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보살의 대비(大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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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송석구
1986년 10월 56호
「선남자여 여래의 공덕은 가령 시방에 계시는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불가설 불가설 불찰극미진수겁을 지내면서 계속하여 말씀하시더라도 다 말씀하지 못하느니라. 만약 이러한 공덕문을 성취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열가지 넓고 큰 행원을 닦아야 하나니 열가지라 함은 무엇인가. 첫째는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요, 둘째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요, 네째는 업장을 참회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설법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요, 일곱째는 부처님께 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이요, 아홉째는 항상 중생을 수순하는 것이요, 열째는 지은 바 모든 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것이니라」
이는 보현보살의 십대행원이다. 내가 이 행원품을 처음 만난 것이 1964년 5월 경이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이 불교법회가 많이 있지도 않았을 때이고 더구나 이와같은 수행을 강조하는 믿음이 저변화되지도 않을 당시이다. 마침 서울 근교에서 군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동국대학교의 대학선원을 외출 나올때에 자주 들려 참선공부도 하고 법문도 들었다. 그때 지금은 미국에 가 계신 P교수가 행원품을 프린트로 인쇄하여 강의를 하고 있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나지만 행원품에 나오는 소위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양한다는 것은 진법계 허공계 시방삼세 일체불찰 극비진수 모든 부처님을…」 하는 대목에서 부처님의 수효이다.
이 문제를 얼마나 명쾌히 설명하고 내가 얼마나 환희에 차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오랫동안 나의 머리에선 이렇게 많은 부처님이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과연 이 많은 수효의 부처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참으로 막막할 뿐이었다. 그때 설명을 기억해 내자면 원을 그리고, 그 원이 부처라면 그 속에 또 수 없는 부처가 계신다면 하는 뜻으로 해석한 것 같지만 그것마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P교수님은 얼마 후 나에게 보현행원품은 수천번 읽어야 이해한다고 말한적이 있지만, 그리고 그뒤 3, 7일을 아무 것도 안하고 보현행원품만 읽었더니 그때서야 행원품의 정신을 조금 이해할 것 같다고 하기도 했지만, 하여간 그 당시 나는 이 대목에 막혀 이 행원품의 근본인 대비원행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행원품과 기타 불교의식문이 쓰여진 자그마한 프린트본 행원품이 언제나 가방안에 넣어져 있었으며 매일 아침 독송하기 시작하였다.
전포뻘 임한강을 끼고 대피한 철책선은 퍽이나 지루하였다. 새벽이면 눈을 뜨자마자 보현행원품을 읽고 모든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한 1년을 OP의 빵카 생활이라 그런대로 내가 책임자이기 때문에 자유스러운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높은 소리로 보현행원품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대본부로 전출하자 한방에 7,8명의 장교 숙소라 남보다 일찍 일어나 전기불을 켜고 일과를 진행할 수 없었다. 그것이 무엇보다 고통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군부대에 일반 한전 전기가 들어올 때가 아니라 초저녘만 발전기 전기를 사용하다가 일정한 시간이 되면 기름을 아끼기 위해 절전하고, 석유 호롱불을 썼다. 나는 내 생활의 리듬을 깰 수 없었
다. 그래서 새벽에는 파카를 뒤집어 쓰고 아무도 없는 텅빈 사무실에 불을 켜고 이 경을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었다. 다만 읽는 것이 나의 생활이요 신앙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극미진수 모든 부처님을 내가 보현행원의 원력으로 눈앞에 대하듯(如對目前) 깊은 믿음을 내어서 청정한 몸과 말과 뜻을 다하여 항상 예배하고 공경하되 낱낱 부처님 계신 곳마다 불가설 불가설 불찰극미진수 몸을 나투고 낱낱 몸으로 불가설
불가설 불찰극미진수 부처님께 두루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니··」여기서 눈앞에 대하듯 참으로 그렇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부처님을 향해 예배하고 공경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배하고 공경하는 마음의 태도는「눈앞에 대하듯」해야 하고 그렇게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의문은 계속되었다. 그러면 그 많은 부처님이 과연 누구이며 어디 계시느냐 하는 문제이다. 절에 계신 부처님이냐, 그러면 아무리 많은 부처님 존상을 많이 만들었다 해도 고 수효가 작은 티끌같이 많은 수효이냐, 무엇을 극미진수와 같이 많은 부처님이라 했는가. 이 문제는 가슴속에서부터 풀리지 않았다. 물론 그때만 해도 중생이 곧 부처이요 또 마음으로 소위 심불 중생이 무차별이라는 말을 모르고 있진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지식으로 알았지 그것이 가솜속에 닿아 그것들이 하나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진실된 믿음을 통해 이해되었다면 이토록 오랜 시간을 방황하고 고통에 눌려 있지 않았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났다. 이제는 그 어려웠던 월남전에서 돌아와 제대를 하고 사회의 첫발을 디디게 되었다. 해인사로 가는 길에도 나는 보현행원품을 읽었다. 그러나 아직도 나의 신앙의 일상적인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불광법회에 관여하게 되었고, 마침 광덕스님 저서 「보현행의 서원」이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 그때 나는 그 속에서 바로 그 많은 수효의 부처님이 누구인가가 확연히 떠올랐고,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다.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일체의 모든 것이 부처이구나. 사람은 그 누구도 부처 아닌 사람이 없으며 소, 말, 돼지 모두가 부처이구나」
너무나 오랫동안의 어둠이었다. 열반경 일체실유불성(一切悉有佛性)이라는 말도 이제야 뚜렷했다. 부처 아닌 것이 없다. 동일법성(同一法性)이요, 동체대비(同 太悲)라는 모든 말이 술술 풀어지는 것이요 교리상의 연기법이 확연했다.
내가 이러한 사상을 얼마나 실천하느냐 하는 것은 아직은 많은 장애가 있고 모자람이 있지만 적어도 상식인으로 어느 정도 이해하였고 그 기쁨은 나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것이다. 아직도 나는 일체가 부처임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철저하게 실현하고 있지 않음은 고백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속의 웅어리가 풀려 환희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어쨌든간에 나에게 보현행원품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무한능력을 보여주는 것이요 그것은 곧 보현의 대비원력으로 통하는 것이다.
보현의 대비는 이것이다.
「만약 보살이 능히 중생을 수순하면 곧 모든 부처님을 수순하며 공양함이 되며 만약 중생을 존중히 받들어 섬기면 곧 여래를 존중히 받들어 섬김이 되며 만약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심이 나게 하면 곧 일체 여래로 하여금 환희하시게 함이니라. 어찌한 까닭인가. 모든 부처님께서는 대비심으로 체를 삼으시는 까닭에 중생으로 인하여 대비심을 일으키고 대비로 인하여 보리심을 말하고, 보리심으로 인하여 등정각을 이루신다」
중생이 없으면 대비심도 없고 대비심이 없으면 보리심도 발하지 못하고 보리심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찌 등정각을 이룰 것인가. 보현보살의 대비심은 곧 중생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나 보현보살은 중생을 떠나 없다.
대비심은 곧 보현행원의 십대행원을 실천하는 것이다.
십대행원이라 해도 하나 하나는 모두가 함께 통하고 있으니 이 중에 하나만 실천해도 십대행원을 실천하는 것이다.
모든 중생을 부처로 보는 눈 즉 나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부처님의 낱낱 나툼임을 알아야 할 것임을 두 말할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