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익(謙益)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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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이 땅의 스님들 - 편집실
1989년 07월 89호
겸익대사는 백제 문화가 가장 크게 전성기를 누리던 26대 성왕(聖王) 때의 고승이다. 백제 불교사를 알려주는 문헌이 전혀 없어서 스님의 생몰연대나 출생지 등은 알 길이 없지만,「조선불교통사 상편」의 ‘미륵불광사 사적(彌勒佛光寺事蹟)’에 스님의 자취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겸익대사가 성왕 4년 곧 서기 526년에 인도에서 불교학을,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율학(律學)을 공부하고 돌아오자 스님을 크게 환영한 왕은 그 무렵 최고의 사찰이던 흥륜사(興輪寺)에 지내게 하였다. 그리고 인도에서 가져온 율장(律藏)을 번역하게 하였는데, 그 시절의 고승 스물여덟 명을 소집하여 그 일을 거들도록 하였다. 번역을 마치자 담욱(曇旭)스님과 혜인(惠仁)스님은 36권의 율에 대한 주석서〔律의〕를 지어 왕에게 바쳤다. 이를 기뻐하여 왕은 비담(昆曇)과 신율(新律)에 서문〔序文〕을 지어서 대요전(大燿嚴)에 받들어 모시었다.
겸익대사는 인도 유학시에 당시 율학의 중심 도량인 상가나대율사(常伽那大律寺)에서 5년 동안이나 범문(梵文)을 배워 범어(梵語)에 달통한 뒤에 오부율문(五部律文)을 가지고 왔는데, 이 오부율문이란 대체로 사분율(四分律), 십송율(十誦律), 오분율(五分律), 해탈율(解脫律), 마하승지율(摩詞僧祗律) 등이었다. 이러한 율학
의 전통은 그때의 중국의 율학과는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뒤에 일본의 율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겸익대사는 이렇듯 백제 율종의 비조(鼻祖)일 뿐만 아니라, 백제 율학에 큰 주춧돌을 놓은 고승이다.
그 뒤로 백제는 사원에서는 말할것도 없고 왕명에 따라 세속에서도 살생을 금하는 것을 비롯하여, 형식적인 계율의 장려에 그치지 않고 불교의 계율과 정신을 생활화하였다. 이러한 불교의 국가적 실천은 일찍이 율학을 전한 겸익대사의 영향이었음을 삼국유사는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