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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밝히던 그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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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동활 1990년 05월 99호
지나가 버린 삶은 늘 지나쳐 버린 열차의 불빛처럼 막연히 아름답다. 나의 젊은 한 때를 되돌아보면 어두운 통로를 지나올 때처럼 암담하고 우울함으로 각인(刻印)되어 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제들 틈에서 학업을 계속해야 했던 나날은 고달팠고 외로웠다. 이런 외로움과 고달픔은 조금이라도 남들에게 뒤떨어져서는 안되겠다는 강박관념으로 휩싸이게 했고 따라서 일념으로 공부를 했고 모든 일에서 지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상업학교를 겨우 마치자 나는 당장 일터로 나가야 했다. 형제들에게 무엇인가를 보답하고도 싶었고 부모가 없다는 긴장감은 나를 극도로 일에 몰두하게 했으며 사회에서의 나의 첫 삶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차게 하기도 했다. 무엇에든지 열심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과 생활은 결국 지나쳐서 직장에서 실시하는 신체검사에서 청천벽력 같이 폐결핵이라는 진단이 나왔던 것이다.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나만이 왜 이렇게 고통스런 삶으로 괴로워해야 하는지 몇 날을 절망의 늪에서 방황하기도 했다.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며칠을 고민하다가 가게 된 곳이 마산 결핵병원이었다. 그 곳에는 의외로 나처럼 결핵을 앓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다소 안도감이 생기기도 하고 일종의 동료의식과 위안감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위안은 그곳에서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나는 그동안의 삶에서 종교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시골 태생이라 절이란 시골 노인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때때로 종교적인 위안을 생각해 보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그때까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마산의 관해사(觀海寺), 그곳은 병원 내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해 있었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 있는 곳이었다.
나의 병실에서 올려다 보면 우선 그 풍치가 아름다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쉬는 시간에 산책지로 접근했다가 호기심 반(半) 종교적 위안 반(半)이 내가 불교에 입문하는 동기가 되었다.
불교에 입문(入門)해 보니 내가 막연히 생각해 왔던 케케묵고 할머니들이나 가는 곰팡내 나는 종교가 아니라는 데 우선 놀랐고 불교의 교리가 그렇게 논리정연한 데 또 한번 놀라게 되었으며, 저녁마다 있었던 교리강조에 열심히 참석하는 신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의 대 전환점에 서 있었다.
이제까지 생각해 왔던 세상으로 향하던 원망의 마음은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작자수(自作自受)라고 하는 말씀에서 수긍하게 되었고 중도(中道)를 비롯한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定道) 등 몸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얼마나 큰 병인가를 알고 난 뒤 나는 육신의 병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것을 늘 감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병원을 나온 후 「양생회(養生會)」라고 하는 회(會)를 조직했다. 그 모임은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결핵환자를 도와주는 조그마한 회이지만 세상의 어떤 모임보다 아름다운 모임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 사실 이 세상은 누구든지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해(苦海)의 중생이란 누구나 할 것 없이 고통 중에 있는 것이므로……
5월 이맘때 쯤이 오면 그 옛날 관해사에서 연꽃잎을 말고 등종이를 불이고 하던 기억이 새롭다. 각기 고향도 다르고 환경도 달랐던 사람들은 서로의 아프고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 등을 만들었던 기억들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살아난다.
병실에 갇혀 지내야 했던 생활에서 비교적 이런 일들이 위안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사람이란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기 마련이듯이 그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병을 앓고 있던 아낙네들이 받아야 했던 사회적인 모멸과 가정으로부터의 불행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여자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당해야 했던 불행한 사실들을 알았을 때 보다 많은 슬픔을 느꼈다.
고(苦)의 자각을 통하여 얻어지는 낙(樂)의 기쁨,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기 마련인 등불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오는 고통 속에 허덕일 때마다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은 그곳의 삶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불교를 알았고 최초로 부처님께 등공양을 올렸다. 그것도 내가 한장 한장 정성껏 종이를 바르고 연꽃잎을 부쳤던 나의 등을 말이다. 가슴에는 근본적인 관등의 의미를 생각해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초파일이 되면 언제나 관해사
로 간다. 육신의 병으로 인해 오히려 영혼의 하늘을 보았던 곳, 그곳에 가서 서면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했던 젊고 불행했던 한 때가 추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맘때 쯤이면 병원 뒷산에는 철쭉이 만발하는데 그 사이 사이로 작은 등을 달고 열심히 기원했던 소박한 한 때와 함께 그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났던 그날의 등을 추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