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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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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박재삼 1990년 05월 99호
나는 2남1녀를 두었다. 딸은 3년 전에 시집을 가고 집에 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또 아내가 있으니, 전에는 남녀의 비율이 3대3이었던 것이, 이제는 3대2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무종교로 지내고 있건만, 어머니와 아내는 절에 다닌다. 종교에 대해서는 나는 비교적 자유 취향적이어서 무슨 종교를 믿든 일체 상관하지 않는다.
전에 딸은 미션 계통의 국민학교에 다닌 바 있고, 또 지금 막내가 다니는 대학도 기독교 계통의 재단에서 경영하고 있건만, 그런 것에는 대범하게 대한다. 종교에 대해서는 이래라 저래라 하는 명령식으로 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또 두 아들 중 누군가가 기독교를 믿는다고 해도 그것을 말릴 생각을 안 가지고 있다. 종교적인 신심까지 구속하는 가장이 안 되고 싶다는 이유에서라고 본다. 그만큼 종교에는 완전자유를 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같은 불교 신자라고 해도 어머니와 아내가 다니는 절은 각각 다르다. 어머니는 팔순을 넘었기 때문에 교통관계도 있어 동네의 조그만 철에 다니고, 아내는 우이동에 있는 (신자가 많기로 유명한) 도선사(道詵寺)에 나간다. 다만 그 둘이서 절에 가서는 어떤 내용으로 기원할까 그것이 많이 궁금한데, 모르기는 하지만, 그 비는 내용이 엇비슷하리라 본다.
우선 나는 고혈압과 위궤양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병원에 입원한 것이 네 차례였으니 어지간히 지긋지긋했을 것이고 그런 것을 제발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을 것은 틀림없다. 그 다음으로는 막내가 지금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전에는 거기에 제발 입학할 수 있도록 빌었을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리고 요즘에는 어떤 내용으로 빌까 생각하면 그것도 불을 보듯이 뻔하다.
얼마 전 나는 사진식자 집을 차렸다. 장남이 군에서 제대하여 그와 같이 경영하는 것이다.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치르나, 어머니와 아내는 다같이 걱정이 태산같을 것은 짐작할 만하다. 이때도 그들은 철에 가서 무슨 원망(願望)을 빌까, 모르기는 하지만 이 일이 원만하게 잘 풀려 가기를 기원할 것이다. 아내는 고등학교까지 나왔으니까 그럴 리는 없지만, 어머니는 일자무식이다 보니, 원시종교에서 비는 그런 형태로 두 손이 만월(滿月)을 그리며 빌 것이라고 짐작한다.
사실 이럴 때 어머니는 정상적인 불교도가 아니고 소박한 모정(母情)에 기인한 원망일 수밖에 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머니가 기원하는 내용은 반드시 불교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아내도 그렇지만, 어머니는 비신자인 나보다는 불교의 교리에는 더 어둡고 보면, 그 기원이라는 것도 심하게 말하면 불교적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면서 절에는 부지런히 다니신다. 이런 불교 신자가 어머니 말고도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실로 어안이 벙벙해진다. 불교 교리에 철저하지 못한 신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비단 불교에서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도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교회에 나간다는 것만 부지런히 했지, 실제로 참회는 커녕 꼬리 감춘 여우가 되어 있는 신자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런데 선교(宣敎)외 목적을 띤 신자들이, 특히 기독교의 경우,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느낀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왔습니다”하고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권유를 자주 당한다. 그럴 때 “여기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다른 곳에 가 보십시요”하고 점잖게 거절도 많이 하는지 모른다.
심지어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거리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믿어야 천당 간다는 것을 소리 소리 지르고 있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하다 못해 러시 아워 때 그 시끄러운 번잡 속을 뚫고 들어가 선교에 열을 올리는 경우도 간혹 본다. 그렇게 외쳐서 갑자기 신심을 자극할 수 있다고 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것을 보면 공연히 심기가 불편해진다. 어련히 알아서 각자가 믿을 일이지. 거기에 충동을 받아 신자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 것인가를 헤아려 본다면 거의 무의미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것 같다. 오히려 그렇게 귀찮게 하는 것은 백해무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내가 가본 외국에는 그런 풍경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말이지 거기에서 그런 설교를 아직도 하고 있는
나라는 별로 없을 것 같이만 여겨진다.
