를 덜어주기 위한 수행인의 행동은 혜원(慧遠; 335~417 중국 동진때 스님)의 사문불배왕자론(沙門不排王者論)과 이조시대 백곡처능(白谷處能; 1617~l680) 선사의 긴 상소문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의 현실 속에서 이웃을 끝없는 자비정신으로 포용하고 설득해 가는 것이 불교의 정신이지만 그러나 사회에 대하여 새로운 비판정신을 가져야 함은 그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다. 이제 불교인도 긴 침묵의 시간 속에서 깨어나 불교정신에 의한 새로운 사회의식을 정립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