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에 작은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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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정목월
1989년 07월 89호
여름의 무더위가 시작되면 누구나 한 번쯤 청산(靑山)을 찾아 나서고 싶을 것이다. 이따금씩 세상살이가 싫증이 날때, 번뇌와 시름, 속박과 제약으로부터 훌훌 털고 일어나 자유롭고 싶을 때, 문득 머리 속에 청산을 떠올린다.
청산은 언제나 인간의 마음을 순치시켜 주고, 겸허함을 알게 하고, 묵상(黙相)을 가르쳐 준다.
한국인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하늘을 이고 있는 청산이 솟아 있다. 답답하고 한(恨)이 맺히는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집을 떠나 청산을 찾았고, 또한 그곳 깊은 산중에서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말하자면 청산은 영원과 대화를 나누는 곳이어서, 한국인에겐 가장 신령스럽고 정결한 곳이었다. 이와 같이 청산 그 자체가 바로 신앙의 성역이었으므로 한국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고결하게 만들어 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산의 정기를 타고 태어난다고 믿었던 한국인들은 죽어서도 산의 품에 묻혀 잠들었다. 산에 묻혀 산처럼 영원해지고 싶은 염원이었으리라.
청산의 한가운데엔 으레 절이 있기 마련이다. 큰산엔 대찰(大刹)이 있고 작은 산엔 산세에 알맞은 사찰이 있음을 발견한다. 한국인의 정갈한 마음 한가운데에 청산이 솟아있다면, 그곳에 들어앉은 사찰은 한국인에게 무엇이 될까 불교를 믿든 믿지 않든 간에 사찰은 한국인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영원을 갈망하는 자리에, 속박을 벗어나 자유롭고자 하는 자리에 진정한 자아(自我)를 알고자 찾아 나선 자리에 청산이 서 있는 것이다.
절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영원에 대한 그리움을 찾아 나서는 것이요, 또한 마음의 고향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나는 많은 절을 가보진 못했지만 이따금씩 청산에 있는 절을 찾아 떠나고 싶어한다. 그 절도 되도록이면 큰 산, 깊은 산중의 절이었으면 싶고, 게다가 고찰(古刹)이면 더 할나위 없는 것이다. 큰 산, 깊은 산중에 있는 사찰일수록 산의 마음, 산의 천년, 만년 묵상(黙想)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곳에 찾아가면 저절로 깨달음을 얻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또한 고찰(古刹)일수록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불공과 경배를 드렸을 테니 은연중 영원의 세계와 잇닿아 있지 않을까 하고도 생각해 본다.
대웅전 부처님의 자비스런 미소는 수많은 사람들의 불공과 기도에 응답하며,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은 뎅그렁거리며 마음의 문을 연다.
산의 묵상 한가운데서 영겁의 마음 한가운데서 타오르는 촛불은 목탁소리와 범종소리를 영원한 곳으로 스며들게 한다.
청산의 절을 찾으면, 인간은 누구나 나그네임을 깨닫게 된다. 부질없는 것, 쓸데없는 것을 가지려고 다투고 시기하면서 지내온 세월들이 부끄러워진다. 산사(山寺)의 적막속에서 들려 오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오욕으로 물든 내 마음을 씻어 준다.
언젠가 한려수도악 절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충무의 한 작은 절에서 ㅈ스님이 초대를 해주었으나 마음의 여유가 없어 응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 적이 있다. 그 스님은 손수 녹차를 가꿔서 제조도 하시는 차인(茶人)이기도 했다. 그분은 내가 살고 있는 마산의 한 화랑에서 사찰증축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큰스님들의 글씨와 그림 사십여점을 모아 전시회를 연 일이 있었다. 전시회 첫날, ㅈ스님은 이례적으로 우리나라 전통차를 끓이는 법과 마시는 법을 일반인에게 보여 주었다 병풍을 쳐 놓고 촛불도 켜 놓아서 분위기 또한 차향과 어우러져 그윽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잎차를 끓이는 동안 ㅈ스님은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아 합장을 하였다 나도 두세 사람과 함께 스님의 뒤편에 꿇어앉아 차를 마실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내 차를 다 끓여, 누르스름한 빛깔의 잎차를 큰 찻잔에 따라서 마실 차례가 되었다. 그때까지 차를 마셔본 적이 없던 나는 한모금 마시고 난 뒤, 어쩔지 더 마실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정성을 다해 끓여주신 ㅈ스님을 생각해서 찻잔을 비웠다. 속으로부터 비릿한 풀내음이 치솟아 토해낼 것만 같아 남 몰래 얼굴을 찌푸렸다. 잎차를 마신 것이 처음이기도 했지만, 오래도록 속이 불편해서 고생해온 나로서는 차의 씁쓰레한 맛을 받아 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ㅈ스님이 한번은 전화로 또 한번은 편지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초대를 했었다. 산사(山寺)에 지내면서 소일거리로 차를 재배하여 손수 몇 통의 새 차를 만들어 놓았으니 음력 십오일을 택해 산사에 와서 달빛 속의 산사와 한려수도를 바라보면서 차를 마셔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초대였던가. 나중에 나는 세속일로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서, 이 은근한 달빛의 초대, 산사의 초대, 차(茶)의 초대에 응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바보스럽게 생각되었는지 모른다. ㅈ스님은 그 뒤로는 소식이 없으나, 달을 쳐다보게 되는 밤이면 문득 ㅈ스님과 산사의 차 맛을 생각해 보곤 한다.
무더운 여름이면 청산의 작은 절을 찾아 길을 떠나고 싶다. 구름이 되어 떠나고 싶다. 단 하루라도 세속으로부터 떠나 자신의 참모습을 생각해 보는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이번 여름엔, 예전에 내가 외로울 때 들리곤 했던 덕유산 영각사도 가보고 싶다 예전의 그 주지스님이 있을 리 없는 그곳엔 지금 어느 스님이 계실까 영각사 뒷편 숲들은 그 천의 모습 그대로일까 영각사 뒷편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덕유산의 아름다움이 펼쳐지리라.
산이 많고 물이 맑은 자연환경 속에 살아오면서 한국인은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는 산과 친숙해졌고, 그래서 자연스레 마음 가운데 청산을 품게 되었는지 모른다. 마음 가운데 청산이 지리잡고 있어서, 한국인의 영혼은 영원의 세계에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또 그 청산에 사찰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들을 쉬게 하고 마음을 비우게 하나,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