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가운데 버스는 달렸다. 회색빛 하늘 아래 검은 아스팔트길을 달리노라니 빗길을 철벅거리며 집을 나설 때의 을씨년스러움이 말끔히 가시고 자못 낭만적인 기분마저 들었다. 차창 위에 두드리듯 떨어지는 빗방울은 대지를 흥건히 적시다 못해 내 마음의 때와 잡념까지 씻어 내리는 듯하다. 비에 씻긴 산천초목의 청신함은 하늘을 찌를 듯이 생기가 넘치고, 원경(遠景)의 산들은 어둡게 내려앉은 구름에 따라 트였다가 갇혔다가 한다. 현풍에서 버스를 다시 갈아탈 쯤해서 그쳤던 비는 유가에 닿자 거짓말처럼 햇빛이 쨍쨍하게 났다. 여름 소나기는 소잔등을 두고 다툰다더니 이곳에는 비가 한방울도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같은 나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마을 사이에 그토록 현저한 일기 차이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산하대지가 청신한 초록으로 물이 든 것 같은 숲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산세(山勢)는 급박하나 정갈하고 수려한 나무들 사이로 우회로(迂廻路)처럼 꼬불꼬불한 산길이 나 있어 걷기에 힘이 들지 않았다. 산 중턱에서 안면이 있는 보살과 딸인 듯한 아가씨들을 만났다. 그들은 엄청나게 많은 짐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들고 가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양배추와 감자, 홍당무, 수박, 참외 동을 위시해서 박스며 비닐통에 빡빡하게 채운 식품들을 옮기느라 기진맥진해 있었다. 참선하시는 스님들께 별식을 해드리려고 새벽 네시에 얼어나 메밀 국수를 맞춰 가지고 일곱시 버스를 탔다는데 아홉시 삼십분 차를 탄 우리와 산 중턱에서 만났으니 그들이 짐을 가지고 얼마나 씨름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삼모녀가 똑같은 길을 세번씩 왕복하며 짐을 옳겼노라고 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첨부터 억수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몇번이나 식구들의 눈치를 살피고 꾸려놨던 짐마저도 빼버리고 왔던 얄팍함이 새삼스럽게 낯뜨거웠다. 그리고 여전히 짐 걱정에 끌탕하고 있는 보살의 비와 땀으로 후줄근해진 옷차림과 어제 시내에 나갔다가 번화한 유명 메이커 옷집에서 만났던 여인들의 등등한 제스츄어를 비교해 보았다. 깊은 산사를 애써 찾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도심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이러한 곡진함과 순수를 어렵잖게 만날 수 있어서 일게다. 지난해 하안거(夏安居) 기간에 방문했던 산사에서는 연세가 여든살이나 되는 노보살과 같은 방에서 며칠 묵었었다. 이 보살은 산방 아랫채에 기거하며 수좌들이 입선(入禪)하는 죽비 소리에 맞춰 정(定)에 들었다가 방선(放禪)할 때 따라서 일어나 채공(采供)을 맡았다. 새벽 정근(定根)도 얼마나 꼿꼿이 앉아 버티는지 곁에 있는 우리도 숙연할 따름이었다. 이튿날은 마침 스님들의 삭발일이었다. 노보살은 스님들께 찹쌀 부꾸미를 해드리자며 장광에 내두었던 나물 소쿠리를 가져왔다. 잎파리가 손바닥만큼이나 넓고 시원스런데다 모양새가 반듯하고 뒷면에는 하얀 솜털 같은 것이 보송보송하게 나 있어서 도시 나물 같지가 않았는데 수리치 나물이라고 했다. 어제 오후에 산에 올라가서 잠깐 뜯었다고 말하는 노보살의 얼굴에 나이답찮게 홍조가 비쳤다. 그러고 보니 보살의 이마에 반창고가 붙여 있었다. 나물을 뜯다가 긁힌 상처인성 싶었다. 보살은 지난 삭발 일에는 표고버섯 구이를 했었는데 스님들이 어찌나 잘 드시던지 그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아서 별식 장만하기가 재미난다고 했다. 우리가 서툴게 지펴주는 화덕 위에 앉아 노보살은 쑥대처럼 흩어진 머리와 땀으로 범벅된 얼굴을 닦을 염도 없이 연초록의 찹쌀 부꾸미들이 채반 위에 늘어가는 것만 흡족해 하였다. 참으로 가관이었다.
한산습득(寒山拾得)의 얼굴인들 그만 했으랴! 호사가(好事家)는 말할 수 있으리라, 여든 노파가 되어서도 여인의 습(習)은 어쩔 수 없노라고.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건 본질인데. 어느 스님은 말씀하셨다. 이 삼천대천세계에 중생의 숫자는 부지기수인데 그 수백억 중생 가운데 누군가를 향해 겸허하게 고개를 숙이고 정성을 바칠 줄 아는 중생의 숫자는 세일 수 있을 정도라고. 나는 노보살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숭덩숭덩 잘라낸 듯한 봉두난발과 고령을 초월하여 새댁과도 같은 젊음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았다.
올 여름에도 또 어느 선방 모서리에서 안거를 치루고 계실까?
아침 공양을 마친 뒤 방선한 스님들을 따라서 비슬산 상봉을 올랐다. 도성암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절경이지만 상봉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정말 대단했다. 칠백리나 된다는 낙동강의 유유한 강줄기와 그 강물을 젖줄로 하여 그물처럼 퍼져나간 도시들이 바둑알보다도 작게 늘어서 있었다.
스님은 남령(南領)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신라 때 관기(觀機)스님은 저쪽 봉우리에 초암을 짓고 정진하셨는데, 이쪽 북혈(北穴)에 계신 도성스님이 그쪽을 바라다보고 초목들이 싱싱하게 관기 스님쪽을 향해 있는 걸 보면 공부가 잘되는구나 싶어 더욱 용맹심을 내었고, 그 주변의 나무들이 생기를 잃고 시들해 보여서 달려가 보면 영락없이 앓고 있거나 공부가 잘 안되고 있더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두 스님은 똑같이 대각(大覺)을 이루었다고 했다.
하산을 하는 길에 총총한 새 울음소리가 계속 우리 뒤를 따라왔다. 스님이 저 새가 뭐라고 우는 지 알아맞혀 보라고 하셨다. “우리 애가 ‘훌딱 벗고, 훌딱 벗고‘ 하는데요”했다. 어제 산중턱에서 만나 짐꾼 노릇을 해주느라고 친해진 누나들이 까르르 하며 아이를 놀려댔다. 그러자 한 스님이 “직심시불, 직심시불” 하고 있다고 했다. 스님은 ‘됫박 바꿔‘ 새라고 했다. 매정한 시어머니가 딸한테는 큰 됫박으로 양식을 퍼주고 며느리한테는 작은 됫박으로 쌀을 꺼내주는 바람에 굶어 죽은 며느리의 혼이 됫박바꿔새가 되어 저렇게 섧게 운다고 했다.
우리들은 모두 귀를 가다듬고 다시 한번 새가 말하는 소리에 귀기울였다. 글째, 나한테는 자꾸 “깍궁, 깍궁” 하며 아는 체를 하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