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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  )의 노래(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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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종림 1986년 07월 53호
공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有)의 상대개념으로서의 무(無)도 아니고 모순개념으로서 비유(非有)도 아니다. 실재론(實在論)적인 사고가 가지는 실체로서의 존재개념에 대하여 관계로서의 존재를, 고정불변의 자성에 대하여 변화의 개념으로서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연기의 이론에서는 즉 객체에 대해 무아(無我)와 무상(無常)으로 설명하고, 공은 인식주체에 대해서 아공(我空)과 객관세계에 대하여 법공(法空)의 둘로 나누어서 셜명한다. 아공은 인공(A空), 생공(生空)이라고도 말하는데 인무아(人無我), 중생무아(衆生無我)라는 뜻이다. 중생의 자아라는 것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음(표陰)이 화합된 가아(假我)로서의 존재라는 것이다. 법공은 세계의 구성요소로서의 물도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현상으로서의 법도 자성을 가진 것이 아닌 인연생기의 법이라는 것이다.
감각적으로 지각되는 그대로 사물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을 소박한 실재론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주관과 객관 본체와 현상이라는 이원론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궁극적 실체를 물질적 실체로 보는 것을 과학적 실재론이라고 하고 정신적 실체로 보는 것을 관념론이라 분류하기도 하고 정신과 물질을 유한실체라 하고 유한실체가 의지하는 무한실체로서 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실재론적인 사고가 가지는 실체의 개념에 대하여 존재의 실상을 관계로서 보는 입장이 공의 논리이다. 서양 철학사에서 최초로 추상화된 관계로서의 존재를 주장한 것은 피타고라스(Pyttagoras) 학파의 수의 개념이다. 이 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우주의 절대적 원리의 형식이다. 카시이러(Cassir-er:신칸트 학파)는 실체로서 순수주관도 순수객관도 부정하고 조건의 관계로서 존재를 규정하고 있다. 개별적인 요소들은 함수관계(困數關係)의 항에 불과하고, 그 하나하나의 요소는 상호관계 속에서 위치가 주어지고 전체의 관계속에서 존재가 확보된다는 것이다. 화이트 헤드(White head: 영국의 수학자)도 전통적인 의미에서 의 실체의 개념을 부정하고 세계의 궁극적 실체는 현실 존재 또는 현실계기라고 말하고 이 현실존재는 과정적 존재로 유기체적 상호 관계속에서만 존립할 수 있는 유기체적 존재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현대 양자 물리학의 입장에서도 원자를 구성하는 소립자는 공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체로서는 파악할 수 없으며, 그것은 존재와 비존재의 사이에서 변화하는 에너지의 일시적 형태 또는 변화의 과정이나 작용에 불과하다고 본다. 실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양자 상호간의 연결성에 있는 것이다.
공의 입장에서 존재의 실상이라고 파악한 관계로서의 존재에 대하여 관계 자체를 하나의 불변의 고정된 자성을 가진 것처럼 생각하게 되면, 관계 자체를 실체화하여 소위 말하는 악취공(惡取空)에 빠져 또 하나의 새로운 관념적 실재론이 될 수 밖에 없다. 아니면 관계로서의 존재에 관계를 설정하고 생성변화를 있게 하는 어떤 신적 실체를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유기체적인 관계는 신을 통하여 질서 있는 세계로 성립되고, 이 세계는 신의 구체화의 원리에 의하여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카시이러의 견해 역시 존재를 조건의 함수관계로 규정하여 실체로서 독립적인 존재를 부정하고 항구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사물과의 관계라고 보여 관계 자체를 절대화시킨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이러한 관계 역시 관계에 의하여 규정 되어진다고 보는 것이 공공(空空) 즉 공 역시 공이라는 절대공의 입장인 것이다.절대공(絡對空)의 논리를 언어의 개념을 분석하여 실재론적인 형이상학적인 명제들을 부정한 것이 용수(龍樹:Nagarjuna)의 팔불중도(八不中道)이고, 논리적으로 체계화된 것이 천태(天台)의 공(空), 가(假), 중(中), 삼제(三論)의 논리라면 긍정적인 측면에서 전개된 것이 화엄의 사사무애(事事無擬)라고 볼 수 있다. 삼제
팔불중도의 생(生)과 멸(滅) 둥의 모순관계에 있는 언어의 개념을 분석하여 실재론적인 사고의 모순을 지적하고, 궁극적인 실제에 관한 존재의 실상은 인과 연에 의한 관계로서 파악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중론(中論)의 언어 분석적인 방법은 진리를 들어낸 것이 아니라 언어의 개염을 분석하여 상대방 주장의 논리적-모순을 지적하여 궁지에 몰아 넣게 하는 부정을 위한 부정에 불과한 궤변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하기도 하고,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분석철학)의 언어 분석의 방법과 비교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분석철학은 일상언어의 철학으로 궁극실재의 문제는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명제들의 논리적 형식이라고 보고 언어의 분석을 통한 개념의 해명을 철학의 주제로 삼고 있다.
