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히 비가 내린다. 청태낀 옛 기와와 탑전 위로, 옥잠화 하얀 목에도 비가 내리고, 달 뜨면 사운사운 젖어 웃던 박꽃이 조롱박으로 풍성하게 매어 달린 넝쿨 위로 바람도 타지 않고 내라는 비. 지난 무더위의 기억을 씻듯 들뜨고 어지러운 상념을 가라 앉히려 고르게 적시며 비가 내린다. 심연의 울림을 들어 보아라. 네 속에 울리는 다이몬의 소리 ‘지금 이 순간 깨어 있는가 , 한 발을 딛고 또 한발을 내어 디디며 거두고 내딛는 이 순간! 그대 어디에 있는가 . 지금 감정의 상태 그리고 웅직임 향기를 맡고 소리를 듣고 물체를 보고 촉감을 느끼고...
들이 쉬고 내 쉬는 호흡을 알아 차리는가. 발자국의 숫자를 헤아리고 있는가. 생각의 작용을 일어나는 즉시 알아차림으로써 경계에 따라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변하고 사라지는 현상을 여실히 성찰하므로 삼법인을 체특하였다고 하셨다.
세존의 설산에서의 육년 고행을 경전에서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싯달타 태자는 숲속에 고요히 앉아 선정을 닦되 히루 쌀 한 숟가락과 참깨 한 숟가락을 먹거나 쌀 한낱, 깨 한 알을 입에 넣고 앉아 있었다. 옷은 겨우 몸을 가리는 베옷 한 벌이 전부였으며 몸을 씻거나 머리를 깎지도 않았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겨울이나 여름이나 같은 모양으로 한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자 살은 다 말라 버렸고 오직 종잇장 같은 살갗이 뼈를 감싸고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 손으로 몸을 만지면 털이 말라 떨어졌고 배를 만지면 문득 등뼈가 만져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마른 나뭇가지처럼 앉아 있노라면 나무하러 온 아이들이 쑥대로 콧구멍도 찔러 보고 귀도 당겨 보고 흙과 먼지를 끼얹기도 하였다.
부처님은「청정도론」에서 해태와 혼침을 이기는 길을 다짐하시기를 `기죽어 힘줄 뼈만 남아라! 이 몸에 살도 피도 말라 붙어라! 장부의 끈기(Thama),장부의 원기(Viriya), 장부의 정진(Parakkam-ma)으로 이루어야만 될 것을 이루지 못하고서 어찌 남겨둘‘ 힘이 있으랴!’ 고 하신다. 피골이 상접하고 힘줄과 피가 다 타버려 죽는 한이 있어도 정각을 이루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맹세하시고 조용히 생명의 호흡이 아랫배에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을 성찰하며 마침내 열반을 얻은 것이다.
가는 비가 서서히 바람을 타기 시작한다. 차츰 세어지는 빗줄기에 젖어 보면 낙엽귀근落葉歸根의 철리가 깊숙이 내려 앉는다. 옛 고가古家의 처마 끝과 옥개석의 유선이 만나는 구도의 이쯤에 서서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상념을 본다.
무상無常, 무아無我, 고苦! 열반의 네 가지 덕인 상락아정常樂我浮의 전도願倒를 퇴치하는 방법으로 신수심법身受心法의 사념처관四念處觀을 쓴다. 별상념別想念의 첫째는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부정不淨으로 관하는 관신부정觀身不浮. 여기에는 다섯 가지 부정이 있다. 부정모혈父精母血의 붉고 흰 것이 합해져 몸을 이루니 종자부정種子不浮이요, 모태에 의탁할 때 금방먹은 밥을 저장하는 생장生臟 아래와 오래된 음식을 저장하는 숙장熟順의 위에 있어 항상 더러움을 훈습하니 주처부정住處不浮이며 혈육 등 서른여섯 가지 물物이 합성해서 몸을 이루는 연고로 자체自體부정, 대소변 등 아홉 구멍에서 늘 더러운 물物이 흐르는 자상自相 부정, 사후에 무너지고 부어터져 썩어 문드러져 일진一塵도 청정한 것이 없다는 구경부정究竟不淨이다. 구사론과 우법소승에 나오는 명칭이 조금 차이가 있다. 다탐중생부정관多貪衆生不淨觀이라 하여 미묘한 색상광택을 탐착하는 현색탐顯色貪에는 푸르등등 하게 썩어 가며 농혈로 문드러지는 육신을 관하게 해서 무상을 대치한다. 용모의 아름답고 고움에 탐착하는 형색탐形色貪에는 나뒹구는 해골과 호랑이, 이리의 밥이 되어 뜯기운 육신을 관하므로 대치한다. 미묘하게 부드러운 피부 등에 탐착하는 묘촉탐
妙觸貪에는 사체가 부어터져 썩어 기는 위에 바글거리는 버러지들을 관하게 해서 세번째 탐을 대치한다. 거지동작居止動作에 탐착하는 공봉탐供奉貪에는 나무 막대기와 같이 죽어 있는 시체를 관하게 해서 무상한 몸뚱이를 생각하게 한다.
능엄 오권에는 부처님께서 우파니사타에게 부정관을 관하게 하여 색진원통色盡圓通을 얻게 한다. 두번째로는 마음에 느끼는 감각어 고苦임을 관하는 관수시고觀受是苦. 셋째, 마음 감정의 상태 움직임이 항상함이 없는 줄을 관하는 관심무상觀心無常. 넷째는 육경을 대상으로 육근이 받아들이는 대상이 실아가 없음을 여실히 관찰하는 관법무아觀法無我.이 사념처관四念處觀을 통해 삼법인三法印을 얻게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수행은 지금 이 순간에 철저히 깨어 있으므로 또 그렇게 되도록 계속 수행함으로써 나를 알게 되고 그리고 지금 나의 육근 작용과 연관된 우주의 실상을 알게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불교를 안다는 것은 인생과 우주의 섭리를 아는 것이다.
백오십 광년 전에 떠난 별빛이 지금 이 순간 우리와 만나는 엄청난 시간의 거리, 우주의 무한궤도, 허널리한 우주 광겁의 공간을 가르지르는 푸른 유성. ‘어머니 태 속에 들기 전 너 어디에 있었는가.’ 섬광처럼 가슴을 쳐 들어오던 그 말을 만난 이후 평범한 삶의 통과의례는 의미를 잃었다. 아득한 터널을 지나 회오리같이 빨려 가던 그 곳은 어디였을까. 횡橫으로는 시방에 가득 찼고 수(竪)로는 현재 미래가 끝이 없다는 횡편시방 수궁삼제橫偏十方竪窮三際의 쯤에서 그 무엇으로도 영원을 알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막을수는 없었는데.
시월의 강江 앞에 서면 누구든지 침묵할 일이다. 수섬과 같은 사유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번민하고 오랜 침묵을 통해 맑은 정신으로 물갈이를 해야 한다. 푸른 강물에 씻은 듯한 맑은 얼굴, 짜랑짜랑한 가을 볕에 하얗게 바랜 듯한 인품, 깨끗하고 깨끗해서 더 무엇을 보탤 수가 없는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
한생각 맑은 것이 이 도량이니 항하의 보탑보다 수승하여라
보탑은 마침내 무너질 때 있겠지만 한생각 맑음은 마침내 정각을 이루네.
문수보살 口
* 지난호에 평등덕平等德이 평간덕平竿德으로, 바사론이 비사론으로 잘못되었음을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