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땅에 민주주의가 탄생된 해방 이후 우리는 민주주의의 이상론과 현실론의 불협 화음으로 진퇴(進退)를 거듭하며 부대껴 왔다. 그 부대낌은 4.19혁명, 유신정권반대 등의 소용돌이 속에 대부분의 젊은 청춘들이 그 제물로 희생되어 왔다.
아직 대학가의 젊은 학도들은 사회의 오염을 읽기보다는 미래 사회의 꿈을 키워야 제격인데, 데모의 아우성 소리에 섞이고 최루탄 까스에 밀리고 쫓긴다. 위정자는 학생들이 제 본분을 잃었다고 꾸짖고 학생들은 위정자가 처해야할 직분을 잃었다고 정책을 힐난하니 이 일은 누구를 꾸짖고 힐난해야 할 일인가 ! 이미 정도를 지나쳐 만성 염증과 같이 되어버렸다.
이 일이 마치 만성 종기와 같다면 근본적으로 치료하기를 꺼리어 적당히 반창고나 붙여서 은폐하여 두는 치료 방법을 현명하다고 하겠는가!
위정자는 민중의 섭리와 질서를 알아야 할 것이다. 당나라 태종의 말과 같이 ‘백성을 다스리는 치세(治世)는 백성을 사해(四海)의 바다와 같고 군왕은 바다위에 떠있는 배와 같아서 군왕이 바다의 순리를 져버리면 배는 침몰한다’ 고 하는 순리를….
또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하며 알아야 할 것이다.
민주정치는 국민에게 주권이 있으며 국민을 위한 정치이다. 그러므로 국민은 그 정치를 관리하고 집행할 위정자를 뽑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민이 위정자를 낳은 것이므로 위정자의 어머니가 되며 아들을 잘못 가르쳐서 과오를 범하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겠는가? 잘 살피지 못하고 잘 가르치지 못한 과보를 오천만 우리 국민들이 감내해야 하는 것
이다. 무사안일의 타성에 젖은 번뇌를 벗기지 못한 혹독한 과보의 쓰디 쓴맛을 맛봐야 하는 것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하여 우리는 다시 한번 준마와 같은 훌륭한 기량과 무한한 소질을 발현(發顧)할 수 있는 기틀을 보았다.
세계속에 한국을 동방의 횃불 진주알로 키워낼 근성을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