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고삿길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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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여연
1989년 07월 89호
그 누구나 한번쯤은 체험해 보았으리라. 오랫동안 객지에서 떠돌다 어쩌다 고향의 옛 마을을 찾을라치면 먼저 그 낯선 풍경에 가슴이 온통 쓸쓸해짐을.
기세도 좋아 위풍당당하던 동구밖 큰 당산나무는 어느 해 폭풍 속에 벼락맞아 죽어 있고, 그 풀 옆에서 뛰놀곤하던 아담한 고삿길들은 심장이라도 내보여줄듯 훤히 뚫려 시멘트로 포장된 모습이 영 어설프기만 하다. 땀 내며 걷다가 고개 처박고 마시던 그 옹달샘의 시원한 물도 어느새 수도꼭지로 바뀌고 보니 물맛까지도 도시의 소독 냄새에 찌들고 말았다. 이끼 낀 채 반쯤 썩은 시냇물, 사금파리처럼 공허하게 빛나는 벽돌의 양옥집, 거기서 흘러나오는 온갖 잡동사니의 소리, 모든 것이 이렇게 획일화된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도시의 일상에서 늘 접하던 이 빤한 풍경을 전혀 예기치 않던 곳에서 문득 대할 때의 그 낯선 느낌에 몸서리치며, 오랫동안 간직해온 꿈으로부터 배반당한 가슴은 허망함을 앓는다.
그러나 어쩌랴. 오온개공(五蘊皆空)하며 일체고액(一切苦厄)이 아니던가. 세상에 있음 하는 것들이 본디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의 덧없는 그물로 덮여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리 세계가 변화하는 무상성에 쌓여 나간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땅에서는 정작 변화해야할 것은 변하지 않고 쓸데없는 잡것들만 변하고 있는 것을. 겉모양만 번지르르하게 포장된, 알맹이 없는 싸구려 상품마냥 전락해 가고 있는 것이 이 땅의 모습인 것을.
서구문화가 다 쓰고 버린 온갖 쓰레기들이 들어와 이 땅의 사람과 일상을 병들게 하고, 올바를 삶의 가치를 단절시켜 놓았다. 어디 문화와 삶의 모습 뿐인가. 정치, 경제를 위시하여 외세의 입김 속에 들어온 온갖 것들이 마구 점거해 버린 이 땅은 세계의 온갖 모순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마치 싸구려 장터와도 같은 것이 우리 민족의 현실이다.
자주성을 확립하지 못한 정치 권력의 대외의존, 미국의 시녀화는 이 땅에서 갈수록 전근대적인 독재 체제를 굳혀 가고 있으며, 서구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엄연히 존재하는 노동자 파업이나 교직원 노조 결성을 물리적인 힘으로 억압하는 따위의, 봉건주의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반민주적인 통치 방식이 버젓이 통하고 있다.
한편, 한국 경제의 구조적 예속성은 이제 더 이상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막대한 원조와 차관을 미끼로 한국에 대한 경제적 진출을 꾀해 오던 미국의 독점자본이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직접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압력을 가하고 있는 가운데, 그런 압력에 밀려 장차 금융시장과 자본시장까지 개방하게 되면 우리의 경제는 얼마 안 가서 미국과 일본의 독점자본 밑에서 완전한 노예가 될 것이 자명한 실정이다.
그런가 하면, 농촌은 농촌대로 농산물의 전격적인 수입개방 합력 속에서 절망밖에 기대할 것이 없는 처지에 있고, 외국의 독점 자본을 등에 업은 국내 독점 재벌기업들은 중소기업과 민족자본 기업의 존립기반까지 흔들어 놓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나날이 민족 모습과 계급 모순만을 심화시키고 있는데도, 정치와 군사력의 자주권을 되찾고 또 한 자립경제를 확립하여 그런 모순을 타파함으로써 당당한 민족으로서 온전하게 설 수 있도록 국민의 힘을 모아야할 제도정치권은, 오히려, 당리당략에만 혈안이 되어 서로를 공격하는 추태를 그려내고 있다. 힘을 모으기는 커녕, 틈만 있으면, 정부와 체제수호집단들은 보수와 혁신으로 패를 가르며 올바를 생각을 생산하는 집단들에게 돌팔매질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정치 권력자들은 자기생존을 위해서 그렇게 협잡한다고 치더라도, 속세를 훌훌 털고 출가한 승려들은 무엇에 그리 연연하여서 아니면 무엇이 떳떳하지 못해서 역사의 질곡을 외면하고 있는가 이 모순으로 가득찬 사회를 구재하려는 조그마한 노력도 없이 자기수행에만 골몰한 채 침묵을 지킴은, 곧, 그릇된 사회에 동조하는 꼴이 아니겠는가.
깨달음을 향한 철저한 수행은 더욱 큰 사회의 변혁을 위함이라고 깊이 헤아려볼 수도 있겠지만, 변화하는 사회속에 있으면서 그 변화하는 운동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것에 선행하는 사회의 의식이나 역사의 흐름에서 앞장설 줄 모른다면, 모두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중생의 현실을 알지 못하고 외면한 수행이라면 아무리 돌조각을 쪼아서 부처를 이룬다 하여도 헛일이 아니겠는가.
부디 깨달음을 위한 피나는 수행 속의 화두(話頭)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현실을 비껴가는 의단이 아니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