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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해인사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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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곽현숙 1989년 07월 89호
숲이 가히 바다를 이루는 가야산
해인사로 가는 길목의 숲은 계곡의 물 흐르는 소이와 어울려 자연이 이루어낸 한 편의 위대한 교향악이다.
한국에 명산은 많지만, 절과 산과 물이 이렇게 한데 어울려 조회를 이룬 곳이 해인사말고 또 어디 있으랴.
더욱이 운무(雲霧)라도 덮이는 날은 한 폭의 멋진 동양화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 이 곳 해인사 계곡이다.
낙화담(落花潭)에서 흘러내린 물이 가장 아름답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홍류동(紅流洞) 계곡에 서 보라! 봄날이면 벚꽃과 잔달래가, 가을이면 가야산의 홍엽이 옥수에 떠서 흘러 내려오는 그 광경을 보지 않은 사람은 해인사의 정취를 말할 수 없으리라.
비록 산의 정경이야 설악이나 금강에는 뒤진다 해도, 물이야 백담 계곡이나 무주 구천동보다 더 아름답진 못해도, 어디 해인사 같은 절이 있는가 해인사 일주문에 적힌 ‘동국제일가람(東國第一伽藍)‘이란 말이 조금도 과장이 없음은 이곳을 한번 들른 사람이라면 다 느낄 수 있다. 물론 큰절로 치자면 통도사, 불국사 같은 명찰이 있지만, 그곳에는 또한 가야산 같은 정취가 없다. 가야산이 있기에 해인사이며, 해인사가 있기에 가야산인 것이다.
바위로 뭉친 상봉은 늘 구름을 이마에 적시며, 저 멀리 감돌아 흐르는 영남의 젖줄 낙동강과 황강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데, 그 신령스런 자태는 마치 온갖 시련과 자기 수련으로 모든 세상의 욕락을 달관한 노승의 모습 같기도. 하고 백수(百獸)의 왕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여름 숲에서 진종일 들려오는 매미 소리는 도심의 자동차 소음에 찌든 우리에게 무한한 청량감을 주기도 하는데, 그 소리를 따라 훠이훠이 몇 구비를 돌면 낙락장송 몇 그루가 서 있는 옛 홍도예관 자리에 이르고 다시 그 곁의 비석거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의 여러 비석들 가운데에는 해인사의 역사를 말해 주는 옛 스님들의 공덕비와 함께 우람하게 자리하고 있는 해인사의 사적비가 있다.
이 사적비에 의하면, 해인사는 통일신라 이후에 이룩된 화엄종의 대표적인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대표적인 고승으로 원효와 의상을 꼽는데 해인사는 의상대사의 상족(上足)이었던 순응대사와 이정대사가 창건하였다.
해인사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주문의 빼어남이다. 간결하고 경쾌하면서도 결코 가볍게 보이지 않는 해인사 일주문 그 현판글씨의 아름다움이 또한 걸출한데, 구한말의 서예가 해강(海剛) 김규진의 빼어난 솜씨를 여기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주문 옆에는 절로 솟아나는 맑은 샘이 있어 가파른 길을 한참 걸어온 이의 더위와 갈증을 풀어준다 이 물을 한 모금 마시면 나무의 수액 마냥 온 몸이 다 맑아지는 듯하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해인사 경배에 들어선 것이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열병식이라도 하듯 양쪽으로 늘어선 사이로 고즈넉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사람의 왕래가 드문 새벽녘에 이 길을 걸어보면 마치 이 세상이 아닌 듯한 느낌을 받을 만큼 청한(淸閑)하다.
해인사는 점점 높아지는 산의 지형 위에 앉혀져 계단이 많다. 그 수효는 헤아려 보지 않았지만,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더 깊고 더 높은 오묘한 진리의 세계로 가까이 감을 상징함은 아닌가 하고 혼자 짐작해 본다. 대개 절의 계단은 108계단 또는 33계단으로 되어 있거나 우리가 전혀 모르는 많은 상징들을 담고 있다는 이야기를 스님들을 통해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얼마나 재미있는가! 인간의 번뇌가 108가지여서 108번뇌의 계단을 뛰어넘어 영원한 피안에 오른다는 것이라든지 하늘나라가 서른 셋이어서 그 33계단을 다 오르면 최고의 하늘나라에 이르름을 상징한 그 종교적 세계관을 곰곰이 되씹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산사 여행의 참 멋을 느낄 수 있다.
그러지 않고 번듯한 절의 외관만 구경하고 온다면 반쪽의 즐거움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해인사의 큰 법당인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부처님은 법신불인데, 법신불은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한다. 진리란 변함 없이 항상 일체와 함께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설하신 말씀들은 영원히 변함 없는 진리이기에, 그 이름을 법신 곧 비로자나라고 한 것이다라고 어느 눈 맑은 스님께서 친절히 일러주셨다.
그 진리의 말씀을 모두 기록해 놓은 것이 팔만대장경이다.
이 대장경을 모신 해인사의 장경각은 해인사에서 뿐 아니라 우리나라 안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불경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불자들에게는 더없이 귀한 보불이려니와, 이는 국란 극복의 역사적 현장으로서 외세에 항쟁하는 민족혼을 그 안에 담고 있음에서 신자 비신자 할 것 없이 우리의 민족에게 뜻깊은 보물인 것이다.

나는 아직은 신심 깊은 불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머니의 영향으로 소박한 불교적 소망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가 절에 가실 때 몸을 정갈히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듯이 그 소박하고 고요한 동양 정신이 나는 좋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은 나의 서에 그대로 담긴다.
나는 내 시집 서문에도 썼듯이, 비록 꽃은 피우지 못하더라도 하나의 풀잎으로 부드럽게 흔들리며 살아가기를 원하며, 가을이면 아직도 소녀처럼 꽃씨를 헤아리고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싶어하는 아낙이다.
가야산 해인사, 내 맑은 감성의 한 자락. 속세의 먼지를 씻어내고 영혼의 돌로 쌓은 석탑이여 -

오른쪽 숲은 바다를 이뤘네
번뇌의 티끌을 모아서
태산의 줄기에 묻혔다가
L}무 잎새에 새겨넣은 햇빛 속에 비쳐
숲을 이루었네.

졸시 ‘극락전 앞에서‘의 한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