중론의 논리도 파사(破邪)가 현정(顯正)이라고 말하지만, 내용을 문제삼지 않고 철저한 언어의 분석을 통한 개념의 해명에 있다. 사물이나 자아에 불변의 자성을 가진 실체가 있다는 실재론자들의 주장에 따른다면 생(生)과 멸(滅), 단(斷)과 상(常), 일(一)과 이(異), 래(來)와 출(出)이라는 언어의 개념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생을 예로 들면 생이 었으려면 생의 원인으로 자생(自生), 타생(他生), 공생(共生), 무인생(無因生)의 네가지 경우 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데, 그러나 이러한 네가지 원인은 다 부정될 수 밖에 없다. 불변의 자성을 가진 실체라면 하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로 변화되어 생겨날 수 없다. 자성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변화되는 것이라면 자성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타(他) 역시 다른 것에 대하여 자(自)이기 때문에 자생의 이유와 같이 타생 역시 부정될 수 밖에 없다. 자생과 타생이 다 부정된다면 공생 역시 성립될 수 없고 무인의 존재는 생각할 수도 없다. 만일 무인의 존재가 있다면 자족적 존재일 수 밖에 없는데 그러한 존재는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곡식이 싹이 되고 싹이 자라서 다시 곡식이 되는 끝없이 순환하는 가운데 어느 한 곳을 지정하여 최초로 생겨난 시점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므로 불생이고, 과거의 멸(滅)이 있었다면 현재 곡식이 있지 않1}야 할 것이지만 지금 곡식이 있으므로 멸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만일 상(常)이라면 씨가 싹으로 변화될 수 없고 단(斷)이라면 씨가 싹으로 상속될 수 없으므로 상도 아니고 단도 아니라는 것이다. 싹과 곡식이 같은 것은 아니므로 일(一)이 아니고, 곡식의 씨와 싹은 계기적인 존재로서 곡식의 싹은 곡식의 싹이지 돌이 아니듯이 다
른 것이 아니므로 이(異)도 아니다. 씨가 싹이 되는 것이 새가 다른 곳에서 날아오는 것과 같이 썩어 딴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므로 래(來)가 없고, 또 뱀이 구멍으로 나가는 것과 같이 싹이 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출(出)이라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삼재(三調)의 공(空), 가(假), 중(中)은 천태의 기본 논리로서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가명(假名), 가유(假有)로서의 존재라는 것이 가제(假論)이다. 중(中)이라는 것은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닌 관계로서의 존재를 말한다. 공재는 공이기만 한 것이 이리라 공제의 가운데 공, 가, 중이 포함되어 있고, 가제 중에 역시 공, 가, 중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헤에겔의 변증법적 논리에서 정립(定立:These)은 정립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립의 가운데에는 이미 구체화된 존재로서 반정립(反定立:Antithese)을 내포하고 있어 정립과 반정립이 변증법적 발전으로 지양되어 종합(餘合:Shinthese)이라는 현실적인 존재로 나타나게 되고 종합 역시 정립과 반정립을 가진 하나의 정립이 되는 것이다. 공제의 파유(破有), 입공(立空), 파유립공절대(秋有立空總對)를 속제(洛諸)라고 하는데, 파는 부정 입은 긍정을 의미하고 긍정과 부정이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 파립절대 즉 중(中)의 뜻이다. 중제의 쌍차(雙避), 쌍조(雙照), 차초절대廳照總對)를 중도의 묘제(妙諸)라고 하고 쌍차는 공가의 이번을 함께 부정하고 쌍조는 공 가를 같이 긍정하는 것이다. 차조절대는 차(鍵)와 조(照)가 서로 대립된 상대척인 것이 아니라 공, 가, 중의 삼제와 입(立), 파(破), 절대(總對)가 일중(一中) 가운데 함께 걸림이 없는 것을 중도(中道)라고 하는 것이다.
화엄의 연기론적인 세계관으로 사법계(事法界), 이법계(理法界), 이사무애법계(理事無優法界)를 4법계라고한다. 사법계는 현상계의 구체적인 사물, 이법계는 사물의 본체, 이사무애법계는 현상과 본체의 관계, 사사무애법계는 구체적으로 현현된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구체화된 사물들간의 관계는 인드라망(梵網)의 구슬과 같이 한 구슬 안에 모든 그물의 구슬이 비치고 다시 그 구슬은 모든 그물에 반사되듯이 상호작용적이며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서 사물들은 존재하게 된다. 또 구슬이 반사될 때 자신만이 반사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가지고 있는 모든 구슬의 그림자까지 반사하게 되어 우주의 망속에 상즉상입(相郞相入)하여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세계가 공간과 시간상에 전개되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