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이대로가 꿈
극락세계니 천당, 지옥이라는 것이 꿈꾸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지 사실은 없습니다.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는데 무슨 천당에 가고 지옥에 간단 밀입니까. 눈을 감고 자는 사람에겐 꿈이 있고, 잠을 자지 않는 사람에겐 꿈이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우리 주인은 이름도 모양도 없으니 어디로 가고 말 것이 없습니다. 허공보다도 더 큰 것이 나인데, 세상 사람들은 큰 것은 다 버리고 모래알만한 것을 가지고 다투며 살려고 합니다. 거룩한내 마음, 참다운 궐 등지고 이대로 죽으면 되겠습니까.
사는 것이 장한 것이 아닙니다. 가죽 주머니 끌고 다니면서 오래 살려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부러워합니다. 참다운 나는 이름도 없습니다. 이름이 있는 것은 모두 허깨비입니다. 그런 것에 집칙하면 세세생생 업이 되어 고생감이 될 뿐입니다. 혹 아들이 죽었어도 죽은 것이 없다고 생각해야지 죽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나다. 그러는 자신은 안 죽습니까.
부모에게서 도망친 미륵부처님
죽는 것도사는 것도가는 것도 오는 것도 없습니다. 죄짓는 몸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그런 것에 얽히고 집착할 따름입니다. 사람 몸 받았을 때에 정신을 한번 반짝 차리고, 집안 식구가 반대하더라도 비위 맞추려 하지 말고 등져 버리라고 합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등지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십니다.
모든 부처님이 도망질하는 것을 먼저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미륵 부처님도 어머니, 아버지 말을 듣지 말고 도망질하라는 것부터 가르쳤습니다. 미륵부처님도 부모 앞에서 도망질부터 합니다. 이런 말을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이 하룻저녁 쉬어갈 뿐인 이 세상을 걱정하고 근심하며 죄를 짓고 살려고 할 것이 무엇 있습니까.
이를 바로 알아 차리고 길을 바꿔 버려야 합니다. 자식에 애착하면 후생에 자식과 나고 죽는 몸을 또 받으러 다녀야 합니다. 어젯밤 꿈 속에서 미국에 가 자동차를 타고 다녔지만 꿈을 깨어 보면 자동차도 없고 미국도 갔다 오지 않았습니다.
헛것입니다. 이 세상, 이대로가 꿈입니다.
집안 살림살이, 도적놈 먹여 살리는 살림살이가 다 꿈입니다 살아도 산 것이 없고 모든 중생들이 다 불쌍한 사람들입나다. 그런 불상한 사람들과 다툴 것이 없습니다.
불쌍하게 봐 버리면 다툴 것이 없습니다.모두가 부처님입니다. 지신이 부처님인 줄만 알아 버리면 미워할 사람도 없고 좋아할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부처이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또한 범부이면서 부처입니다. 그런데 부처를 등지고 사니 이렇게 고생하고 살지 않습니까.
복도 없고 죄도 없고.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깨끗한 마음자리가 부처님 마음지리, 우리 마음자리입니다. 원력이 크신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에서 오지만, 중생들과 통하기 위해 오고 가는 것이지 와도 실제로 오는 것은 아니며, 신심이 깊은 범부들은 염불해서 극락세계에 가지만, 가도 주인들은 실제로 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부처님의 바른 법을 믿지 않고 어리석은 소견으로 이 세상 법을 믿으려고 합니까.
아미타불의 밝은 빛은 크고 둥근 달과 같아서 법계를 두루 비춘다. 중생이 일념으로 염불하면 극락을 얻게 되고,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 정토는 생각 생각이 다 아미타불이 되는 것이다. 마음 달도 외로이 밝고 둥글였으니 마음빛이 천상천하의 모든 만물을 집어 삼키고 있도다.
우리 생각이 맑아지기만 하면 바로 아미타불 입니다. 번뇌망상이 없으면, 우리의 생각 생각이 전부 아미타불입니다. 하늘과 땅 속에 있는 만물을 우리 마음이 다 집어 심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그만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범부인 우리가 어떻게 그런 것을 믿을수 있나` , 그렇게 생각하면 지옥에 갔다 와서도 항상 호링이밥 독사밥밖에 안 됩니다.
