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봉스님은 숙종 33년 서기 1707년에 청주 원안촌(園岸村)에서 문화(文化) 유(柳)씨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스님은 아홉살에 속리산에 들어가 독서를 하다 열여섯의 나이에 정식으로 출가하였으며, 스물여덟의 나이로 가야산에 내려와 그 당시의 화엄의 대가 낙암(洛巖)대사에게서 화엄학을 삼년 동안 수학한 후 화엄교학의 종장이 되었다.
비로소 스님의 나이 서른하나에 이르러 개당(開堂)하고 학승들에게 강의하기 시작했는데 해인사에서 그 이후 십오년간을 지냈다.
스님의 만년에 해당하는 65세 때인 영조 48년 서기 1772년에는 표충사를 수호하는 책임을 맡은 총섭(總攝)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해인사에서 일관하였다.
스님은 세수 79세 되던, 정조 9년 서기 1785년에, 해인사에서 입적했는데, 그의 문집(文集) 호은집(好隱集) 4권이 전하고 있는바, 그 문집에는 스님의 시문(詩文) 등이 많이 실려 있는 점으로 보아 스님의 시적 재질(才質)을 엿볼 수 있다.
역대 고승들의 법맥과 각 문파(門派)의 전기(傳記)를 간략하게 기록해 놓은 불조원류(佛祖源流)에는 스님의 존함이 해봉유기로 되어 있는데 문집을 호은(好隱)이라고 한 것은 스님 스스로의 자호(自號)라고 여겨진다.
또한 이 불조원류에 따르면 스님은 풍담 의심(楓潭義諶 15잃~1$5)과 상봉 정원(露峰種源)의 법맥에 속하므로 편양 연기 대사의 문인이 되는 셈이다.
설파스님은 지난 호에 소개되었던 호암대사의 제자로 화엄학 연구에 업적을 남긴 스님이다.
스님은 호남 무장현(茂長縣) 사람으로 숙종36년인 서기 1710년에 태어났다. 스님의 가계(家系)는 효녕대군(孝寧大君)의 11세손(孫)으로 부친의 이름은 태영(泰英), 어머니는 파평 윤시였는데 불행하게도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가세가 기울어 아무도 그를 돌보아 줄 사람이 없었다. 나이 19세에 선운사(禪雲寺)의 희섬(希暹)스님에게 계를 받은 후 그 당시의 고승이었던 연봉(蓮峰)스님과 호암스님 그리고 회암(晦菴)스님에게 지도를 받았는데 특히 호암대사를 스승으로 섬겼다.
스님은 33세에 이르러 스님의 학덕을 사모한 대중스님들의 간곡한 청으로 용추사(龍湫寺) 강단에 올라 화엄경을 비롯한 제종(諸宗)의 경전을 강의하였다.
특히 그 당시는 물론이거니와 지금도 화엄경의 주석서로써 고전(古典)이 되는, 중국 당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화엄의 대가 청량국사(淸 國師)의 주소(註疏)를 살펴보니 너무 난삽하고 복잡하므로, 좀 더 학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소(疏)를 가르고 각 장(章)을 분류시키는 한편 화엄의 여러 판본(板本)을 일일이 대조하기 위해 해인사에서 모든 판본을 교합(校合)하여 80권의 정본(正本)을 만들었고 그것을 낙안(樂安)의 징광사(澄光寺)에 봉납하였다.
그 후로 스님은 금강산, 묘향산 등 명산대찰을 다니며 수선(修禪)하는가 하면 두류산에서는 더욱 선정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불행히 영조 46년 경인년 서기 1770년에 낙안 징광사에 불이 나 판목이 모두 불에 타 버렸으므로 다시 모연을 하여 핀목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때 스님은 팔십 권의 화엄경을 구송(口誦)하므로 송출하여 다시 판각하게 하였는데, 이를 보더라도 스님의 화엄경에 대한 식견과 정열이 어떠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영각사(靈覺寺)에 새로 경판각(經板閣)을 짓고 그곳에 화엄경을 보관하였다.
스님은 만년에 이르러 매일 염불 만편(萬遍)씩 염(念)하기를 십여 년을 끊임없이 계속하였는데 서기 1790년에 병세를 보이다 이듬해인 신해(辛玄) 정월에 의연한 자세로 입적(入寂)에 들었으니 세수는 85세이며 법랍은 66세이었다.
스님은 사리를 거두어 영원사(靈源寺)와 선운사 (禪雲寺)에 탑을 세웠으며 비명(碑銘)은 그 당시 영의정을 지낸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이 지었는데, 그 당시의 어려웠던 불교계 안팎의 사정을 비롯하여 설파스님의 화엄경에 대한 정열을 잘 기록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해봉스님도 설파스님도 모두 화엄경의 대가인 동시에 선수행 뿐만 아니라 염불수행마저도 다 수용하여 수행한 스님들이다.
이러한 풍조는 그 당시 보편적인 불교계의 수행관이었고 이러한 종합적인 시각은 바로 오늘날까지 면면히 그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