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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 가치관의 정립 下 – 사법인(四法印)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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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논단 - 도수 1983년 06월 16호
인간의 목적은 부처도 아니고 신도 아니며 오직 인간 자체이다. 따라서 인간에 의해 출현한 종교의 목적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고통과 대결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과의 투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종교적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은 언제나 이같은 일체개고의 상황을 해결코자 하는 것에 연결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며 그것은 곧 역사의식과 자기혁명을 획득하는 일인 것이다.

(4) 열반적정(涅盤寂靜)
이상과 같은 안간현실을 인식할 때 오늘날 요구되는 것은 부처가 아니고 보살인 것을 우리는 알수있다. 이리하여 자의식, 역사의식이 전혀 필요없을 때를 가리켜 우리는 열반적정의 시대라고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열반적정이란 결국 무아실천을 통해 체험되는 궁극적 경지를 종교적으로 표현한 말이기 때문이다. 흔히 “열반적정”하면 선(禪)을 통해서 얻어지는 정신적, 초월적, 신비적인 어떤 경지를 상상한다. 그러나 선 역시 인간에게 있어서 수단일 뿐이며 열반적정 또한 현실 밖에 동떨어져 있는 영역이 될수 없는 것이다.
번뇌가 바로 보리라고 하는 말은 이같은 열반적정이 자의식이나 역사의식에서 비롯되어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깨달음이란 인간적인 생의 진실을 명확히 주장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와 본연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열반적정은 생의 현실을 극복함을 강조하는 말하자면 존재와 당위의 합일을 꾀하는 실천적 이념인 것이다.
결국 열반적정을 지향하는 깨달음이란 완결이나 종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다 바르게 스스로를 연마해 가는 노력의지의 내적 확인이라 할 수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역사사회의 현실과 구조적 모순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은 인생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시급한 중생구제의 방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명실상부한 행복에 충격을 주는 일체의 요소를 제거시키는 것이 바로 열반적정을 향하는 바람직한 방향임을 우리는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3. 맺는 말
이상과 같은 불교적 가치관으로 볼 때 인간의 역사는 고(苦)의 극복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그것은 의지의 행사여부에 따라 그 본래적 가변성을 촉진시킬 수 있으며 그것이 연기적 공동체의식에서 발현되어져야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유(有)에 대한 거의 선천적인 시각이 조정되지 않는 한 기대하기가 어려움을 엿보게 되었다. “유”에 집착함으로써 자의식, 소유의식이 싹트고 결국 불화와 가치관의 혼란까지 빚어졌음을 인식한다면 유(有) 가운데서 무(無)를 보고, 무가운데서 유를 볼 수 있는 그런 혜안(慧眼)으로써 우리는 열반적정의 단계과정을 밟아 나가야할 것이다.
여기에 사홍서원(四弘誓願)의 당위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그러고 그 방법상에 있어서 잘못 왜곡된 불교적 가치관도 조정시킴으로써 그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종교적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불교는 이 시대 우리 민족의 대과제인 남북분단의 실상을 직시하고 아울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중생의 고통의 진상을 파악하여 이 시대 민족이 요구하는 종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소수의 기득권자와 야합하여 교단발전을 꾀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불교적 가치관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일일 것이며 결국 불교는 「인간의 길」이 아닌 「지배자의 길」을 안내하는 그런 기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불교적 가치관을 정립하는 걸은 어떤 형체의 권력 일지라도 그것을 절대화시키는 것과 투쟁함으로써 가능해 지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