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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포 언덕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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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 - 정빈 1983년 02월 12호
봄기운 감도는 햇살을 받으며 자그마한 걸망을 어깨에 메고 이곳을 찾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란 세월이 가포의 물결 따라 가버렸다.
이곳은, 말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마산에 자리한 「국립결핵요양소」이다. 결핵이란 명명을 가진 자만이 올 수 있는 선택받은 곳으로, 세인들은 요양소니 병원이니 하지만 이곳 가슴 아픈 사랑들은 ‘가포대학’ ‘하얀 맨숀’ ‘폐병공장’ 등으로 부른다. 가포대학이라 함은 이곳에 모인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직업과 아픔을 미화한 표현이고, 하얀맨숀은 병동의 벽색깔이 온통 하얗게 칠해진 데서 유래한다. 폐병공장이란 폐결핵 환자만이 올 수 있고 너무 많이 모여 있다는 자학적인 표현이다.
이 ‘하얀맨숀’에는 약 500명의 가슴 아픈 사람들이 머물고 있다. 결핵이란 병은 전염성 질환으로 결코 짧은 시간에는 치료될 수 없고, 아무리 가벼운 상태라도 7개월 이상의 장기간 약을 복용해야만 치료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는 ‘만기’라는 것이있다. 전국에 있는 결핵환자 모두에게 혜택을 주자는 뜻에서이며, 그 기간은 7개월이다. 물론 만기 전에도 강제퇴원 당하는 사람, 입원비가 없어 퇴원하는 사람, 그외에도 나름대로의 사정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은 만기를 채운다. 병동은 8개 병동이 있고, 그 중 제 4병동은 死병동으로 죽은 자만이 갈 수 있다.
처음 이곳에 와서 며칠 되지 않아 만난 K라는 환자의 일이 언제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K환자는 당시 마흔이 조금 넘은 나이로 밖에 있을 때 조그마한 쌀집을 경영했는데, 마산 시내에 사는 까닭에 가포유원지로 종종 산책을 나왔었다고 했다. 가포 풍경은 꽤 괜찮은 편이다. 이른 봄에는 양쪽 길에 늘어선 아름드리 벚나무에 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성모산 골짜기의 시원스런 물소리가 좋고, 가을에는 갈마산 단풍이 내장산, 설악산에 부럽지 않을 정도요, 겨울에는 잎 벗은 나무가지를 보는 맛도 나쁘지 않다. 이런 극락과 같은 길을 K환자는 자주 걸었다 했다. 그러나 생각에 잠겨 걸을 걷다가도 ‘하얀맨숀’을 지나칠 때면 머리를 병원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숨도 쉬지 않고 마구 달려서, 병원 건물이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숨을 쉬었노라고 했다
그만큼 결핵을 무서워했고 병원은 싫어했는데, 지금은 다른 환자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병실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어찌 이리도 기막힌 일이 있느냐고 하소연을 하였다.
공감이 가는 바였다. 허나 무어라고 위로해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K처사님, 처사님의 의문을 나도 도무지 알 수 없으니 직접 부처님께 여쭤보십시오!”
했더니, 어떻게 해야 부처님께 여쭐 수 있느냐고 물었다. 부처님께서 대답하실 때까지 하루에 세 번씩 약을 먹을 때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라고 했더니, 알겠다면서 떠났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기침을 콜록거리면서.
그 뒤 두어 달 지난 어느 날, K환자가 나를 다시 찾았다.
“스님, 부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그래 뭐라고 하십디까?”
아무 말없이 미소만 짓는다. 그는 미소를 지을 때마다 광대뼈가 양쪽 얼굴에 톡 튀어 나오는데, 그날은 유난히도 그 얼굴이 깨끗했고 미소를 자주 지었다.
“부처님이 뭐라고 하셨읍니까?”
조금은 급한 성격이라 말하기도 전에 재차 물었다. 역시 웃기만 했다. 그리곤 아무 말없이 병실로 내려갔다.
부처님께 세 번 절을 하고, 두달 전의 모습처럼 가쁜 숨을 몰아 쉬여 기침을 콜록거리면서.
그 이후 여지껏 그는 소식이 없다. 그는 이미 이 세상의 태양을 볼 수 없는 외로운 넋이 되어 산모퉁이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낙엽들과 동무하고 있는 지 두 해가 넘었기 때문에. 고인이 된 그는 지금쯤 결핵이나 완치시켰는지 ? … 아니면 지금도 약을 먹고 있는지….? 세상을 떠나기 전 K환자가 남긴 의문은 아직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그래서 그를 쉽게 잊지 못하고 있다. 부처님이 뭐라고 대답했기에 일주일도 못되어 그는 떠나고 말았을까?
완쾌되어 퇴원하는 사람은 마치 고시 합격이나 한 것처럼 즐거워하면서 떠나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동료 환우(患友)들이 흔드는 손바닥을 바라보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또는 K써처럼 가포 언덕을 넘기 싫어 아예 아무 것도 보지 않고 떠나가기도 한다. 그것도 정문 아닌 후문으로.
이렇게 병들고 죽어가는 이웃의 현실을 두고, 어찌 우리는 화려하지도 않은 자기의 이상(理想)에 도취하는 것일까? 설사 자기의 이상을 성취한다 해도 그것이 이웃에 돌려지지 않는다면 무슨 뜻이 있겠는가? 비참한 현실을 두고 그냥 지나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비극일 것이다.
연말이나 연초가 되면 각 매스컴마다 누가 어디에 위문다녀왔다느니 무엇을 주고 왔다느니 하면서 아우성들이다. 그런데, 위문한 단체나 사람은 많은데 위문을 받은 사람은 없으니 어찌 된 일인가? 2년이 넘도록 이곳에 있었지만 아직 이곳을 위문왔다는 얘기 한 번 제대로 듣지 못했다. 위문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면 이곳도 한 번쯤 다녀갔어야 하지 않을까? 위문이 아니라도 이 가슴 아픈 사람들과 얘기 한 번 해봐야 옳은 일이 아닐까?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데 이곳을 위문하고 돌아갔다는 원로 여가수의 얘기를 T·V를 통해 보면서 더욱 우울했던 연말연시였다. 가난한 현실을 돌봄은 집착이나 편견이 아닐 것이다.
어려운 현실에 부드러운 손길을 보내는 것이 어쩌면 우리들의 이상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것은 아닐른지?

* 이 글을 써주신 정빈스님은 마산 국렵결핵요양원 내의 관해사(觀海寺)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