그러면 이 사실이 무엇을 말해 주는가. 내가 보기에는 선진국에 대어놓고 “우리는 후진국이요” 하고 역선전을 펴고 있는 인상이 짙다. 그런 선교를 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가당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에서 선교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는 기가 차는 것을 느낀다. 종교를 통하여 국위를 낮추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 가다가는 길에서만 선교활동을 펴는 것이 아니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주 예수를 믿으라”고 야단이다. 초인종을 누르길래 누구냐고 나가 보았더니, 영락없는 그 기독교 선교원이다. 그런 것을 집에 있다가 어머니는 많이 겪는 모양이다. 그래서 하루는 문패 있는 쪽
에다 어머니는 절에서 얻어온 작은 팻말을 붙이는 것이다. 거기에는 ‘불교인의 집’이라고 써 있었다. 한동안 이 팻말 때문인지 초인종을 그 선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누르지 않았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누가 떼어갔는지 그 팻말이 없어져버려 또 여전히 선교의 소리를 듣는 처지가 되었다. 어머니와 아내는 점잖게 우리 집은 불교를 믿는다 하면서 돌려보낸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어머니가 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그도 그렇군 하고 수궁이 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예수쟁이들은 참말로 끈질겨서 질렸다”고 실토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는데, 누가 천국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느냐였다. 하기야 기독교에서 천국을 내세우고 있듯이 불교에서도 극락이라는 미래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누구나 현실의 고달픔을 겪고 그 세계는 일단 동경을 한다. 그러나 누구도 안 가본 그 세계를 믿기가 난감한 것이다. 이것 때문에, 즉 아무런 실증이 안되는 세계가 있다고 확인하고 있는 데서, 나같은 처지에는 도저히 믿게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어느 종교든 안 믿게 만드는 근본이 있다고 본다. 그것 말고라도 나는 문학을 하기 때문에 어느 특정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그 때문에 자유로운 발상이 거기에 구애를 받는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자유로운 발상에 있어 특정 종교를 믿게 되면, 저해를 받기 마련이라는 이치가 따른다. 이것 이상으로 문학함에 있어 부자유한 것은 없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섭섭하지만 아무 종교에도 기대고 안심할 수가 없다고 하겠다. 종교보다는 나에게는 먼저 문학이 우선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詩)라는 글자를 나는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왼쪽 변은 말씀 언(言)자요, 오른쪽 변은 절 사(寺)로 되어 있는 것을 “말을 앉히되, 철에 간 마음가짐으로 써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라는 것의 자의(字意)라고 본다. 절에 간 마음가짐으로 쓴다고 해서 반드시 종교시를 써야 한다는 뜻은 아니고, 요컨대 “맑은 마음가짐”으로 엄해야 한다는 보다 그윽한 뜻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불교에 심취한 사람들은 시에 절이 들어 있다고 해서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틀린 생각이라고 하리라.
그런데, 이야기는 빗나가지만 불교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문득 내가 인도에 갔을 때 본 것이 이상한 상념으로만 남는다. 인도에 가 오래 있은 것은 아니고 불과 사흘을 지낸 정도를 가지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약간 낯간지럽기는 하다. 알다시피 인도는 불교가 발상(發祥)한 나라지만,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스님이라고 본 것은 불과 두어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면 불교가 쇠퇴한 나라임에는 틀림없고, 오히려 주로 동남아에 번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작은 회의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영웅호걸이 난다고 해도 세상에서는 우러러보지만, 정작 그가 태어난 곳에서는 별로 대접을 못 받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를 떠올린다면, 불교라고 해서 그와 비슷한 경우가 없으란 법이 없으리라는 짐작이었다. 정작불교가 일어난 나라에 스님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되었으나 나중에는 그럴 수도 있다는 결론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우선 동남아 여러 나라는 차지하고라도 우리나라 및 가까운 일본에만 해도 얼마나 절이 많은가. 경개 좋은 산천에는 절이 우뚝 서고 있다는 한가지 사실만 봐도 그것이 얼마나 사람들 마음을 지배해 왔던가를 알 수 있다. 웬만한 문화재라는 것도 철이 없다면 거의 망한 것이나 같이 되어 있는 것이 현황이 아닌가 그렇다면 불교가 미친 영향은 얼마나 컸던가를 알 수 있다. 그것도 이씨왕조 오백년은 배불(排佛)정책으로 일관해 왔건만, 그런 오랜 동안의 핍박도 절을 송두리째 없앤 결과에까지는 못 미쳤던 것이다.
그런데 인도에 가서 본 것은 불도(佛徒)가 아니라, 힌두교도가 많다는 사실에 우선 놀랐다. 나는 깊이 잘 모르기 때문에 힌두교에 대한 교리를 도통 알 수가 없다. 불교와 힌두교가 다같이 인도에서 생겼다면 어쩌면 비슷한 면도 더러 있을 것이라고 짚어보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 힌두교가 인도에서 판을 치다시피 하고 있는데, 지금 불교는 거의 쇠퇴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짚어보아야 하는지, 종교에 어두운 내 눈으로는 삼삼하기만 하다.
얼마 안 있어 사월 초파일, 석가탄신일이 다가오고 있다. 근년에는 크리스마스와 함께 공휴일로 청했는데, 이 때를 당하면 우리 집에서는 야단이다. 어머니와 아내가 절에 간다고 성장을 하고 나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쓴다. 그들이 불자라는 것도 상판이 없고, 또 그들도 나더러 불교를 믿으라는 말을 한번도 입 밖에 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자기만 믿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종교라는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