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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도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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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방 한담 - 지묵 1989년 07월 89호
1. 최일병 시절
호미 도인의 전방 사병시절 이야기다. 호미 도인의 기세는 진중생활에서도 대단해서 군종장교보다 호미 도인(최일병)을 높이 평가할 정도였다. 어느 날, 군 법당에서 헌병 참모 이하 고급 장교의 부인 불자들을 대상으로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법사는 최일병이었다.
법회장 주위에는 지프차가 줄이어 대기하고 있었고, 그 안에서 부인을 기다리는 고급 장교도 더러 눈에 띄었다. 법회가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이 넘도록 끝나지 않자, 헌병 참보가 참다 못해 법당 안으로 들어가서 동정을 살펴보았다.
최일병의 열변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기다리고 있던 다른 장교들도 헌병 참모 뒤를 따라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헌병 참모가 사병에게 쪽지를 써서 최일병에게 전달하였다. 법회가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는 전갈이었다.
이 쪽지를 받아든 최일병은 법문을 하다 말고 벼락고함을 쳤다.
“거기 뒤에 서 있는 장교도 모두 무릎꿇고 앉아서 들어요. 부처님 법문 시간에 빨리 끝내라니, 그런 소리를 어디서 해요!”
다른 장교들은 법당 마룻바닥에 앉았으나 헌병 참모는 엉거주춤하며 서 있었다. 최일병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외쳤다.
“헌병 참모는 못 앉아요? 부처님 제자가 하는 짓이 거 뭐요?”
결국 헌병참모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최일병은 법문을 계속하였다.
장교들을 꼼짝 못하도록 앉혀 놓고서 다시 한시간이 넘도록 일장연설을 하고 났을 때, 헌병 참모는 최 일병에게 다가와서 그의 손을 붙들고 말하였다.
“우리 사단에 이런 용맹스런 사병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니 다행이요. 오늘 정말 놀라왔소”

최 일병은 장교 부인들이 법회에 동참하면서 하사관 부인들에게 점심준비를 맡기는 일을 언짢게 여기고 있었다. 이번에는 장교 부인들에게 말하였다.
“여기 법당에 부처님 법문을 배우러 오지요?”
“네, 스님.”
“그럼, 법문대로 실천해야지요. 남편이 장교라고 제 자신도 장교인 양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 법 앞에서는 누구든지 평등합니다. 그러니 항상 하사관 부인들과 함께 점심 준비를 하도록 해요.”
“네, 스님.”
“누구나 제 자신은 텅 비워 두어야 합니다. 장교입네, 별자리입네, 무엇이네 해서는 상(相)이 있다는 증거요. 법당에 오면 빈 마음으로 사는 법을 배워가서 실천해야 합니다.”
“네, 스님.”
지금까지 자기들 앞에서 벌벌 기는 사병들만 보아오다가 최 일병을 만나서는 새로이 눈을 뜬 장교부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절 법당에 오래 다녔지만 옳은 말을 해주는 이는 최일병님 뿐이었어요.”

2. 철야 삼천 배 참회
호미 도인이 한때 홍제암에서 지낼 때 모 대학교 교직원 팀의 삼박 사일 수련법회의 지도법사가 된 적이 있었다. 총장, 학장 이하 삼백여 명의 교직원이 이 법회에 동참하였는데, 수련생들 대부분은 산중에서 한가하게 피서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왔기 때문에 일과표 시간을 어기기가 일쑤였다.
등산을 간, 이들이 돌아오지 않아서 저녁식사가 늦어지고 저녁예불, 저녁좌선 시간에도 자리가 많이 비었는데, 늦게 오는 이들이 하나 둘씩 뒷자리에 와 앉았다.
호미 도인은 발끈해서 마이크를 잡고 일어섰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산중에 왔소?”
“시간을 어기고 뭘 하겠다는 거요?”
법회장 인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누구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뒷자리에 늦게 온 이는 꿇어앉아요!”
호미 도인은 이때부터 법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밤 열한시 무렵에는 참회 절로 철야 삼천 배를 시작하였다. 쓰러져서 절을 멈춘 이에게는 장군죽비를 갖다대서 깨어나게 하고 심지어는 물을 끼얹어 깨어나게도 하였다. 수련생들은 이튿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수련회, 수련회 하였지만 수련회다운 수련회는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아침식사 시간 무렵까지 삼천 배 절을 하느라고 옷은 물먹은 솜뭉치가 되어 버렸다. 기진맥진 일어났다가 쓰러지듯 엎어지면서도 모두 삼천배를 다 채웠다.
“혼자서 장군죽비 하나로 총장 이하 교직원 팀에게 밤새워 삼천 배 절을 시키다니!”

호미 도인의 명성은 해인사 큰절에까지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다.
하루아침에는 원주실에서 삭발하는 날도 아닌데 삭발을 하고 있었다.
호미 도인은 백련암 방장 스님을 친견하러 간다고 하였다. ‘견성한 날‘이란다. 이 말에 지금 일본에 가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도반스님과 또 한 스님은,
“옛사람 이 견성하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이렇게 사람을 눈앞에 두고 보기는 처음이니 희유한 일이요.”
하고 가사 장삼을 수한 차림으로 삭발을 하고 있는 호미 도인에게 정중히 삼배 절을 올렸다.
“아무튼 눈이 어두운 우리에게 눈을 떠주도록 하시오.”
호미 도인은 정말 도인인 양 늠름한 자세로 기고만장이었다. 모두들 그의 기세 앞에서는 가히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 위의 한점 눈송이와 같았다.
근력이 좋아 산에 오를 때면 다른 이의 짐을 대신 맡아 지면서도 늘 앞장서 올랐다.
마치 무서운 금강역사(金剛力士)를 보는 느낌이었다.
허나, 정작 선방에 가서 면밀하게 정진해야 할 때에 그는 걸인들을 이끌고 동서남북을 휘젖고 돌아다니면서 무애행(無碍行)을 서슴치 않았다.
아깝다. 곁에서 잡아 주는 이 없어 식광(識狂)을 잠재우지 못하고 말았으니 …
숱한 기행(奇行)과 전설 같은 일화로 한때 유명했던 호미 도인은 이제 우리 기억 속에 차츰 멀어져 가고 있을
뿐이다. 도가 무엇이고 깨우침이 무엇이길래 그는 방황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