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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對人과 대물對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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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을 일구는 이야기 - 이영일 1995년 10월 164호
생활이 향상되면서 자동차를 소유하는 사람들의 수효가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히 늘어났다. 한 집에 승용차가 두 대인 집도 많고 농촌에도 예전과 달리 외양간에 소 대신 자동차가 서 있는 집이 적지 않다. 많은 문명의 이기 가운데 자동차가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지금은 여섯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부산과 서울간도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수십 일이 걸려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이웃이란 일단 가까운 데 사는 사람을 뜻하는데, 밤에라도 놀러갈
수 있는 한동네만 이웃이 아니라 서울과 부산. 광주와 대구도 단숨에 내달을 수 있는 이웃사촌이 된셈이다.
그런데 이상 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자동차가 늘어날수록 그에 따라 멀리 있는 사람이 더욱 가까워지기는 커녕 , 가깝던 가족 친지조차 오히려 점점 멀어지고 있다. 생활이 바빠진 탓일까. 아니면 세태가 삭막해진 증거일까.

비좁은 국토에 자동차가 부쩍 늘어나자, 이제 승용차는 다른 문명의 이기 못지 않게 이른바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주차난은 그 가운데 으뜸 과제다. 강제 견인을 당하지 않으려면 지정된 곳에 주차를 해야 하는데 여기에 드는 돈이 만만치 않은 데다 어느 때는 돈을 주고도 주차할 곳이 없어 낭패를 당하는 일도 심심찮게 있다.
또 차가 낡고 오래될수록 터진 주머니로 동전 새나가듯 푼돈이 알게 모르게 사라지고, 거꾸로 새차를 사면 누가 슬그머니 차에 심술궂게 상처를 내거나 타이어를 손상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책임보험에다 종합보험까지 가입하다 보면 헛 돈이 뭉칫돈으로 나가는 것 같아 속이 쓰리고 부담이 될 때도 있다. 종합보험의 담보 종목에는 대인과 대물, 자손과 차량의 네 가지가 있다. 대인은 사람을 다치게 했을 때에, 그리고 대물은 물적 피해를 입혔을 때에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 자손과 차랑은 가입자의 상해나 가입 차량의 피해 때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가입자 가운데는 한두 종목을 빼고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대부분 대인과 대물은 꼭 가입한다. 남에게 큰 피해를 입혔을 때 혼자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보통 사람의 심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승용차를 가지고 있을 때 더러 한두 가지는 빼먹곤 했다. 그러나 대인과 대물 종목만큼은 어김없이 들었다. 일을 당했을 때 보험사 같은 기댈 곳이 필요해서 이다. 보험사가 번창하는 것은 이런 일반인들의 심리와 당연히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내가 자동차를 버린 것은 사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사람이 술을 지나치게 마시다 보면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 자동차를 처음 소유했을 때는 마냥 편리하게만 느껴지다가 나중에는 내가 자동차의 소유물처럼 된다. 전철이나 기차를 이용하면 더욱 편리한 경우에도 기어이 승용차를 몰고 나가야 직성이 풀릴 만큼 승용차 중독증에 걸린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자동차로부터의 해방을 결심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내 자가용도 깜쪽같이 모르게. 그래서 먼저 첫번째 전략으로 집을 방송국 가까이로 옮기기로 했다. 때마침 누가 차를 빌려 달라고 했다. 기다렸다 싶게
영구임대 형식(?)으로 빌려 주었다. 물론 보험의 부담도 자연스럽게 그쪽에 얀겨 주었다. 출근 시간 차들이 잔뜩밀려 있을 때 그 옆을 휘파람을 불펴 걸어서 출퇴근하는 기분은 짜증스런 얼굴로 핸들을 잡고 있는 자가 운전지들이나 운전을 전혀 해 보지 않은 분들은 미안하만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물건을 내 마음대로 다루고 내가 물건의 종속물이 되지 않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물건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일도 사람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그것에 버금가는 듯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사람과 만나고 물건을 다루는 일 밖 없다. 가족과 친구를 만나고 직장에서는 동료를 시귄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모두가 인격과 더불어 서로 다른 개성과 감정을 가진, 그것도 아주 예민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와 자식 , 애인이나 친구도 더러는 다투며 사는 게 인생이다.
사람은 저 혼자서도 모순의 덩어리이다. 따라서 모순이 모순을 만날 때 모순이 제곱, 세제곱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더구나 세상에는 별난 사람도 많다. 잘난 체 하는 사람, 저 혼자 떠벌리고 흥분하는 사람, 욕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 등등.
그러나 이런 사람이라고 해서 일일이 시비를 벌일 수도 없다. 결국 대인 문제도 당사자보다는 자기에게 귀결된다. 상대방과 함께 성 내고 싸운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너무 많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조절해 나가는 길이 오히려 해결 방법에 가깝고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지혜로운 대인 처세술은 자기를 추스리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물건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건의 구입과 사용, 버림에 있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 것이며 , 물건의 부리는 대상으로 자신을 전락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는 일은 물건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수 교양 과목이다.
아껴 쓰고, 재활용해 쓰고, 덜 사고, 덜 바꾸는 소욕지족少感知足의 생활이 아니면 대물에 관한 슬기는 발휘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선지 날마다 집에 들어설 때마다 느끼는 일 가운데 하나는 내가 가진 것이 왜 이렇게 많은가 하는 점이다.

대인과 대물.
삶이란 결국 이 두 가지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그 어느 것도 궁극적으로 기댈 만한 곳은 아니다. 자동차도, 보험사도 심지어 동료나 가속까지도 내가 마지막까지 기댈 곳은 못 된다. 또 탓할 대상 역시 남도 물건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뿐이다.

결국 반야에 기대어 자기를 보는일이 대인과 대물의 법이라고나 할까.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