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 민족통일 불사에 앞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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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종태
1989년 07월 89호
이 땅에 불법이 전래된 지 일천육백여 년이 지난 지금, 국토의 곳곳에, 국민의 가슴마다에 평등과 평화와 자유가 충만해 있어야 마땅할 텐데, 지금 한반도의 현실은 엄청난 질곡과 모순에 빠져 있다. 민주와 반민주가, 통일과 반통일이, 억압과 자유가, 진실과 허구가 혼돈된 채, 남북 분단으로 비롯된 민중일반의 아픔과 폐해는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이차대전의 종말과 함께 잔혹한 일제 삼십육년의 식민지 생활을 청산하고, 이 땅 한반도는 감격의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남과 북에 진주하면서 어두운 역사를 예고했다. 미군은 1945년 9월 1일 살포한 전단에서 “미국은 조선의 재건과 질서있는 정치를 실시하기 위하여 근일 상륙하고, 이때의 경솔하고 무분별한 행동은 의미없이 인명을 잃고 국토를 어지럽히고 독립을 더디게 할 것이다”라고 선언했으며, 그밖에도 포고령의 내용과 당시의 사실적인 근거들을 종합해 볼 때 그들은 해방군으로서가 아니라 점령군으로서 발을 들여놓았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이후 총독부와 남한 전 지역에 펄럭이던 일장기가 내려지고 그 자리에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가 게양되었음을 그 상징적인 예로 들수 있다. 일제의 억압과 수탈에 짓눌린 남한 민중의 아픔이나 독립 해방의 길로 가고자 하는 한민족의 염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피점령 민족으로서 그들의 정책과 명령에 복종할 것을 강요했다.
팔일오 해방과 더불어 여운형을 중심으로 우익의 상당부분까지 포함한 조선건국동맹, 지하운동세력,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자 등이 신생공화국 건립의 준비 기관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조직, 남북한 240개 시,군 중 l45개 시,군에 ‘건준‘이 결성되었고, 10월말 경에는 모든 도, 시,군에 인민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건준‘은 미군 진주 이틀 전인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인공)으로 발전적 개편이 되었는데, 여운형,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이 공식 대표자로 되었다. 특히 각 지방 인민위원회 주체들은 일제식민지 시절에 가장 극심한 고통을 강요받던 기층 민중들이 꾸준한 저항운동의 결과로 튼튼히 꾸려졌음을 감안할 때 약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주적 독립국가 결성을 위한 힘찬 거보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미군정 장관 아놀드는 “38도선 이남의 조선땅에는 미군정부가 있을 뿐이고, 그 외에는 다른 정부가 존재할 수 없다”고 ‘인공‘ 부인성명을 발표한다. 국민 대부분이 지지하고 참여한 ‘인공‘을 부인한 것이다. 이후 미국은 우리 민족의 뜻과는 무관하게 그들의 의도대로 정책을 수행해 간다. 소련군의 북한 진주로 사실상 한반도 전체를 그들의 지배체제로 만들 수 없음을 알고, 남한만이라도 확고한 지지기반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l943년 12월 1일 미국, 영국, 중국이 합의한 카이로선언에서 “전기 3대 동맹국은 한국인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이 해방되고 독립하게 될 것을 결의한다”고 한 것과 그 밖의 얄타협정, 포츠담선언 등에서 한국 독립을 위해 채택된 안들을 교묘히 외면, 파기한 것에서도 그러한 의도를 얄 수 있다.
한편 친미 권력욕자인 이승만은 친일 세력이 중심을 이룬 한민당과 그밖의 민족분열주의자들과 야합해 남한만이 단독 정부를 수립코자 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미국의 정책과 이익에 걸맞는 것이고, 결국 분단의 길을 재촉하는 셈이 됐다.
1948년 8월 15일 남한정부가, 9월 9일 북한정부가 각각 들어서면서 오천년을 함께 피를 나누며 살아온 한민족은 엄청난 고통과 분노를 강요당할 분단의 역사를 시작한다.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앗아간 육이오로 빚어진 남북 분단으로 한반도는 고착화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동서-양진영의 첨예한 냉전이데올로기의 장으로 변하였다.
