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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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미영
1989년 07월 89호
손이라도 대면 녹즙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신록의 계절이 되면 간단한 배낭을 챙기며 산행 준비에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나는 산을 몹시 좋아한다.
자연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산행은 타성에 젖어 반복되는 도심의 일상에서 벗어나 신선한 충격을 얻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산을 가더라도 오랜 역사와 만날 수 있어 더욱 좋은 것이다. 산행에서는 으레, 크고 작은 사찰을 만나기 마련이다. 때론 적막한 산 속의 자그마한 암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산사(山寺) 하면 떠오르는 것이 정적이다. 산사의 정적-그 깊은 바다, 고즈넉하고도 청아함, 봉우리 높고 골이 깊은 산중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맑은 물소리와 풍경소리에 귀가 트인다.
산사를 찾을 적마다 사찰과 산의 기막힌 조화에 새삼 감탄하곤 한다. 명산에는 이름난 절이 있기 마련이고, 풍광이 빼어난 산 속에는 이에 걸맞은 절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산을 찾으면 사찰을 찾아가게 되고 사찰을 찾아가면 곧 산과 만나게 된다.
산길을 걸어 사찰을 찾으면 먼저 마음부터 푸근해진다. 마음의 고향처럼 그렇게 사찰은 내 마음에 닿아 하룻밤이라도 묵고 싶어진다.
산사의 추억을 얘기하라니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나의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이시다. 어릴 적에 새벽 일찍 일어나 조상처럼 앉아서 염주 알을 굴리며 독경을 외시는 어머니를 자주 마주하던 그 기억이 새롭다. 그 약한 몸으로 아침마다 백팔배를 하시는 것을 보고 어린 나이에도 놀라와했다.
절 구경이라고는 해본 일이 없던 어린 날에도, 이같이 독실한 불교 신자이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나는 조용한 염불소리와 황혼에 은은히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있는 산사를 상상 속에서 막연히 그려보곤 하였다. 어머니로 인해서 생긴 절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친근감은 자라서 스스로 절을 찾으면서 더욱 구체적인 정서로 내 가슴을 차지하게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던 무렵이니까 아마 열아홉살쯤 되던 때일 것이다. 경주 불국사를 찾은 일이 있었다.
사찰을 찾으면 으레 절을 하는 것이 상식이어서 대웅전에 들러 막 절을 하려는데 옆에 앉아 계시던 스님 한 분이 “왜 절을 하십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참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도대체 왜 내가 절을 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으니까 대자대비의 성불 앞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고 믿고 있었던 듯, 조금 망설이던 끝에 그 비슷한 답을 한 듯하다.
“절을 하는 것은 자신의 아만을 죽이기 위하여서지요”라고 하시던 그 스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전에서 쟁쟁하다. 하지만 지금도 그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고, 나를 죽이는 것 그것은 내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는 것을 말함일 터인데, 마음의 자유는 아직 멀었으니 … 지금도 사찰을 찾아 절을 할 때면 그때의 기억과 함께 스님의 말씀이 떠올라 나를 죽여 마음의 자유를 얻는 일에 대해서 자문하게 된다.
또 언젠가 마음이 수선스러워 산을 찾았다가, 우연히 찾은 작은 암자에서 어느 노스님을 한 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이라 하셨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인생은 뿌리가 없어 길 위의 티끌과 같아 바람 따라 나뉘어 흩어진다.
원기왕성한 젊음도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고, 때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고 구하는 데 있다.
마땅히 힘쓸 때, 때가 찾아오는 것이다. 소극적인 태도보다는 적극적인 태도, 부정적인 자세보다는 긍정적인 자세를 가져라. 비관적인 정신보다는 낙관적인 정신을 가지며, 체념하기보다는 하면 된다는 불굴의 신념을 가지고 신상을 보라는 말씀이었다.
또, 세상사 모든 일이 마음의 산물이라 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셨다.
사람은 세상에 나을 때 다 울면서 나오지만, 남을 웃기다 웃으며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을 울리다 스스로도 울며 가는 사람도 있다. 남을 웃기다 웃으며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어둠을 향하여 걸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광명으로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무가 빛을 향하듯 인간의 본질을 향한 갈구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마음 속에 등불을 켜고 본질을 보아라. 인생은 속히 간다. 세월을 아껴야 한다. 세월은 결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찾아갈 것인가를 거듭 자문하라 시던 그 스님은 영원히 잊지 못할 산사의 추억으로서 내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 뒤로 마음이 수선스럽거나 정신이 산란하면 으레 산을 찾는다.
산에 가면 절이 있고, 새소리, 바람소리, 낭랑한 풍경소리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와 함께 잔잔히 가슴 가득 파고드는 그 신비감과 경이감에 사뭇 떨리는 마음은 더없이 맑아진다.
그런데 요즈음 사찰이 관광지화 되면서 종교적 신비가 퇴색되어 가는 것이 아쉽기 짝이 없다.
명산의 명사찰 치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이 없고, 그러다 보니 행락객들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다. 계곡과 산천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쓰레기더미들로 몰골 흉해진 산이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재의 대부분이 불교문화이듯이, 산사는 한국인의 영혼과 깊게 밀착되어 있는 곳이다. 따라서 그런 산사가 깨끗한 산 속의 정기를 호흡하며 본래의 정적을 되찾을 때에만이 비로소 한국인의 정서도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질 수 있을 것이다.
새벽의 어둠을 흔들곤 정적에 잠겨드는 쇠북의 여음이 영혼의 때 묻고 더러운 부분을 들쑤신다.
녹음 짙푸른 먼 산을 보며 또 배낭을 만지작거린다. 그 푸른 산 속에 언제나 고향 같은 그리움을 일렁이게 하
는 산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