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화로를 머리에 이고- 혜통화상과 무외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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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설명 - 편집실
1982년 11월 9호
혜통(惠通)화상은 신라 때 스님으로 해동 진언종(海東 眞言宗)의 초조(初祖)이다. 출가하기 전에 하루는 산에서 놀다가 한마리의 수달을 잡아먹고 그 뼈를 뒷뜰에 버렸다. 그 이튿날 새벽에 보니 어제 버린 빼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히 여기고 주위를 살펴보니 핏자국이 있어 따라 가보았다.
그랬더니 핏자국이 이어진 구멍 속에서 어제 버린 그 뼈가 새끼 수달 다섯 마리를 꼭 감싸안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한참 동안을 생각에 잠겨 바라보다가 미물인 짐승도 죽어서까지 자기 자식을 위하는 생명현상을 깨닫고, 살생의 불가함을 깊이 알게 되었다.
그는 문득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의 존엄성을 깨닫고는, 이제까지 알게 모르게 살생한 뭇 생명들의 명복을 빌어주고, 참된 진리의 길을 찾아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그는 혜통이라는 법명을 받아 수행하다가 당나라로 구법(求法)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 당시 당나라에서는 무외삼장(無畏三藏 :637-735)이라는 진언종의 훌륭한 스님이 계셨다.
혜통스님이 무외삼장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청했더니
-어디에서 이렇게 왔느냐?
-오직 불법의 진리를 구하기 위하여 멀리 신라 땅에서 왔습니다.
-그렇다면 바다 동쪽 변방의 오랑캐가 아니냐? 어찌 불법을 담을 그릇이 되겠느냐?
-지방이야 동서남북이 있겠지만 법(法)을 구하는 마음이야 어찌 차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말이 많구나 돌아가거라.
하고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으나, 혜통은 자신의 근거와 신심을 시험해보시는 걸로 생각하고, 무외삼장 문하에서 구박 받으면서도 꾸준하게 3년을 보냈다.
3년이 지나서 무외삼장에게 가르침을 청해도 그의 태도는 냉담할 뿐이었다. 이에, 혜통은 무외삼장의 심법(心法)을 이어받지 못할 바엔 차라리 죽기를 작정하였다.
그러하여 불이 이글거리는 화로를 머리에 이고, “법을 구하는 자는 신명(身命)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옛사랑의 가르침을 생각하여 무외삼장의 앞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혜통스님은 화로의 뜨거운 열기에 머리가 터지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를 지켜본 무외삼장이 가까이 다가와서 불 담긴 화로를 치우고, 손으로 터진 곳을 만지며 뭐라고 신주(神呪)를 외우자 터진 자리가 아물고 소생하였다. 그 뒤로는 그 흉터가 왕(王)자 모양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혜통존자 왕화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후 혜통스님은 무외삼장의 심법을 전해받고 본국 신라에 돌아와, 신라 진언종의 초조가 되어 불법을 널리 펴고, 신통력을 발휘하여 가뭄에 비를 오게 하기도 하였다.
한 때 신문왕이 등창이 나서 혜통스님에게 치료해 주기를 청하므로 혜통스님이 와서 주문을 외우자 곧 낫게 되었는데, 혜통스님이 말하기를
-페하께서는 전생에 재상의 몸이 되어 양민 신충(信忠)을 그릇 판결하여 종으로 삼았으므로, 신충과 원한이 맺혀 윤회환생(輪廻還生)할 때마다 보복을 받게 됩니다. 지금 이 등창도 또한 신충의 탓입니다. 마땅히 신충을 위해 절을 세워 명복을 빌어 원한을 풀어야 될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왕은 그 말을 옳게 여겨 절을 세우고 이름을 신충봉성사(信忠奉聖寺)라고 했다.
절이 낙성되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왕이 절을 세워주셨으므로 괴로움에서 벗어나 하늘에 태어났으니 원망은 이미 풀렸습니다.
왕이 이를 신통하게 여겨 소리가 들린 자리에, 원한이 꺾여졌다는 뜻에서 철원당(折想堂)을 세우고, 혜통스님을 국사(國師)로 삼았다. (삼국유사, 권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