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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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칼럼 - 편집실
1982년 11월 9호
세상의 모든 사물은 알든 모르든 일정한 관계 속에서 조재한다. 강가를 구루는 돌 하나의 숲 속에서 지고 있는 나뭇잎 한 장이 무관하지 않으며 산 위를 날아가는 한 마리 새와 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한마리 끼리도 인연의 끈이 맞닿아 있는 것이다.
생각할 줄 알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이다. 어머니가 하루쯤 늦게 일어나면 온 식구의 그 날은 바쁠 수 밖에 없고, 서울의 쌀값이 오르면 부산의 쌀값도 따라 변하며, 지구 저편에서의 전쟁이 길 옆 주유소의 기름값을 올려 놓기도 하는 것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이다.
이렇게 반드시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게 우리들 생활이라면 우리는 좀더 조화로운 관계 유익한 관계 좋은 관계를 갖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이어야 하는 것이다.
조화라는 말 속에는 평등이라는 말이 바탕으로 깔려 있다. 내가 남 위에 군림하거나 남이 나를 지배한다면 조화로운 관계는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만 우리는 조화로울 수 있는 것이다.
종교도 인간 생활의 일부이다. 바뀌어 가는 세상의 정치 경제 학문 사상 등에 영향받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만큼의 영향을 사회에로 되돌리고 있는 것이다.
종교가 사회 속에서 의미있고 조화로운 한 부분이고자 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나와는 다른 별스런 이웃이라거나 나는 어쩐지 가까이 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서는 안된다.
어쩐지 오늘의 종교는 점차 그 문턱이 높아 가는 것 같고, 이웃과의 먼 거리를 좁히려 들지 않는 것 같아 하는 얘기다.
이런 시대 속에서 종교마저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이웃, 멀리 떨어진 집단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종교까지도 일차원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소외를 조장하며 미래에의 확신을 줄 수 없다면 정말 우리들의 상황은 어둡기만 할 따름이다,
이웃에게 친근한 종교, 누구나 다가설 수 있는 종교가 바람직한 종교가 아닐까? 종교는 홀로 존재하는 것도 선택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