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중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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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에세이 - 이혜경
1986년 07월 53호
한나절의 소음이 천천히 사라지고 어디 먼 곳에서 가늘게 울려오던 알 수 없는 소리조차 서서히 식어가는 열기와 함께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사정없이 내리비치는 햇살로 감당키 힘든 열기와 함께 하는 긴긴 여름 낮을 보내고 이제 휴식의 시간.
복잡한 머리 속 숱한 생각들, 그 한 가닥을 잡고 혼자 빠져드는 이 시간들이 엄청난 무더위조차 쉬 잊게 해 주는 것은 한낮의 이글거림으로 하여 더욱 진하게 전해 오는 차가운 밤의 빛깔, 밤의 고요가 주는 투명함 때문인가.
하던 일을 멈추고 혼자서 고요히 앉아 있다는 일이 그렇게 평온하고 포근할 수가 없다. 마음은 아무런 분별없이 그저 허탈해지고 모든 일에 감사하고 싶을 뿐, 저 무서운 탁류에 휩쓸려 떠내려 가지않고 여기 실하게 살아 남아서 어느 만큼의 여백을 즐기고 있다는 것은 진정 하나의 감동이다.
좁은 방 안을 굽이쳐 흐르는 피아노의 선율, 그렇게 지글거리다 이젠 휴식으로 포근히 감싸주는 밤의 시간.
종점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버스도 끊어지고 골목길에서 흥얼거리던 어느 취객의 낮은 목소리마저 사라져 버리고 나면 어디선지 들려오는 괘종시계의 울림만이 칸간이 시간을 일깨워 줄 뽕 일체의 소리와 단절이 되는 시간이다.
침묵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살처럼 이 세상에 넘쳐 흐르는 저 숱한 말들 가운데서 침묵이 차지하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정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언어를 낭비하며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날마다 의식하면서 혹은 의식하지 못하면서 토해내는 허다한 모순, 그러니까 산다는 것은 어쩌면 진실을 배반하는 행진인지도 모른다. 사실 말이란 생각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불안전한 것이다. 아름답고 풍요하고 진실하던 생각이 말로써 표현되는 순간 터무니없이 바래고 초라한 모습으로 바뀌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우리들 인간사회에 말이라는 표현수단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며 혜택인가.
그런데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한다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는 사설이다. 아니 그건 오히려 정반대인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오히려 말을 적게 하는 것이 말을 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한다고 할때 쉬지않고 열심히 말을 하는 쪽보다는 조용히 귀 기울여 듣고 있는 편이 훨씬 더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소유자라는 것을 느낄 때가 더 많다. 소리없이 흘러가는 한 점 구름, 말없이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 한 송이에서 우주를, 신비를 느끼는 순간이 있듯이 침묵하며 미소하는 그 얼굴에서 하나의 사랑, 하나의 믿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니 오히려 많은 위대한 것들이 침묵 속에서 탄생한다. 깊은 사상, 깊은 신앙, 격조 높은 예술이 침묵 속에서 잉태되고 또한 그 속에서 탄생했을 것을 우리는 익혀 알고 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비유를 여기에 견주어 보는건 어떨까?
우리는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하며 사는게 아닐까? 폭주하는 차량들로 도시의 교통이 마비되어 버리듯 언어의 낭비로 해서 인간의 행동이, 진실이 마비되고 있음을 자주 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끔 고요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깨끗한 눈으로 자신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이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 산이 있고 바위가 있고 나무가 있는 것은 침묵 속에서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기 위한 깊은 자연의 뜻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입술을 스치고 떨어져나간 그 숱한 언어 그중에서 진정 부끄럽지 않은 말이 얼마나 될까를 조용히 생각해 보는 이밤, 나 또한 자연처럼 그렇게 살고픈 엄청난 욕심을 가져 본다.
이 무더운 여름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