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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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칼럼 - 편집실
1982년 12월 10호
물은 흐른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도 변화한다. 어릴 때 찍어 놓은 사진을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은 우리의 겉 모습이 얼마나 달라지는 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이 그 흐름을 멈추면 그 물은 이미 썩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살아 있는 존재가 변화를 그치면 우리는 그것을 죽었다고 말한다. 키가 자라지 않거나 얼굴의 윤곽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 비정상인일 것이다.
변화한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자연의 이치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스스로 변화해 가야 한다. 겉 모습이 바뀌어가듯 속 모습도 그만큼 자라가야 한다. 어제의 생각이 오늘도 이어지고 오늘의 마음이 내일로 계속된다면 그 사람의 정신은 죽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알맹이가 날아가버린 볏짚을 들고 그게 쌀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차라리 서글퍼 보일지 모른다.
알맹이를 잊어버리고 껍질만을 들고서 있는 사람, 그것이 어쩌면 우리네 종교인의 모습이 아닌지 모르겠다. 단순하고 명쾌하던 가르침들은 자취마저 희미하고 복잡한 이론과 부자연한 교의만이 가득한 게 오늘의 종교가 아닌가 생각된다. 성직자는 권위와 타성속에 모습을 감추고 교리는 추상화 되어 우리의 곁을 떠나고 교단은 조직 속에서 몸이 굳어 가는 것이 어느 종교에나 스며있는 현상임을 부정할 수 없으리라.
자기의 겉 모습이 아무리 달라져도 자기는 여전히 자기이듯이, 지켜가야 할 부분을 지켜가면서 변화를 거듭하는 종교가 생명 있는 종교 가치 있는 종교가 아닐른지 모르겠다.
오늘의 세계는 천년 전의 세계가 아니며, 현대인들은 천년 전 옛사람들과 같지 않은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종교가 살아남을 길은 없는 것이다.
살아 남음은 쉬임 없는 자기부정을 통해서 이룩된다. 그러므로 그것이 아무리 아프고 고달픈 형극의 길이라도 묵묵히 가야만 한다.
종교가 살아있으려면 그 시대가 역사 속에서 거듭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