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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로부터 해탈하는 올바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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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부처 - 장휘옥 1995년 10월 164호
불교의 교리 체계는 어렵고 복잡하다. 하지만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고뇌로부터 해탈하는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불교의 모든 교리는 이 고뇌로부터의 해탈 이라는 기본틀을 벗어나지 않으며, 또 이 기본틀은 언제나 원인과 결과의 관계(인과관계)로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한 삼법인(혹은사법인)의 진리도 정리하면 번뇌로 물든 미망의 세계와 절대 평안한 해탈(열반)의 경지를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설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곧 이 세상은 무상(제행무상)하고 무아(제법무아) 하기 때문에-원인-. 고통(일체개고)스럽게 느껴지며-결과-, 이 고통의 원인인 무명을 끊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면-윈인-, 이상의 경지인 (열반적정)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결과.
윈시불교 기본교리 가운데 하나인 사성제며聖諸(혹은사제四調)의 가르침도 이것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된다. 사성제란 고제苦諸, 집제集諸, 멸제滅諸, 도제道諸를 말하는데, `고’ 란 우리의 삶이 고통이라는 것이고, 집’ 이란 삶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이유이며, 멸` 이란 고통을 멸한 해탈의 경지를 말하고. .`도`란 고통을 멸해서 해탈에 이르는 수행 방법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면 `집` 은 `고’ 의 원인이고 고’ 는 그 결과이며, 보는 깨달음의 원인이고 `멸’은 그 결과가 되는 것이다. ‘제 는 한자로 체歸’ 라 쓰지만 불교용어로는 ‘제` 라 읽으며, 진실 , 진리’ 라는뜻이다. 그러므로 네 가지 참다운 진리 사성제도 삼법인과 마찬가지로 미망의 세계와 깨달음의 경지를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정리하여 번뇌로 물든 우리의 삶이 존재하게 되는 원인을 규명해서 그 원인을 제거하면 저절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이것은 마치 의사가 환자의 병(苦)이 생기게 되는 원인(集)을 발견하고, 그 환자의 병을 치료하여 완쾌(滅)시키기 위해서는 약을 복용시키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인류의 고뇌가 생기게 되는 진정한(諸) 원인을 발견하고 고뇌로부터 해탈하는 올바르고(正) 진실한 길(道)을 가르쳐 주려고 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석가모니는 인간의 정신적 의사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면 고뇌로부터 해탈하는 올바르고(正) 진실한 길(道)이란 어떠한 길을 말하는 것일까?
사성제 가운데 별제’ 란 번뇌의 속박에서 자유가 된 경지, 곧 열반을 말한다. 따라서 멸제에 이르는 방법인 ‘도제` 는 열반을 실현하는 여덟 가지의 올바른길, 곧 팔정도(八正道)로 요약될 수 있다. 팔정도란 정견正見 곧 사물을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보는것, 정사正思 곧 왜곡되지 않게 올바로 생각하는것, 정어正語 곧 거짓말과 폭언 등을 하지 않고 올바로 말하는것, 정업正業 곧 살생과 도둑질 등을 하지 않고 올바로 행동하는것, 정명正命 곧 도리에 맞게 올바로 생활하는것, 정정진正精進 곧 선한 행동을 하기 위해 올바로 노력하는것, 정념표念 곧 밖으로 향해 있던 생각(正思)을 다시 안으로 향하게 하여 생각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것, 정정正定 곧 올바른 정신 통일로서 선정에 드는것 들을 말한다.
이 여덟 가지 덕목은 얼핏 보아도 알수 있듯이 깨달음에 이르는 불교의 독특한 방법이기보다•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일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불교의 깨달음이란 우리의 일상 생활과 동떨어진 특별한 수행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바로 그 자체가 깨달음에 이르는 길임을 말해 주고 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올바로 보는 ‘정견` 이나 올바르게 생각하는 `정사` 가 뭐 그리 어렵다고 불도 수행의 덕목으로 삼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올바로 볼수 있는 눈과 올바로 생각할수 있는 판단력만 있으면 나머지 여섯 가지 덕목의 수행은 저절로 이루어질 만큼 `정견’ 과 `정사` 는 중요하다. 우리는 시물을 볼 때 각자 나름대로의 선입관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판단력도 흐려지게 된다. 예를들면 자기가 싫어하는 스타일의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있고 예쁜 행동을 해도 좋게 보지 않는 경향이 있고, 반해로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은 무조건 좋게 보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사람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음에 설명하겠지만 인간에게는 특히 자기 지•신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제7 말라식)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관대해지려는 경향이 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시험 성적만 떨어지면 새로운 각오로 공부하겠다고 하루의 계획표를 짜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일일도 못 가는 자신의 의지 박약에 절망한 적이 한두 번이 이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실행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평소 하루에 한 시간도 채 공부하는 습관이 없던 사람이 자신의 능력(습관)을 무시한 채 갑자기 대여섯 시간썩 공부할 계획을 잡아놓았으니 실행될 리 만무했던 것이다.
이렇게 사소한 하루의 계획표를 짜는데도 자기 자신을 똑바로 볼수 있는 눈이 펼요한데 기나긴 인생의 여정을 계획하는 데는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지신을 과대 평가하면 오만함과 허영심으로 들뜨기 쉽고, 과소평가하면 위축되어 절망하기 쉽다. 오직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능력을 직시하여 그 능력에 맞게 삶을 계획하고 살아간다면 아무리 돈이 궁하더라도 인천 북구청 세금 횡령 사건과 같은 부정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고,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같은 부실 공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불교의 깨달음은 욕망을 줄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적은것에 만족할 줄 아는 소욕지족少欲知足’ 의 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적은것에 만족하라고 한다 해서 꿈도 목표도 없이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지신에게 알맞은 목표를 설정해서 열심히 정진하며 자기 분수를 알고 자기 자신에 맞는 생활과 사고 방식으로 삶을 꾸려 나가면 인생이 즐겁고 여유가 생기게 되므로 저절로 삿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깨달음에의 첫발인 이 소욕지족의 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올바로 보고 올바로 생각하는`정견` 과 `정사` 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