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암 다층석탑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인사의 명소와 유물 - 편집실
1984년 04월 26호
원당암의 보광전(普光殿) 앞에 점판암의 소형 다층석탑과 석등이 있다. 이러한 공예적 수법으로 조형된 탑은 신라말에서 고려에 걸쳐 유행했던 양식으로 금산사의 육각 다층석탑 등과 더불어 몇기에 불과하다. 현재 남아있는 석탑은 점판암의 석질이 약해 파손 또는 결손된 부분이 많고 대체로 고려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원당암의 다층석탑은 창건 유래나 양식상으로 볼 때 신라말(9세기 말)의 작품으로 생각되는 것으로 현존하는 것 중에서 가장 연대가 오래되고 우수한 것으로 들고있다. 지금 남아 있는 원당암의 다층석탑은 높이 약 2.4m의 탑으로, 화강암의 삼층대석 위에 점판암의 일층기단과 10매의 옥개석만이 쌓여 있다. 기단부의 대석을 화강암으로 조성한 것은 석질이 약한 점판암의 석탑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옆의 석등의 경우도 대석은 화강암으로 되어있고, 다른 모든 점판암탑의 대석은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있다.
대석 위의 일층 기단은 상하에 갑석이 있고, 그 갑석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다. 기단부의 네 기둥은 옥석으로 깍아 세우고 사면에 점판암의 판석을 붙였다. 다른 일반 석탑과 같이 사리 장치를 봉안했던 자리일 것이라고 추측할 뿐, 그 속에 남아있는 유물은 아무것도 없다.
그 위에 10매의 옥개석이 쌓여 있는데 탑신은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정상에 노반과 복발을 나타내는 일석이 놓여 있다. 10층의 탑 역시 구조상으로 볼 때, 9층과 10층 사이에 2~3매의 옥개석이 빠졌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원당암은 신라 40대 애장왕이 해인사를 짓기 위해 왕3년(802)에 해인사 큰 절에서 마주 보이는 비봉산 아래 원당암을 창건한 것이다. 그러나 원당암의 원래 이름은 봉서사(鳳棲寺)였다. 51대 진성왕(眞聖王)이 위홍각간이 죽자 그를 혜성대왕(惠成大王)으로 추존하고 해인사를 왕실의 원찰로 하고, 봉서사를 대왕의 원당으로 삼아 별칭 원당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점판암의 석등은 희귀한 것으로 원당암의 석등은 화강암의 6각 지대석 위에 점판암의 하대석을 놓았다. 그 위에 4자 높이의 6각 간주를 세웠고, 위에는 석등의 상대석만 두개 남아 있다. 석등의 지대 및 하대석이 6각으로 되어있는 것은 흔치 않으나, 이 역시 금산사 6각 다층석탑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석등의 화문 역시 금산사 6각탑의 조각에 비해 훨씬 아름답고 또 원당암의 다층석탑의 연화문은 금산사 탑과 동일한 신라 말기의 유형을 따르고 있다고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