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과 수면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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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15호 - 지오
1983년 05월 15호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언제나 머리가 맑아야 한다. 머리가 맑지 않고 근심 걱정으로 우울하면 화두참구(話頭參究)가 잘 되지 않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음식물을 섭취해야 하듯이 수면도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잠을 자더라도 언제나 일정한 시간에 고르게 자는 것이 좋다. 잠을 법도에 넘치도록 자는 사람은 도(道)에 들어 갈 수 없는 것은 규정된 사실이다. 그 반면에 공부 하기 위해서 억지로 수면 시간을 자기의 체력에 지나치도록 줄이면 도리어 공부하는데 이익보다 손해가 더 많아진다. 또 잠을 너무 적게 자면 자신의 의식에서 파생되는 피곤함과 게으름이 수반되어 해태한 마음이 나기 쉽다. 그러므로 선을 참구하려는 초보자는 우선적으로 하루에 4~6시간의 일정한 수면 시간을 정해 두고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른 자세로 참선하는 사랍은 수식관(敎息觀)의 방법과 화두(話頭)의 순숙(純熟)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수면 단축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되므로 억지로 수면을 단축시키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수행상에 있어서 화두를 잡드리고 수면을 단축시키는데는 호흡(수식관)이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호흡을 고르게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화두에 일심 (一心)을 집중시킬 수 있고 수면을 스스로 단축시킬 수도 있다. 선을 참구하는 초보자일 때는 밤늦게까지 좌선한다고 앉아 있다가 새벽 늦게 얼어나거나 아예 새벽 정진에는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 정진 시간에 빠지는 일이 있으니 저녁 늦게까지 있다가 아침 늦게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정한 시간에 일찍 자고 새벽 일찍 일어나서 맑은 정신 아래 화두를 잡드런다면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파곤할 때 큰 용맹심을 내지 않으면 게으름만이 기회를 기다라고 있기 때문에 육체적인 피곤함이 있을 때는 아무리 피곤하다고 하더라도 더 한층 힘을 내어 저녁 정진을 하고 나면 피곤함과 나태해지려던 마음이 사라진다. 그뿐만 아니라 피로에 지침 상태에서 수면에 들면 수면 시간을 조절하지 못하고 마냥 잠 속에 헤메면서도 잠다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자는 속에서도 잠재의식의 발동으로 피곤함을 더하게 되는데 이러한 피곤함을 풀어주는 데도 큰 힘이 된다.
마음이 밝고 상쾌할 때는 혼침이 없지만 마음 어느 한 구석에 어두운 그림자인 밝지 못한 마음의 작용이 있으면 잡념이 일어나고 그 잡념에 의하여 산란한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잠은 잠념과 망념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수마(睡魔)의 망념 덩어리를 쫓는 데는 끝없는 용맹심으로 정진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고 수단이다. 여기에서 부언하고 싶은 것은 수면 시간을 정해 두었다고 해서 반듯이 그 시간을 지키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잡드리는 마음을로 시간의 관념을 떠나서 정진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혼침과 산란에 빠지지 않고 선열(禪悅)에 찬 정진을 할 수 있음을 밝히고 싶다.
우리 나라의 모든 선원에서는 연중(年中) 두 차례 각각 7일 간을 용맹정진 기간으로 정하여 이 기간에는 완전히 잠을 자지 않고 산중스님 모두가 정진에 참여 한다. 이때 보면 평소에 힘써 정진한 사람과 그렇지 아니한 사람을 육안으로도 분별할 수 있다. 펑소에도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타파하기 위한 정진에 목숨을 걸고 바른 자세로 정진한 사람은 7일 정도의 용맹정진은 아무런 부담없이 화두상에서 노닐 수 있다. 용맹 발심하여 정진하는 사람에게는 정해진 수면 시간이 필요없다. 혹 정진을 위하여 일초나마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원력에 의하여 등과 옆구리를 바닥에 붙이지 않고 앉아서 정진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을 장좌불와(長坐不歐)라고 한다. 이렇게 정진하는 사람을 볼 때 용맹심의 발로에 찬사를 보내지 않올 수 없다. 그 반면에 앉아서 혼침에 빠져 졸음을 도반하고 있는 것을 볼 때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러나 초학자로서 선을 참구하는 사람은 알맞게 수면을 취하고 나서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용수철이 튕기듯이 일어나 화두를 잡드리는 것이 참선하는 사람의 기본 자세이고 마음 가짐이니 초학자들은 꼭 지켜야 할 규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