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불교음악에 대하여
우리는 이때까지 불교음악으로써 범패를 어산(魚山)이라 하기도 하고 인도(印度 또는 引導) 소리라고 불러왔다. 범패는 가곡, 판소리와 더불어 한국 전통음악 가운데 3대 성악곡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불교음악은 국악 가운데서도 주로 성악에 국한되는 음악을 말하는데 오늘날 흔히 관현악으로 자주 연주되는 영산회상곡(靈山會相曲)도 본래에는 성악곡이었는데 이조시대에 와서 그 가사는 탈락되어 오늘날에는 마치 관현악을 위한 음악이라고 생각되기 쉬우나 사실은 영산회상보살이라는 성악곡인 것이다. 범패는 장단과 화성이 없는 단성선율(單聲旅律)이며 부처님께 재(齋)를 올릴 예 부르는 의식음악이다.
대체로 범패가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로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것은 법흥왕 15년(528)이며 진평왕 15년(613)에는 황룡사에서 고승을 위한 백고좌(百高座)가 베풀어 졌다고 하나 범패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경덕왕 19년(760)에 월명스님이 자기는 향가만 알지 범음(梵音)은 잘 모른다고 한 말에 미루어 보면 이미 그 당시에 범패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범패에 관한 가장 정확한 기록으로는 현재에도 남아있는 하동 장계사의 진감국사 대공탑비인데 그 비문에 의하면 진감스님은 서기 804년에 당나라에 유학 갔다가 830년에 돌아온 후 현재의 장계사인 옥천사에서 많은 제자에게 범패를 가르쳤다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들어온 범패는 고려시대에 불교와 더불어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어장(魚文)들의 계보가 전할 정도로 성행 하였으나 이조에 와서 유교가 국교가 됨에 따라 자연 불교음악안 범패는 쇠미하여 갔다.
그러나 이 범패의 가락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가곡과 정악(正樂)인 아악(雅樂)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같은 8세기에 서양의 그레고리안(Gregorian)성가가 서양음악의 원류이듯이 범패는 불교음악으로서 뿐 아니라 우리 전통음악의 원류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범패는 인도에서 발생한 음악임에는 틀림 없으나 언어의 구조가 다른 중국으로 전래되어 그 본래의 맛을 잃었고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온 중국화된 범패는 중국인의 언어 속에 들어 있는 운율 즉 성(聲)이 무시되어 중국과도 사뭇 다른 우리나라 특유의 음악이 되었는데 그것은 고대로 내려오던 토속 음악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래 노래부르고 춤추기를 좋아한 민족이라고 옛 역사서가 전하고 있는 바 범패가 들어 오기 전의 음악이 적잖게 범패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을 능허 짐작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범패는 단순한 불교음악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고유한 음악으로 불교계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 보존의 차원으로 연구 되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