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앞에 선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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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거수상(山居隨想) - 효종
1983년 03월 13호
얼마 전 일본의 모 교수는 대학생들이 왜 불교학과를 선택하는가에 대해, 그들의 수강신청 이유와 앞으로의 희망을 토대로 해서 현대의 젊은이들이 종교에 정근하는 몇 가지 유형(類形)을 제시한 책이 있었다.
그 첫째는 현 불교 교단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자기의 부모들이나 일본이란 나라가 거의 습관적으로 믿고 있는 불교가, 어떻게 이렇게 오래 전통으로 이어져 올 수 있는지에 관심을 표명, 불교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는 것이다.
두 번 째는 오랜 역사가 흐르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쳐 나름대로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케 했고, 또 일본의 문학이란 영역에 침투해 작가들의 정신이 불교사상에 젖게 한 그 원인에 관심이 크다고 했다.
세번 째는 특히 일본인들이 외국에 나들이를 할 때 느끼는 것으로서, 외국인들은 자기들의 사상 내지 종교를 뚜렷하게 제시하고 또 알고 있는데 반해, 일본인들은 자기들의 것을 거의 모르기 때문에 심한 부끄러움을 겪게 되는 예가 허다해서, 이에 자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은 일본 고유의 사상 내지는 종교로서 불교를 확인하고 싶어서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네번 째는 불교 뿐만이 아니고 종교라는 것은 인간이 생존해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분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아가서 종교는 무엇을 찾는 것인가? 인간에게 왜 종교가 필요한가? 종교가 필요하다면 왜 종교전쟁은 치러야만 하는가? 하는 점들에 의문이 않으며, 일본의 불교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어떤 해당을 주는 것인지 등을 듣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상에서 열거한 몇 가지를 종합해서 말한다면 오늘날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은 신앙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종교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매우 타산적이고 지극히 실리(室利)적인 이유로 종교를 가까이하며, 지식으로서의 종교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 교수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피교육자의 의식구조상 불가피하게 신앙이 결여된 종교 교육을 실시할 수 밖에 없으며, 그에 따른 부작용이 심히 우려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문제는 비단 이웃 일본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젊은 계층에서는 종교를 알려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그 대신 종교를 믿으려는 사람은 차차 줄어드는 추세에 놓여 있는 것 같다. 매우 유감스럽지만 지식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지식의 일부로서 종교를 알려는 흐름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많은 종교인들은 지적하고 있다. 더구나 불교적 입장에서는 이런 태도가 신앙생활과 수행에 해롭기 조차 하다고 얘기되어 왔다.
금정산(金井山)의 고찰 범어사(梵魚寺) 일주문(一柱門)에는 이런 현판이 걸려 있다.
「入此門來 莫存知解」 (입차문래 막존지해)〈이 문안에 들어오는 이들은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즉 불교에 입문(入門)하는 사람은 모든 알고 있는 지식을 버려야 하고, 지식으로 진리를 알려는 노력도 버려야 된다는 뜻이다.
이토록 오랜 세월 속에 변치 않는 모습으로 내방자(來誌者)를 맞이하는 이 말씀은, 종교의 진면옥(眞面目)이란 말이나 글자를 통해서 얻어지는 지식과는 다르며,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만이 종교의 진수(眞髓)를 알 수 있다 한들 지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습관에 물들어 있는 현대인들이 얼마만큼 그 말씀을 따라 줄까? 그것은 마치 일년 내내 눈 덮힌 험준한 산을 오르는 등산가에게, 꼭 필요한 산소호흡기를 때고 가자는 거와 같아서 실현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지식으로 종교를 알고 싶은 욕구가 일어날 때 그 욕구를 채워주고,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이 생길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편이 현실에 있어서의 진정한 자비의 방편이 아닐른지 모르겠다.
종교도 역시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므로 초역사적 진리와 역사적 현실을 조화시켜 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하겠다.
(스님, 해인사중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