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예술에 대한 산견(散見)
예(藝)라는 말은 원래 농업용어로써 종자를 심는다는 말이다. 인간의 심성(心性)의 밭에다 체험에 의하여 생긴 여러가지 질서를 가진 아름다움을 심는 일을 중국인들은 예라는 글자로 표현하였다. 인간은 단순한 세대의 교체밖에 없는 동물과는 달리 인간의 삶의 기록인 역사를 만들었고, 그 속에 진선미(眞善美)를 기록하였다. 진은 종교와 철학과 학문을, 선은 윤리와 도덕을, 미는 예술을 각각 탄생시켰다. 이 세가지는 각기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작용하였는데, 진선미가 잘 조화된 종교예술은 조화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종교예술품은 진과 선의 이상을 향하고 있으나 그 표현의 수단으로 미적인 방법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인 것이다. 그 예로써 석굴암의 본존불을 보면, 그 자비롭고 아름다운 자태는 그냥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그 모습이 숭고하고 종교적인 것임을 우리는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예술은 단순히 미적인 쾌락만이 아니고, 그 미적인 쾌락 위에다 그 종교가 가지고 있는 정신을 불어넣을 때에만 진정한 종교예술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예술은 마땅히 불교정신에 입각한 작품이라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불교정신이 표현된 작품 속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적인 이념을 찾아내어 감명을 받고, 법열(法悅)을 느껴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고, 믿는 마음을 일으키는데, 불교예술의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종교예술은, 종교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임을 인식해야만 한다. 종교예술품이 감동과 법열을 줄 수 없는 예술품이라면 이미 그것은 종교예술품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예술을 하는 사람은 단순한 기능공이어서는 안 된다. 그 종교정신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함은 물론 남 다른 사명과 종교적 법열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나간 우리의 역사 속에서 찬란한 불교예술품이 출현한 시기에는 항상 위대한 불교정신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할 때 종교예술은 얼마나 불교정신과 깊은 관계가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음악의 일반성(-般性)
예술 가운데서도 음악은 우선, 보는 시각예술인 미술과는 달리 듣는 청각예술이다. 청각예술은 소리를 매개체로 하여 전달되는 예술이다. 소리에는 듣기에 아름다운 소리인 고른 음과 듣기에 거북한 시끄러운 음이 있다. 대부분의 음악은 아름다운 고른 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귀에 아름다운 고른 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음악은 아름다운 소리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음악 속에는 시끄러운 음악 즉 불협화음(不協和音)으로 더욱 더 효과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국악에서의 가창(歌昌)은 아름다운 음성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약간 쉰 목소리 같은 소리를 더욱 훌륭한 목소리로 치는 것을 보더라도 꼭 아름다운 소리만이 음악이 되는 유일한 요소라는 생각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음들은 일차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기본 요소인 것이다. 그 기본적인 음을 재구성하고 그 음에다 새로운 의미를 주고, 채창조해 내는 일을 음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음악은 단순한 음이 아닌 것이다. 공자님은 「논어」에서 “짐승에게는 다만 소리가 있고, 사람에게는 음이 있으며, 성인(聖人)에게는 악(樂)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도 음악은 단순한 음의 구성이 아니라, 여러가지 조화와 정신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음악의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은 각 시대와 각 개인과 각 사회와 각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그것은 그 환경과 역사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서양의 음악교육에만 치우쳐 달려 온 우리나라 음악교육의 귀(耳)로는 불교음악은 너무나도 비음악적 일런지도 모르겠다. 아뭏든 음악을 이루는 기본 요소로는 이 밖에도 음의 장단, 음의 높낮이, 음의 어울림, 음의 빛깔들과 또 이것들을 바탕으로 작곡, 연주, 감상하는 일 등 많은 기본의 틀을 가지고 음악은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