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모르나 하루에 세번 산책길에 나서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 버렸다. 하루라도 빠지는 날에는 뭔가 허전할 정도로 폭 가야만 하는 골짜기 그 곳에는 나무 뿌리 밑에서 솟아 나오는 샘이 셋 있다. 주위에는 도토리나무와 단풍나무 가지들이 서로 엇갈려 하늘 한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이 빽빽하다. 샘 둘레에는 가끔 다람쥐들이 물어다 놓은 꿀밤도 있다. 그리고 앉아서 쉬기에 알맞은 납작한 돌도 있다.
처음에는 그저 가서 손 씻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되돌아 왔는데 자주 가다보니 모르는 사이에 정이 들어 임의로 생마다 이름을 지어 주었다. 맨 위에 있는 샘은 나머지 두 샘과는 달리 단풍잎 잎새로 달님이 들어와 샘물 위에 살그머니 비치는 옹달샘이라 반야샘이라고 불러 주었다. 이 샘에서 넘쳐 흐르는 물은 샘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졸졸 흘러내린다. 중간에 있는 샘은 반달샘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왜냐하면 이 샘은 항상 잎사이로 지는 달이 반밖에 비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넘쳐흐르는 물은 샘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졸졸 흘러내린다. 맨 아래에 있는 생은 푸른 산빛에 가려 한가닥의 빛도 볼 수 없다. 그래서 무명(無明)샘이라고 별명을 불러 주었다. 이 생에서 넘쳐 나오는 물은 샘을 중심으로 곧게 흘러내린다. 결국 세개의 샘에서 넘쳐 나오는 물은 다른 곳으로 흘러가 땅속 저 밑에서 서로 만나나 보다.
큰절에서 이 샘까지 가려면 이, 삼십분 정도 걸린다. 빠른 걸음으로 그곳에 도착하면 등에 땀이 나와 끈적끈적 하다. 무명샘에서 곧장 몸을 씻는다. 그리고 반달샘에서 반달을 길어 마신 후 시원한 볼일을 보고 있으면 담비가 앞에서 몰래 생(生)비디오의 한장면을 훔쳐 보고서는 우스운 듯 앞발로 머리를 비비고 꼬리를 흔들며 도망가 버린다.
잠시 후 상쾌한 기운이 온몸을 감쌀 때 표주박으로 만든 쪽을 자복 반야샘에서 달이 비치면 달을 걷고, 별이 비치면 별을 걷고, 산새가 비치면 산새을 걷고, 별과 달이 없는 구름낀 밤이면 어둠을 길러 채우다 보면 다관은 만수가 된다.
때로는 어린시절에 많이 애창했던 동요가 줄줄 나온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이 가사에 흥을 돋구면 어떤 날은 꿈 많았던 소년 시절의 추억을 길어 올 때도 있다.
비오는 날 우산을 받쳐 들고 샘가에 앉아 있으면 캠퍼스 시절에 친구가 내게 읽어 주었던 주옥같은 명시도 떠 오른다.
… …
두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
만 ,
… …
이런 아름다운 시들이 스쳐 지나가는 날이면 발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고 지난 날에 즐겨 갔었던, 진부령을 넘어 통해 바다로 간다. 어깨를 걸치고 지칠줄 모르고 온갖 개똥철학을 논하며 비오는 해변을 거닐기도 했다.
갑자기 빗방울 소리가 세차게 들린다. 아차 ! 할 일을 깜박 잊었구나, 한 쪽박에는“침의 침묵”을 다른 쪽박에는 “목마와 숙녀”를 셋째 쪽박에는 “애나벨 리”를 퍼서 담아 급히 내려 오는 황혼녁도 있다.
이렇게 해서 길러온 새벽 성수(星水)는 부처님 앞에 올리고 사바세계의 모든 중생이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빈다. 낮에 길어 온 명수(明水)로 정성껏 공양지어 부처님과 대중스님께 올린다. 그리고 저녁에 길어온 월수(月水)는 청사초롱 앞에 둥글게 앉아 이야기 나누며 마실 차물을 끓인다. 은은히 꿇어 오른 물에 녹차를 빼고 있을새면 정담도 무르익고 정성도 무르익는다. 차를 잔에 붓고 정성을 마시는 일이 끝나면 방에는 나 혼자뿐이다. 이름 모를 짐승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나는 내일이 오면 어김없이 또 그곳에 가서 정성을 담아 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