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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설명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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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설명 - 편집실 1984년 03월 25호
세 눈 달린 대왕을 만나
-사간장경(寺刊藏經)의 유래-
해인사는 법보(法寶)사찰로 불린다. 그 까닭은 여기에 고려대장경이 봉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은 국간장경과 사간장경으로 구분되는데 사간장경을 해인사에 봉안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적인 일화가 전해진다.
경상도 합천땅에 이 거인(李居人)이란 사람이 살았다. 집안은 비록 가난했으나 성품이 온순하여 동네사람들이 그에게 이서(里胥 : 요즘의 면장과 비슷한 직책)의 소임을 맡겼다. 어느 해 가을 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세눈 달린 강아지가 길가에 버려져 있어 집에 데려다가 길렀다. 이 거인은 세눈달린 개를 무척 귀여워했는데, 3년째 되는 어느 날 앉아서 해를 쳐다보며 병도 없이 죽었다. 그는 개의 시체를 관에 넣어 묻고 제물을 차려서 제사 지내기를 마치 자식이 죽은 것처럼 하였다. 그 다음 해 이 거인이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다. 거인이 저승에 갔는데 세눈 가진 대왕이 높은 대 위에 앉아 있었다. 좌우의 관리들과 옥졸들이 모시고 둘러선 것이 마치 나라의 임금이 조회를 보는 듯 하였다. 왕이 거인을 보자 곧 뛰어 내려와서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 주인께서 웬 일이십니까? 나는 몇 해 전에 명부에서 허물이 있어 개의 몸을 받고 3년 동안 귀양살이를 할 때 주인의 후한 대접을 받고 다시 와서 복직되었습니다. 이제 뜻밖에 주인을 다시 만났으니 어떻게 그 은혜를 갚아야 하겠습니까?」 하면서 영접하여 자리로 안내하였다. 거인은 그때 비로소 지나간 일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이 천한 것이 본래 배운 것도, 아는 것도 없는데 장차 명부에서 묻는 말을 어떻게 대답하면 되겠습니까?」「주인은 내 말을 잘 들었다가 그대로 대답하십시오」 하는 대왕의 말에 거인은 머리를 숙여 일러주는 말을 듣고 나서 사자를 따라 염라대왕에게로 갔다. 염라대왕이 묻기를 「너는 인간 세상에 있으면서 어떤 인연을 지었는가?」 「저는 젊어서부터 동네 일을 맡아보느라고 별로 착한 일을 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큰 불사(佛事)를 지으려 하다가 갑자기 부름을 받고 들어 왔으므로 마음에 늘 안타까운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일을 하려다 이루지 못하고 왔는가?」「제가 듣기로는 불법이 귀중하다 하기에 그것을 판에 새겨서 널리 유포하려 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염라대왕은 곧 판관에게 명하여 귀신의 명부에서 거인의 이름을 없애게 한 후, 문밖까지 따라 나오며 이승에 다시 나가거든 못 다한 일을 하라고 당부하였다. 거인이 물러 나와 세눈 왕에게 고하니 왕은 반가이 맞이하면서 이렇게 부탁하였다.
「주인은 일이 커짐을 걱정말고 이제 돌아가면 종이로 책을 매어 문방에 가서 권선문(劃善文)을 하나 써달라고 하십시오. 그 제목은 〈팔만대장경 판각 공덕문〉이라 쓰고 관청에 가서 도장을 받아 놓고 내가 나가기를 기다리십시오」거인이 승락하고 물러나면서 기지개를 하고 깨어나니 그것은 한 바탕 꿈이었다. 그는 꿈에서 시킨대로 권선문을 만들어 두고 기다렸다. 그때 마침 궁중에서는 두 공주가 병이 나서 자리에 누웠다. 하루는 별안간 부왕에게 말하기를 「속히 대장경 화주를 불러 주십시요 그렇지 않으면 저희들은 죽고 맙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곧 나라안에 명을 내리니 거인의 일을 미리 알고 있던 합천태주는 곧 거인에게 권선문을 가지고 궁궐로 가게 하였다. 공주는 거인을 보자 「화주는 그동안 무사하셨습니까? 나는 세눈왕인데 주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찾아왔습니다」라고 다시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분이 저번에 저승에 들어 왔었는데 저승에서 대장경을 판에 새겨 유포하라고 도로 내 보냈사오니 원컨데 임금께서는 큰 시주가 되시어 이 일을 성취하십시오 그리하시면 공주들이 무사할 뿐 아니라 나라가 굳세어지고 임금도 무명장수할 것입니다」 왕이 일을 승락하였다. 그러자 세눈왕은 거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공주의 몸에서 떠나갔다. 그제서야 공주들의 병이 완쾌되고 본정신으로 돌아와서 일어나 절하고 말하였다. 「부왕이시여, 저승에서도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데 하물며 이승에 있는 우리가 귀중한 불사를 소홀히 해서 되겠습니까?」 왕은 거인을 잘 대접하고 사재(私財)를 보시하였다. 나라안의 여러 양공(良工)을 모으고 거제도에서 나무를 구하여 대장경을 새기게 한 뒤 가야산 해인사에 모시고 열두 번의 경찬회를 베풀었다. 그후 이 거인 부부는 편안히 오래 살다가 극락왕생하였다. 〈해인사 약수암 벽화〉

*지금도 혜인사 경학원(經學院)에는 역대 고승들의 진영과 함께 이 거인의 영정도 함께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