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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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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 운산 1986년 10월 56호
“제가 뭐 잘났다고 저러고만 있지?”
\"누가 아니래. 조그만 게 점잖은 척하고 말이야\"
“예쁘게라도 생겼으면 말도 안하지”
“길다란 게 아무것도 없는 땅바닥을 백날 비추고 있으면 뭘 한대?”
누리네 방 문구멍으로 빠져나간 빛조각들의 얘기입니다. 석류나무 잎새들을 비추고 있는 빛조각들의 수다떠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그렇게 윽박질을 해도 문틈으로 빠져나간 가느다란 땅 빛조각은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소리 없이 울고만 있었읍니다. 있는 듯 없는 듯 땅바닥만 비추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얘길 해도 들은 척도 않고 있는 꼴 좀 보라지”
“글쎄 말이야 바보 같은 게”
땅 빛조각은 죽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조차도 알 수가 없었읍니다.
바람이 부는 것 만큼이나 잎새 빛조각들의 수다도 그칠새 없이 이어지고 있었읍니다.
“뭐가 그렇게들 소란스러우냐?”
빨깡게 익은 석류를 비추고 있던 커다란 빛조각이 입을 열었읍니다.
“나뭇잎을 비추든 땅바닥을 비추든 어둠을 밝히는 점에서는 다 같은 거야. 우리는 어둠 속에서 조그만 제자리를 밝히며 살아가는 한빛 형제들이야 다투지 말고, 누굴 업신여기지도 말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느니라. 우리는 모두 같은 빛뿌리란다”

석류 빛조각의 점잖은 말씀에 뜨락은 엄숙할이 만큼 조용해졌읍니다. 산들바람도 잠시 몸짓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옵니다.
석류나무 둥치를 비추고 있던 빛조각의 말씀이 옳을 것 같았습니다. 땅 빛조각은 가슴이 찌잉 울려오는 듯 했읍니다.
그러나, 잎새 빛조각들만은 그렇지 않았옵니다.
“피이, 말도 안되는 소리야. 우린 이렇게 따로 따로의 빛조각들인데 어째서 같은 빛뿌리란 말이야?”
“그건 괜히 하는 소리라구”
“어째서 우리가 저 쓸모 없는 땅 빛조각이랑 한 형제란 말야”
잎새 빛조각들은 석류 빛조각이 들리지 않는 자리에서 이렇게 수군거렸읍니다.
잠시 멎었던 산들바람이 다시 불어 오자, 잎새 빛조각들은 또 신명이 난 듯 까불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읍니다.
“뭐니 뭐니 해도 우리가 최고라고…. 우리가 잎새를 키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석류가 열릴 수 있었겠니 ?”
“맞아, 맞아”
“사실은 석류 빛조각도 우리들이 부러워서 그러는지도 몰라”
땅 빛조각은 이러한 잎새들의 얘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따금 깊은 생각에 잠기곤 하였읍니다.
“우리는 다 한빛 형제들이야. 우리는 모두 같은 빛뿌리란다”
땅 빛조각은 지금까지 어둠 쪽으로 비춰 나가기만 하던 것을 자기 안쪽으로 되비추어 보았읍니다 . 땅 빛조각은 순간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땅바닥에 깔려 있는 작은 빛조각인 줄로만 알았던 자기가 길게 빛줄기로 이어져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 땅 빛조각은 너무 놀라와서 얼른 제자리로 빛을 돌리고 말았읍니다. 얼마 후, 다시 용기를 내었습니다. 땅 빛조각은 자기의 빛줄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갔읍니다. 저만큼 방 안에는 번쩍이는 빛뿌리가 얼핏 보이기도 했습니다. 땅 빛조각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빛줄기를 타고 좁다란 문지방 틈새로 들어가 방안에 이르렀습니다.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땅 빛조각은 그만 기절을 하고 말았읍니다.
얼마 후, 깨어났을 때는 이미 땅 빛조각이 아닌 커다란 빛뿌리였읍니다. 어디에도 조그만 빛표각의 자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정말 꿈만 같습니다. 그러나 틀림없는 사실이었읍니다. 자기도 다른 빛조각도 없고, 방 안 가득 커다란 한빛으로 채워져 흘러 넘치고 있었읍니다.
아, 저만큼 잎새 빛조각들이랑 석류 빛조각이랑 땅바닥을 비추고 있는 제 빛조각까지 이렇게 딴빛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었읍니다. 사실은 빛조각들이 아니 한빛덩이였읍니다. 그러니까 그 모두를 통털어서 하나의 「나」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아 ! 놀라와라. 신비해라. 거룩하여라. 둥근 빛 한뿌리에서 그 모두가 나퉈졌고, 나퉈진 그 자리에서 다시 하나로 모아져도 그 모습은 항상하여 변함이 없는, 나 이제 그 뿌리로 돌아왔으니 온갖 시름 모든 걱정 다 놓았어라”
이렇게 옳고 나서 석류 빛조각의 은혜를 생각하자, 그 은혜의 빛 속에서 이런 말씀이 들려 왔읍니다.

“장하다 너는 이제 한빛의 뿌리
한빛의 빛뿌리로 빛을 뿌리며,
모두를 보살피어 키워 나가리.
모두를 빛뿌리로 키워 나가리.

너는 지금 빛뿌리로 돌아갔지만
가서 보면 본래의 너의 그 자리.
거기서 빛나라로 다시 온대도
와서 보면 오고 감이 본래 한자리”

빛뿌리가 된 땅 빛조각은 조용히 다른 빛조각들의 곁으로 돌아왔읍니다. 옛 그대로 조그만 땅 빛조각으로서 제자리를 지키며 살아갈 것입니다. 빛조각들의 이름이 다할 때까지 그렇게 살아갈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