‘보살계 받아라, 계 받이라 `그런 말을 하면 나는 자격이 없다 하고 받지 않습니다. 받지 않으면 그만큼 자신만 괴롭고 죽을 일만 생깁니다. 계를 받치 않은 죄 만 따라옵니다. 계를 받고나서 금방 실천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보살계를 받을 때의 공덕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계를 안 받은 사람은 피할 수 없습니다. 본디 안 받았으니 부숴 버릴 것도 없습니다. 알고 지은 죄는 언젠가 고칠 분이 있지만 모르고 죄를 지은 사람들은 고칠 분이 없어서 모르고 지은 죄까지 받으니, 지키지 못할 망정, 속히 계를 받아야 합니다.
생사를 해결하러 오신 부처님
부처님은 우리처럼 염라국의 지시를 받아 오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자유로 염라국에서 왔지만 부처님은 천상에서 오셨습니다. 부모를 누구로 정할까, 교화를 시키려면 어떤 나라에 태어날까, 그러다가 인도의 정반왕과 마야 부인이 복이 많고 청정했으므로 마야 부인의 뱃속으 들어갔습니다.
부처님은 우리와는 올 때부터 다릅니다. 법력으로 된것입니다. 이 세상에 와서 도를 닦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도를 닦는 모양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연극 배우 노릇을 한 것일 따름입니다. 부처님 노릇을 하는데 여덟 가지 모양 똑같습니다. 제일 처음에 부모에게 도망치는 것부터 가르칩니다. 부모 말을 들어 부모도 물에 빼져 죽고 아들딸도 불에 타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부모를 죽이고 서라도 나오라고 그럽니다.
육조 스님도 나무 장사를 해서 부모를 먹여 살려다가 결국 팔십이 넘은 부모를 남에게 맡기고 가 버렸잖습니까. 죽이고 가는 것과 다를게 뭐 있습니까.이런 말을 건성으로 듣지 말아야 합니다. 모래알 만한 조그마한 것에 속을 것이 뭐 있습니까. 내 버려면 그대가 극락세계인데 말입나다.
삼계가 화택이라고. 인간 세상만 불구덩이가 아니고 천상도 불구덩이입니다. 복을 지어 천상도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은혜가 하늘 땅보다 많다는 것이 아닙니까. 거짓 부모들을 도와줘야 보람도 없습니다. 거짓말로 도와준 것이지 착한 일도 아닙니다. 죄짓는 일일 뿐입니다.
부처님이 무엇을 가르치려고 왔습니까.
나고 죽는 것을 해결하는 길 하나를 가르치려고 왔습니다. 생사 일대사라고, 나고 죽는 일이 제일 큰 것입니다. 나고 죽는 일이 해와 아무 상관이 없는데, 속아 다니며 이번에도 나고 죽는 고통, 늙는 고통, 병 드는 고통만 되풀이해서 다니니 불쌍합니다. 죄를 지어 마음이 어두워지니 나고 죽는 것에 얽혀 내가 고통을 만들어 받으러 다니는 것입니다.부처님은 오직 나고 죽는 것을 해결해 주는 길 하나를 가르쳐 주려고, 어두운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등불을 밝혀 주려고 나오셨습니다. 부처님 당사의 일입니다.그 때에도 좋은 날이면 고관대신들이 법을 존경하고 축하하기 위해 몇 십 리까지 등불을 켰습니다. 그런데 고생고생하며 살던 한 거지 노파가 보니, 고관대신들이 부처님께서 내왕하는 곳에 등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복이 많은 사람들도 등불을 켜서 복을 짓는데, 나같은 사람은 무슨 죄가 많아 고생만 하며 복을 짓지 못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터질듯 아파서 노파는 기름 장수의 집에 가서 사정하기를 기름 한 종자만 주시오 했습니다. 기름 장수가 기름을 무엇에 쓰려 하느냐고 묻자, ‘부처님을 위해서 그럽니다. 나도 복을 짓는 일이고 당신도 복을 짓는 일이니 한 종지만 주시오’ 했습니다. 기름 장수는 그러면 자기도 복을 짓는 일로 생각되어 기쁜 마음으로 노파에게 기름을 주었습니다. 노파는 기름을 가지고 가서 등을 켜며 간절한 원을 세웠습니다.
