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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통의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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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에세이 - 박복희 1986년 07월 53호
흔히 우리들이 사는 세상을 불교에서는 고해(苦海)라고 하기도 하고 사바세계(裟婆世界)라고 하기도 한다. 고해라는 말은 이 세상이 고통으로 차 있다는 말이요 사바세계란 참고 사는 세상이라는 말이다.
이 말이 실감이 나지 않으면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보라. 그러면 이 세상이 고통의 세계라는 말은 구구히 설명하지 않더라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환자들의 앓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루 종일 치료하고 같이 고통을 나누어야 하는 의사라는 직업이 때때로 피곤해지기도 하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병이 다 낫아 병상을 떠나는 환자들의 희미한 안도의 미소를 보며 작은 보람을 느끼면서 나의 직업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가끔 음악회나 TV에서 노래 부르는 가수(歌手)같은 직업이 좋아
보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무대에서는 화려하지만 무대 뒤에서까지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는 말을 듣고 세상에는 그렇게 좋아보여도 전부가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닌듯하다.
사실 이 세상은 불행과 행복이 늘 상대적으로 있기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다고 아우성 할 일도, 너무 고통스럽고 거드름 피올 일도 아닌 것 같다. 언제 고통이 행복이 될지, 행복이 도리어 불행으로 바뀔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모르니까 망정이지 행·불행을 인간이 미리 안다면 오히려 그것이야 말로 큰 화근(빼根) 덩어리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중국의 고사(故事)에 인간만사(人間萬事)가 세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던가? 그러니까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데로 찾고 기쁘면 기쁜데로 참고 살아야 된다는 것이 사바세계란 말이다.
우리들은 곧잘 고통스러움은 참아야 한다는 것은 잘 알면서도 기쁜 것, 행복한 것은 왜 참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생각해 보라. 당장 여름철에 덥다고 잔뜩 찬 음식만 먹는다면 당장 병원신세나 약의 신세를 져야될 것이요 좋은 음식이라고 양(量)보다 많이 먹는다면 당장에 위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불행과 고통을 참는 일보다도 오히려 기쁘고 좋은 것을 참기가 사실은 더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역설적이면서도 깊은 교훈이 담긴 보왕삼매론( 王三味論)의 말씀을 좋아한다. 모든 성현(聖賢)의 말씀이 다 그러하지만, 보왕삼매론은 정말 두고 두고 읽어도 다합 없는 진실이 그 속에 있는 것 같다. 그 끝 구절(句節)에 이런 말이 있다.
「이와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하는 것이요 통함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히는 것이다」라는 말은 이 변화무상한 사바세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잘 일러주는 말이다. 이젠 무더위가 한 여름내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이젠 무더위를 이기고 또 무더위를 참으며 자신의 일을 쉼 없이 해 가야 할 계절이다. 사실 이 고통의 시간이야말로 만물을 성숙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겠고 성숙해질려면 그만한 댓가를 치르고 있는 대자연 속에서 그 지혜를 배워야 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그 무더운 속에서도 서늘한 한 줄기 바람이 있고, 한 줄기 소나기가 있어 그 뜨거운 열기를 식히듯이 한 생각 너그러운 마음이야 말로 인생의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아니겠는가.
덥고 습도가 높으면 짜증부터 나기 쉬운 계절, 연일 불쾌지수는 80%가 된다고 방송국에서는 알려준다. 이럴때 일수록 인내심을 발휘하고 서로 양보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때이다.
때로는 시원한.바닷가나 산사(山寺)라도 찾아 가서 마음과 몸을 식히는 것도 좋지만 더위도 잊어버릴 만큼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것도 한 피서방법이 될 것이다.
겨울이면 봄이 멀지 않듯이 여름이면 가을이 멀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나의 삼복을 아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