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국의 축제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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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 여연
1983년 05월 15호
남국의 황톳빛 태양이 종일 지글대다가 뱅골만으로 사라져 가면 망고나무 숲 사이로 떠오르는 가득 찬 달빛, 그 빛들은 바다로 와서 해인(海印)을 이루고 온 누리와 인간의 마음에 평온한 사랑이 흐르 듯 아늑히 젖어 내린다.
보름이 되면 스리랑카(Srilanka)사원(寺院)들은 ‘보름날의 축제’ (Full Moon Day)를 벌린다.
보름밤의 둥근 달이 산등성이를 살프시 떠올라 한국의 백자 항아리처럼 가득차 올 때면 이곳 콜롬보(Colombo) 시내는 술렁술렁 축제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마침내는 넓은 사원의 잔디밭에는 축제 인파로 범람하는 강물이 된다. 필자가 이곳에 와서 세번 째 맞는 보름날. 강가라 라마야(Gangara Ramaya Temple) 라는 큰 절에서 보름날 축제를 볼 수 있었다.
축제의 모습은 코끼리 백 마리에 온갖 황금 보석을 치장하여 옛날 왕조시대(王朝時代)의 화려했던 사원 행렬을 빌린 축제였다. 긴 머리에 햇불을 달아맨 청년들이 우리나라 농악에서 상모를 돌리 듯 불덩어리를 돌리면서 시작되어 그 다음 차례엔 어린 동자들이 이곳 특유의 의상을 입고 단조로운 리듬이면서도 꽤나 정열적인 남국 특유의 북을 치면서 뒤따른다. 그 리듬과 함께 커다란 코끼리 위에 부처님 사리탑을 안치하여 사리를 모시고 지나가면 또 불꽃과 북의 가락 그리고 코끼리를 탄 왕족과 승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행렬의 양쪽 길 위엔 저 높게 걸린 달빛이 무색하리 만큼 휘황한 불빛(코코넛 껍질로 만든 햇불)이 마당극의 한 장연을 연상케 했다. 코코넛 햇불 덩어리를 따라 밤새워 지치도록 이 묘한 향연을 보면서 수많은 군중들의 슬픈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풀잎에 이슬이 내리고 달이 이즈러져 뿌옇게 달 그림자가 밀림의 숲에 가라앉아도 그들은 돌아갈 줄 모르고 현란한 장식과 불빛 속에서 넋을 잃은 채 더딘 걸음을 옮겨 다니며 행렬의 뒤를 잇따랐다. 흑인에 가까운 까만 피부, 마른 체구, 부시시한 가슴의 털, 아래만 겨우 가린 이상한 치마 등 모두 삶의 지치고 고달픈 땟자국들이 줄줄 흐르는 모습이었다. 저 사무치는 황홀한 불빛의 향연과는 너무나 극단적인 단절감. 이상한 열매로 만든 짜고 매운 음식을 손으로 으깨서 먹으며 껍을 씹거나 야자수의 물을 마셔서 갈증을 달래면서 그들의 행렬은 끝없이 흘러갔다.
오랜지빛의 빛나는 가사를 걸치고 있는 승려와 하얀 의상을 입은 왕족들이 코끼리 위에서 군중을 내려다보는 오만에 가득 찬 모습. 그것은 고달픈 군중과는 너무도 상이한 권위로 들끊는 모습이었다. 막대한 돈을 투자하여 무려 서너달을 준비하여 벌린 축제, 심지어 코끼리를 장식하기 위해서 전기 모우터까지 동원하여 온통 깜박등으로 번쩍이는 찰라적인 화려함. 이것이 민중을 위한 향연이라면 그들은 이 축제 속에서 그들의 고달픈 삶을 얼마나 위안받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각기 상이한 문화 속에서 그들이 살아 온 민족의 숨결과 전통과 인습을 현상적인 물량의 가치로 분별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에 있어서 종교가 그 만족의 현실에 무엇을 해야하는 것인가? 그러고 자비와 사랑을 앞세운 수많은 세계의 종교가 인류에게 무엇을 베풀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자하는 것이다.
양극단적인 종교의 부조리, 모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 어떤 무리의 종교국들은 정치의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여 세계의 도처에 평화란 이름을 위장하여 전쟁을 일으켜 그들 자국의 이익을 취하고 진리를 은폐시키고 있다. 또 어떤 무리의 종교국들은 고급 무당이 되어 약소국들에게 경제적인 착취를 감행하고 헐벗은 만중에게 사랑의 빈껍질을 팔고 있는 것이 이 시대의 종교 현실이다.
전쟁, 질병, 가난, 소외받은 민중, 소유로부터의 끝없는 욕망을 이데올로기를 통해 개인의 삶을 안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체제 이러한 우리의 역사 현실이 갖고 있는 엄청난 문제들은 무엇을 통해 개선되고 극복될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들의 해결은 저 사무치게 빛나는 축제의 불빛도 아니고, 끝없는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도 아니며, 다구나 공동사회의 물질분배도 아니며, 그렇다고 종교가 팔고 있는 관념적인 사랑도 아니다.
이러한 현대 우리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뚜렷이 나 자신도 답을 내릴 수 없다. 다만 위대한 스승들이 가르치고 간 진리를 관념적인 것이 아닌 실제의 행동으로 실천하여 사람 사람이 자비가 충만해지고 사랑이 넘쳐흐를 때, 좀 더 바람직한 세계국가가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진정한 축제이며 구원의 길이며 우리가 바라는 낙원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할 수 있겠다.
축제에서 돌아오는 길에 짤랑거리는 동전 몇 잎을 나무 밑에 앉아 졸고있는 거지에게 던져주면서 내 마음은 끝없이 무거웠다.
-스리랑카, 동양문화 연구소에서-(Orient Culture Studies Devaslimi travamaya Iveyawetiya kiribath-gos Kelaniya Srilan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