남한의 역대 정권들은 대부분 민중의 입장에 서지 못한 채 밖으로는 외세 의존적이면서 안으로는 반민주, 반통일적 정치에 골몰하였다. 분단 직후부터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강화해온 반공, 반북의식은, 같은 민족인 북한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증오의 대상으로 만들어 민족의 동질성을 깊이 파괴했으며, 반공이데올로기의 너울을 씌워 민족민주인사들을 무수히 처벌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했다. 분단을 이유로 저질러지고 있는 이러한 반통일, 반민주적 작태는 대개가 독재정권의 유지에 악용되고 있다.
삼십대 재벌의 일년 매출액이 국민 총생산량의 칠십 퍼센트 웃도는 통계로 알 수 있듯이, 남한의 사회적 부는 일부 독점재벌과 특권층에 편중되어 고르지 못한 분배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국민소득 몇 천 달러라는 허울 좋은 구호 아래 오늘도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에 시달리고 있으며, 농민들은 고추파동, 소파동, 담배파동 등 농촌정책의 부재에서 비롯한 엄청난 고통에 한숨을 짓고 있으며, 도시빈민들은 한칸 방조차없이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 아래서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며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예부터 인정 많고 남과 더불어 화기애애하게 살아온 우리의 사회가 출세주의, 쾌락주의, 황금만능주의 등 심각한 병리현상을 보이고 있음은 어제나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나 하나만, 또는 나와 가까운 주변 사람들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생각들은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로까지 번져서 납치, 폭행, 인신매매 둥이 횡행하고 있다. 또한 계급 계층간의 갈등, 지역 간의 감정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재해 있다.
분단과 함께 밀어닥친 퇴폐적이고, 소비적이며, 건강치 못한 서구문화는 반만년의 찬란한 우리 문화를 도처에서 침식시키며 무분별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악취를 풍기는 외래문화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심각한 형편이다.
분단을 이유로 남한에 들어와 있는 핵무기의 존재는 사실은 미국의 대소 전략에 따른 것으로서 한민족에게는 절대절명의 문제이다. 이차대전 말기에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위력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바, 그때의 원자폭탄보다 훨씬 위력이 있는 핵무기가 지금 남한에 있는 것이다. 미국의 고위 간부들이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의 정책과 이익에 합당할 때면, 그들은 우리 민족의 뜻과는 상관없이 핵무기를 쓸 것이다. 만일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한민족은 절멸할 터인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 땅에 핵무기가 존재해야만 하는가?
분단으로 인한 고통과 폐해를 간략히 적어 보았지만 어찌 이것뿐이랴. 남북이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은 단순히 휴전선이 없어지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통일이란 우리들 삶에서 분단으로 인해 망가지고 굴절된 모든 모순을 바로잡는 것이어야 한다.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민족통일을 향한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해온 이래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국의 길에 앞장섰던 빛나는 전통을 간직해 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분단이후 한국불교는 민족문제에 대해서 방관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과 독재정권은 교묘하고 끈질기게 불교 와해공작을 펼쳤고, 일부 몰지각한 반불교적 승려들은 호국불교라는 미명 아래 분별없이 독재정권을 지지하면서, 분단으로 비롯된 민중의 고통은 외면하였다. 독재정권의 편에 서는 것이 얼마나 반민족적이며 반민중적이며 반불교적인가를 통감치 못하고 추악한 이익에 매달려 이전투구를 하였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언제부터인가 절 집안에 팽배하고 있는 관념적, 이기주의적, 개인주의적 사상들은 불교 본래의 모습을 의심케 하고 있다.
이제 불교인 모두는 지난 날을 깊이 반성하고 사회와 역사 앞에 결연히 나서야 한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나 철학이라도 사회적, 역사적 실천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역사 속에서 배척의 아픔을 맛보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분단으로 겪는 민중일반의 엄청난 고통과 폐해를 단절시키기 위해서는 민중과 생사고락을 함께 함을, 동체대비함을, 하나됨을 실천적 삶으로 보여야 한다. 때로는 사문으로, 때로는 투사로, 농민으로, 노동자로…
민족통일 불사의 회향은 분단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고통을 강요하는 사람도 모두 해방되는 것이며, 나아가 무명과 번뇌의 사슬을 끊고 열반의 길에 이르는 귀중한 디딤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