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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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의 명소와 유물 - 편집실
1984년 03월 25호
해인사에는 오백나한도라 불리는 화첩이 보관되어 있다. 그 정식 명칭은 <어제정관붕오백존나한책(御製丁觀鵬五百尊羅漢冊)>이다. 화첩의 발문에 의하면 중국 청나라 건융황제(乾隆皇帝)가 보리수 잎을 구하여 당시의 유명한 화가 정관붕으로 하여금 그 잎에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화첩은 모두 27매로 병풍처럼 접게 되어있고, 한 장의 크기는 가로 31.5㎝, 폭 24.1㎝로 총 길이는 661㎝이다.
이 화첩의 내용은 제일 첫장에는 연화 좌우에 사십이수관음을 그렸고, 다음 장부터 오백 명의 나한을 각장마다 이십분씩 각각 다른 형태로 그렸다. 마지막 장에는 사천왕상을 보리수 잎에 그려 붙이고, 다른 일면에는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정사하고 마지막에 발문이 붙어있다.
해인사지에 의하면 제2차대전 중에 일본인에 의해서 우리나라에 반이되었다가 광복 이후에 시중에 흘러나온 것을 1947년 당시 주지 환경(幻鏡)스님이 매입한 것이고 한다.
환경스님의 회고록에는 문교부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불교 문화재는 박물관보다는 사찰에 보관되어져야 한다고 관계부처에 건의하여 해인사에서 인수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당시 스님의 꿈에 일주문에 많은 대중 스님들이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오백나한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한은 아라한의 준말로 윤회를 벗어난 자, 악을 떠난 자, 또는 마땅히 존경받을만한 자라는 뜻으로, 원시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오백이라는 숫자는 부처님의 제자 오백 비구를 말한다. 여기에는 부처님 입적 후 왕사성 칠엽굴에서 행한 제일결집 때에 참여한 오백의 비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되나, 오백나한의 명호에 후세의 스님들도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후세에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오백나한의 신앙이 성행하게 되었고, 사경(寫經)은 경전상에서 경전의 서사, 수지 독송의 공덕을 말하고 있으나, 초기에는 경전의 전수를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인쇄술이 발달된 후에는 국가의 안위나 조상의 명복을 비는 하나의 신앙적인 형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