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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맺어준 초파일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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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민숙 1990년 05월 99호
독실한 크리스찬이셨던 어머님의 영향 때문에 마흔이 가깝도록 불교와의 인연이 주어지지 않았던 나에게 있어 불교는 막연히 무속과 가까운 것이겠거니 하는 감밖에는 없었다. 이러한 느낌은 산행길이나 관광길에 들리곤 하던 절에서 풍기던 향냄새, 울긋불긋한 단청, 법당만의 원색적인 화려함과 금부처, 그 앞에서 두손 모아 벌고 절하는 부녀자들의 모습들이 어릴적 동네에 있던 무당집에서 늘상 보았던 풍경들과 어딘가 유사한 점이 많게 느껴졌음이리라.
기독교 집안에서의 성탄절은 설레임과 흥분으로 맞이하는 축제일이었지만 초파일이란 나에겐 아무런 감흥도 없는 보통날과 다를 바 없었고 숫제 그런 날이 있는지 조차도 전연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고 하는 편이 더 솔직한 고백이겠다.
이런 나에게 불교와의 인연을 카메라가 뒤늦게 맺어준 셈이다.
이렇게 불교에 무지하고 인연이 없었던 내가 처음으로 초파일에 연등을 구경하러 절에 간 것은 순전히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오랫동안 국내외에서 신문기자를 하다가 서른이 지나서 사진으로 제2의 커리어를 시작해 보겠다며 열심히 촬영실습을 다니던 시절, 동네 사진 서클회원들과 초파일날 저녁 경희대 근처 주택가 골목에 있는 절 같지도 않던 암자를 찾아갔었다. 마당에 방사형으로 친 줄에 색색의 연등이 매달려 있는데 밤이 되자 그 안에 불이 켜지고 어둠 속에서 군무를 추듯 바람에 출렁이는 연등의 무리가 크리스마스 츄리에서 깜박이는 색전구의 하머니와는 또다른 오묘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카메라가 안내했던 초파일과의 첫 상면의 인상은 “연등도 낮엔 유치하지만 밤엔 아름답구나”라는 느낌 외엔 인연이 연장되지는 못했다. 이때 이후 또 다른 5년 동안 초파일이나 절과도 전연 상관없이 지내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어머니의 개종에 따라 기독교에서 여호와 중인의 교리를 공부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편을 따라 캐토릭으로 개종, 영세까지 받았다. 사진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미국유학을 가 있던 3년 동안은 온가족이 미국성당에도 나가고 이따금씩은 한국사람들을 만나러 한인교회에도 나갔었다. 귀국을 해서는 남편과 함께 ME(Marrige Encountery) 피정에 다녀온 후 성당의 ME교우들의 열성에 감화되어 성당과 ME모임에 아주 열심으로 참석했었다.
이런 나에게 카메라는 또 한번 불교와의 인연을 마련해 주었다. 귀국한 후 서양에서 배운 사진 테크닉을 이용해 동양의 정신을 담고 싶었는데 마침 처음 나의 사진입문을 도와주셨던 주명덕 선생님이 절사진을 많이 찍고 있어서 그분을 따라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 나는 해인사에서 처음으로 스님을 만났다. 유학을 가기 전에도 주 선생님을 따라 절에 더러 갔었지만 고건축으로서 절을 외관만 보았고 스님을 먼발치서 구경만 했을 뿐이었다.
해인사에 자주 드나들게 되고 많은 스님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절이 아닌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 선방스님의 권유로 신비로운 정신세계에 관한 동서양의 여러 책들을 읽게되면서 이제까지 눈으로 확연히 보이고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현상세계에만 관심을 가져왔던 내가 어리석게 여겨졌고 늦게나마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여간 기쁘지 않았다.
오래 전 베스트셀러라 하여 사서 읽었던 ‘갈매기의 꿈’이나 ‘모모’ 같은 책들도 스님의 권유로 다시 읽어 보니 전에는 미쳐 깨닫지 못해 무의미했던 단어들이 그 함축적인 상징과 은유를 이해하게 되면서 가슴이 터질 듯한 감동으로 와 닿았다.
나는 이 감동을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나누고 싶어 남편은 물론 친정식구들에게도 돌려읽게 하고 있는데 남동생, 언니를 거쳐 올해 76세신 친정아버님께 간 책들은 내게 다시 돌아오지를 않는다. “더 좋은 책을 드릴테니까 그전 것 다 읽으셨으면 주세요”라고 하면 “그 책은 너무 좋더라, 한번만 더 읽고 줄께”하신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던 아버님이 ‘히말라야의 성자들’, ‘불제자였던 예수’, ‘전생의 나를 찾아서’, ‘에드카 케이시’, ‘라즈니쉬 시리즈’, ‘생명의 실상’등의 책에 홀딱 빠지신 것 같다.
불교의 정신세계를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사진에도 절의 외관이 아닌 정신세계가 담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수십커트의 사진을 콜라지해서 사진으로 만다라를 만들어 전시회를 갖기도 하면서 불교와의 인연을 다져갔다. 이 인연들은 카메라가 없었다면
감히 만날 수 없었을 여러 큰스님들을 만나게 해주었고 청진하고 있는 미래의 큰스님들과도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나는 카메라렌즈를 통해 얼굴을 마주하고는 잘 관찰할 수 없는 스님들의 얼굴 모습에서 풍기는 도인의 면모를 보면서 “인간의 얼굴은 자기가 살아온 생의 반영”이라는 것은 새삼 깨닫게 됐고 나도 그들의 얼굴을 담고 싶다는 과욕을 잠깐씩 가져보기도 했다.
카메라가 인도한 나의 불교와의 인연으로 인해 돌아가실 때까지 아집처럼 「여호화의 중인」에 몰두해, 절하는 것을 우상승배로 여기셨던 어머님은 “내가죽은 후라도 절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머님 사후 7년만에 나는 어머님의 영혼을 주안 용화사에 모셨다. 어머님의 영혼이 떠돌고 있다는, 그전 같으면 황당한 거짓말로만 들렸을 하느님의 말씀이 마음에 걸려 편견이 없을 영혼이나마 절과 인연을 맺고 큰스님의 법문을 듣게 해드리고 싶었다.
여호와 중인이셨던 어머니를 절에 모시다니, 카메라는 나와 나의 가족을 엄청나게 변화시킨 셈이다. 작년 초파일엔 통도사 축서암에서 처음으로 나와 내 가족 이름의 연등을 달았다. 올 초파일에는 해인사 금강굴에서 연등을 달고 싶다. 얼마전 사진을 찍기 위해 처음 뵈었지만 비구니스님이신 불필스님이 첫눈에 좋아졌다.
아직 불자축에도 못 끼이는 나에게 카메라 때문에 여러 큰스님들을 뵈올 행운이 이따금 주어지지만 절의 예법을 몰라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같이 간 스님이 큰스님께 예를 올릴 때 나도 따라 절을 해야 하는건지, 스님끼리만 하는건지, 몇 번을 하는건지 몰라 멀쩡히 서 합장만 할 때가 많다. 이번 초파일에 절에 가면 불필스님께 염치불구하고 여쭈어봐야겠다. 새벽예불 때도 옆사람을 흘끔흘끔 보며 절을 따라 하지만 어딘가 아직도 어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