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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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시명
1984년 03월 25호
신라의 고승 석덕인 원효스님께서는 그의 “수행자에게 주는 글”에 보면 깊은 골 푸른 숲은 수도인의 거처할 수도장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뿐 아니라 옛 부터 우리 조상들은 산을 신성하게 생각해 왔으며 산을 정신적인 고향으로 우리 선조들은 그 속에서 삶의 지혜와 덕성을 기르고 맑은 정기를 받으며 살아 왔다. 인도인들이 인도인의 위대한 국민정신을 히말라야의 영봉에서 이야기하듯이 한(韓)민족은 그 정신적 얼을 백두산에서부터 이야기 해 왔다. 각 민족이 이렇듯 산을 사랑하는 까닭은, 산은 우수한 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산은 온갖 숲을 거느리고 작은 시내를 거느리고 새들과 짐승들을 데리고 살면서도 언제나 묵묵하고 너그럽고 점잖은, 그러면서도 엄한 대장부와도 같은 기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마음이 울적할 때나 괴로울 때나 먼 산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참 삶의 의미를 배우고 또 산으로 와서 그 덕성을 몸소 체험해 가곤 한다.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산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이다. 금강산,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등 그 이름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산이 많다. 그런 고준하고 이름 난 산말고도 이름 없는 작은 산들도 다 한결같이 아름답다.
이러한 아름다운 산에 정신적인 수도장인 사원이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은은한 종소리와 맑은 목탁소리가 들리고 산수유 꽃이 핀 긴 토담을 가진 한국의 전통적인 절이 있으므로 한국의 산은 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마치 크고 아름다운 괴석 옆에 핀 한떨기의 난초가 있으므로 괴석은 괴석대로 난초는 난초대로 멋이 있다고나 할까? 산에 그윽한 숲과 절이 있는 것은 우리들의 고단한 삶에 커다란 위안이며 마음으로만 느끼는 정복(淨福)이 아닐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아름다운 산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절까지 포함해서 차츰 차츰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이란 명목 아래 국민들의 오락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관광개발은 당국의 주도 아래 강행되어 왔던 결과로 이미 불국사, 해인사, 법주사 등지에서 치료할 수 없는 상흔을 남겨 놓았고 그 여세를 몰아 전국 고찰로 그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는 사실이다.
관광적 측면만을 강조하고 사찰 고유의 환경조건을 도외시하는 개발 계획은 성스러워야 할 고찰을 관광자원화하고 수도에 전념해야 할 스님들을 관광풍물로 전락시켜 용맹정진의 도량을 유흥장화하고 있음은 극히 우려 할만하다 하겠다. 곧 이는 사찰을 관광 자원화 함으로써 고유한 불교의 전통적 정신과 그 의지를 함몰시키고 주변 자연 환경의 보전이라는 점에서도 신중을 기해야 하며 개발이 가져오는 획일성을 배제하지 않고서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과오를 범하게 될 것이다. 급속한 산업화의 진행과 더불어 급증된 인구와 그에 따른 관광지의 무모한 개발은 경승지를 마구 훼손하였고 문화재 보호라는 미명 아래 사원의 외형만을 보존하는데 치중하여 종교 생활의 현장으로써의 진면목을 도외시 한 결과 수도 생활의 본령이 무시되어 사원은 수도원이 아니라 한낱 구경꺼리가 되고 있다.
사원은 청정한 수도 도량이요, 동시에 신도들의 신앙생활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에 성역으로써 보장되어야한다. 그것은 전통 문화의 보존은 물론 정신적인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사원 스스로가 그 필요성을 절감해야겠고 사부대중은 우리의 성지 (聖地)를 보호 육성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산으로 들어와야 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고 산이 들려주는 그윽하고도 푸근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지는 잎새의 소리와 바위틈으로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들 속에서 우리의 근원적인 삶의 목소리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당국은 국립공원을 만들어 주기 전에 먼저 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국민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 산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더 높고 깊은 골짜기를 가진 산처럼 너그럽고도 엄한 국민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네의 산만큼이나 많았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