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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의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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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어록 - 편집실 1984년 03월 25호
구지 화상이 작은 암자에 살고 있을 때, 어느 날 실제니라는 니승이 찾아왔다.
암자 안에 들어오더니 머리에 쓴 삿갓도 벗지 않고 손에 쥔 석장을 쿵쿵 찧으면서 구지가 좌선하고 있는 둘레를 세번 빙빙 돌면서, 「한마디 할 수 있다면 갓을 벗을 테요!」하고 세번 연거퍼 말했으나 한마디도 대꾸를 못하니까 그대로 나가 버리려 한다. 구지는 그만 「곧 해도 저물텐데 쉬고 가시오」 한다. 결국 또 말문이 막혀 아무 대꾸도 못하고 말았다. 니송은 그 길로 가 버리고 말았다. 그만 어이가 없어진 구지는 이윽고 울화통이 치밀어 다시 수행길을 떠나리라 마음먹고 나그네 길 차비를 한 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자 한밤중에 꿈속에 산신이 나타나 「네가 여기를 떠날 건 없다. 내일 산 보살이 찾아와 너를 인도해 주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과연 다음 날 천룡화상이 찾아왔다. 당장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그랬더니 천룡화상이 잠자코 손가락 하나를 우뚝 세워 보였다. 선기가 무르익었던지 구지는 그 손가락을 보는 순간 홀연이 대오할 수 있었다. 그런 뒤로는 누가 무슨 질문을 해도 불쑥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는 것이다.

원오가 수시하기를 화엄 철학에는 매우 심오한 이론이 깃들어 있다. 한 점의 티끌이 날아올라도 그 속에 온 대지가 포함되어 있고, 한 떨기 꽃이 피어도 그 영향으로 온 세계가 흔들린다. 그런데 그 티끌이 일지 않고 그 꽃이 아직 피기 전일 때는 이 우주의 묘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옛 말에도 한 타래의 실을 어느 한 군데만 잘라도 모두 끊어져 조각나고, 또 한 타래의 실을 어느 한 군데만 염색해도 모두 물들어 버련다고 했지만, 지금 그렇듯 시비, 선악, 정사, 곡직의 갈등을 싹 끊어 버리고, 참된 자기를 이끌어 낸다면 높고 낮음이 따로 없고 앞과 뒤의 차이가 없어져 절대의 경지에서 각기 스스로의 참 면목을 당장에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혹시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는 다음의 글을 잘 살펴두라.
·본칙 (本則)
여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구지 화상은 누가 무슨 질문을 하건 그저 손가락 하나만 세워 보였다.
송(頌)
구지 노화상의 대작, 썩 마음에 든다. 이 넓은 우주 어디에 그만한 이가 있으랴! 일찍이 망망한 바다에 띄워 놓은 구원의 널빤지같은 구지의 손가락 하나 캄캄한 밤바다에서 눈 먼 거북같은 숱한 운수납자들을 건져 주었네. 〈벽암록 제19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