“전생에 죄가 많아 평생을 거지 노릇을 했습니다. 앞으로 남을 도와 주는 사람이 되어 중생을 제도시키려고 하니 저를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죄를 없애 부처님이 되게 해 주십시오.”
기름은 조금밖에 갖고 가지 않았지만 원은 그렇듯 크게 세웠습니다. 시방세계가 다 내 것이 되어서 성인이 되게 해 달라는 원을 세웠던 것입니다.
마음은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작은 마음도 큰 마음도 한마음이 들어서 마음을 내는 것이므로 차별이 없습니다. 물질이 귀중한 것이 아니라 정신이 중요한 것입니다.
노파가 가지고 간 물건은 적었지만 남을 도와주고 싶다는 지극한 원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노파가 등불을 켰는데, 신통 제일인 목련존자가 등불을 끄는 책임을 맡고 있어 새벽에 부채로 등불을 끄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거지 노파가 켠 등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입으로 불어도 보고 손으로 부벼도 보았으나 소용없었습니다. 목련존자는 무슨 이런 법이 있나 하고 의심이 나서 부처님에게 갔습니다.
“제존이시여, 등불이 다 꺼지는데 하나가 꺼지지 않습니다. 어쩐 일입니까.”
부처님이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신통은 할줄 알지만 공부를 다하지 못하여 그런 이치를 아직 모르는구나. 너를 위해 가르쳐줄 테니 들어봐라. 그 등불은 거지 노파가 기름 장수에게서 기름을 얻어다 켠 것인데,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고 싶다는 간절한 원을 세웠기 때문에 동서남북의 바닷물을 다 가지고 가서 끄려 해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 기름으로 켠 등불이 아니고 마음으로 켠 등불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 거지 할머니는 원이 성취되어 등명燈明 부처님이 되어 중생을 건질 것이다.”
기록에 보면, 거지 노파가 과거 생에 복도 많이 짓고 공양을 많이 올렸는데 거지 노릇을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목련 존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을 받든 사람이 어찌하여 거지가 되었습니까?’‘
“잘 물었다. 들어 봐라. 그 노파는 전생에 부자로 살아 돈이 많았는데 복 짓는 욕심도 많아 부처님이나 제자들에게 공양을 많이 올렸다. 하루는 비바시불을 청해 공양을 받으십시오 하니, ‘오늘은 다른 사람이 먼저 공양을 청했으니 네 공양을 받을 수 없다` 했다. 그러자 노파는 어리석어 진심을 내었다. 저 거지 같은 것 때문에 내가 공양을 올리지 못해 복을 짓지 못했으니, 한 오백생 거지 노룻을 해 버려라 그렇게 말해 자신이 오백생 동안거지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마음을 잘쓰고 입을 잘 놀려야 합니다. 입을 놀릴 때는 힘없이 놀리지만 그렇게 벼락을 맞는다면 벼락을 맞습니다. 업을 병마개 막듯 막고 대문 쇳대 잠그듯이 잠그고 살아야 합니다. 입으로 짓는 죄가 죄를 짓는 것 가운데 제일 빠릅나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렇게 무시무시한 죄를 짓습니다.
거지 노파는 그렇게 해서 자기가 오백생 동안 거지 노릇을 하는 인과를 받았는데, 그 때에 부처님께는 이번 생으로 마지막 오백생을 다 갚았다고 말씀 했습니다.
말 한 자리 잘못해서 오백생 동안 거지 노릇을 한 것입니다. 나쁜 일도 좋은 일도 그렇게 이자가 많이 붙습니다. 조그마한 복을 짓는다고 해서 무슨 좋은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가 없으면 복도 짓지 못합니다. 돈을 준다고 복을 짓는 것은 아닙니다. 시주를 해도 죄만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귀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