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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지켜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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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성원 1995년 10월 164호
무더위와 함께 시작했던 한 달 동안의 하안거 해제 방학도 벌써 끝나 버렸다. 어제는 여름 이불을 챙겨 넣고 겨울 이불을 꺼냈다. 오늘은 문에 설치한 방충망을 뜯어내고 문종이까지 바르고 나니 벌써 올해도 다 가 버린듯 허전한 생각이 든다. 열심히 살지 못한 나 혼자만의 부끄러움일 게다.
이번 만행중에 중부권 일원에 홍수로 인한 피해가 무척 심하여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우리 해인사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돌아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각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불과 몇 달 전에 불국사 석굴암과 함께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의 문화재로 지정 받은 장경각의 수다라장과 법보전 지붕에 비가 새어서 비닐로 흉스럽게 덮어 놓았다.
몇 해 전부터 팔반대장경 전산화 작업과 병행하여 보존위원회가 신설되어 경판과 장경각의 보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말이다. 가을 바람에 지붕 위의 비닐이 펄럭이는 소리가 마치 옛 스님들의 꾸짖음으로 들려 왔다. 방학 동안 누가 해인사에 관해 묻기라도 하면 마치 내가 주인인 양 당당히 자랑하곤 했는데 ---

지난 방학은 수다라 편집실에서 주관한 구산 선문 순례를 시작으로 보냈다. 해제일 사시공양을 실상사에서 하는 바쁜 일정으로 시작되었는데 , 삼박사일 동안의 순례 일정의 마지막 순례지는 사자산 법홍사 적멸보궁이었다. 참가 대중 모두 삼복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백팔 참회와 더불어 무사히 회향하였다.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끝까지 참가 대중이 잘 화합하였고, 여법하게 모든 일정이 진행되어서 더욱 깊은 감동으로 남는다.
순례의 근본 취지는 구산선문의 발달과 더불어 한국 선불교의 뿌리를 찾아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더하여 이번 순례중에는 불교 문화재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구산 선문의 전래와 더불어 우리 나라에서도 승려의 화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그와 더불어 선사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이 본격적으로 건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선사들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가 세워졌고 이직도 초창기의 많은 부도와 탑비가 선문 개산 사찰에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순례 대중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산적해 있는 불교 문화 유산은 한국인으로서 , 불교도로서 자긍심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유물 한점 한점에 살아 숨쉬는 듯한 그 역사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는 선사의 가르침과 장인들의 숨결이 천 년의 세월을 넘어와 우리들의 윗전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러한 감동은 순례자가 되어 직접 역사의 현장에 가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물론 폐사자의 적막함은 또 다른 감상으로 돌려야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금 진정 얘기하고픈 것은 나의 주관적인 감상이 아니다. 우리의 불교 문화 유산 자체의 역사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에는 한결 같은 찬탄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 문화재들의 보존 관리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특히, 많은 수의 부도탑이 훼손되어 있었고 부도탑의 상륜부도 망실되어 있었다. 신라후대와 고려 초의 역사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친 부도와 탑비들의 비문이 망실되어 역대 조상들의 뛰어난 가르침을 찾아 먼 순례의 길을 나선 우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다.
각 사찰마다 문화재의 유지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개개 사찰반의 재정과 인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불교 문화 유산 관리가 필요하다.
이번을 계기로 국가 문화재 가운데 불교 문화재의 비율을 보니 칠십 퍼센트쯤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전체 문화재 가운데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건수로 구해 본 것이고, 실제로 문화재 총량으로 볼 때는 팔,구십 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고려자기 한 개도 문화재 한 점이지만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도 한건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재 유지 관리비 예산의 지출 현황에서 불교 문화재 유지 보수에 소요된 비용은 터무니없이 적게 지출되어 있었다. 물론 문화재 건수에 비례하여 금액을 지출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지금 불교 문화재의 보존 관리 상태를 보면 차라리 지금 비율보다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사실 이러한 것은 모든 승려와 불자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살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인들의 문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산 선문 가운데 하나인 강릉의 굴산사지에 갔을때의 일이다.
사찰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몇몇 석조물만이 남아 한때 웅장했던 굴산사의 위용을 지켜 가고 있었다. 특히,산문을 개창한 범일 선사의 부도로 추정되는 부도(보물85호)는 농가의 한 모퉁이에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 보니 부도를 해체하여 다시 쌓은 흔적이 역력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시 쌓을 때 뒤바뀌었는지 각부분의 이귀가 잘 맞지 않고, 돌의 재질도 달랐다. 그래서 촌로에게 부도에 관해 물어 보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스님 , 옛날 이 절에 스님들이 이천명이나 살았지만 지금은 어디로 떠나버렸는데 떠나는 기념으로 이것(부도탑)을 쌓았나 봐요?” 그리고 자랑삼아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일제 때 일본인들이 와서 이것을 무너뜨려 놓고 가버렸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내가 걱정이 되어 지서에 신고했더니 다음날 순경들이 와서 이렇게 다시 쌓았어요.” 촌로가 어찌 알랴? 인본인들이 이 먼 곳까지 와서 왜 부도탑을 무너뜨렸는지를! 우리들의 이러한 무지함에 편승해 일본은 대다수의 탑과 부도를 무너뜨리고 사리함을 가져갔던 것이다. 선사의 사리는 답답한 섬나라의 욕심 많은 수집가의 장물함에 있는데 우리는 또 다시 어디에다 절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불교 문화재에 관한 경각심이 고취되지 않는다면 유지 보수에 도움을 받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보존자체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얼마전 송광사의 국사 영정 도난사고는 사찰의 힘만으로 불교 문화재를 지켜 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러나 우리들의 일정중에는 절망적인 얘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이니었다. 한국부도의 최고 걸작품이라 해도 손상이 없을 국보 57호인 철감 선사의 부도탑이 있는 쌍봉사의 명부전 시왕은 비록 국보나 보물로 지정 받지는 못했지만 니름대로 큰 가치를 지녔는데 이것을 지켜 온 신도들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주지 스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지금주지 스님이 오기 전에 머물던 대처승 주지가 사찰의 유물들을 몰래 숨기고 있음을 알아차린 신도와
스님들이 주지 몰래 명부전 시왕을 일일이 사진 찍고 위치를 그려 나름의 대장을 민들어 가며 지켰다고 했다.
뒤에 그 주지는 명부전에서 내려오다가 넘어져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얼마뒤 열반했는데, 지금도 마을에서는 삼보정재를 잘 관리하지 않은 과보를 받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화자되고 있다고 한다.
다른사찰의 문화재 관리 문제를 고민하다가 돌아와보니 이제 세계인의 문화재가 된 국보52호 장경각이 비가 새고 있으니 나의 이번 해제철 만행은 뭔가 앞뒤가 뒤바뀐 것 같은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삼경종이 울련 지 꽤나 지났는데, 나 아닌 또 누군가가 장경각에 스며드는 빗방울을 걱정하며 밤을 지새우는지, 잠들지 않은숨결이 불꺼진 관음전 저켠에서 조용히 들려오고 있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