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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한 소고(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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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인논단 - 원소 1982년 11월 9호
시간(時間 : time)과 공간(空間 : space)을 철학에서는 물체계를 성립시키는 기초형식이라 말하고, 현대물리학에서는 자연현상을 기술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한다.
이 글에서는 이 두 가지 가운데 시간에 대해서만 논하기로 하겠다.
이 시간에 관한 연구는 서양철학자 중에서는 베르그송(Bergson) 이나 칸트(Kant) 등의 시간론이었고, 고전물리학의 절대시간론(絶對時間論)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나오는 상대적인 시간론 등이 있어왔으므로, 이 글에서는 불교경전에 나오는 시간에 대한 개념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리는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으로 생기는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등의 인위적 구분을 영원히 흐르는 실제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태도는 냉정히 진리의 입장에서 살펴본다면, 우리가 크게 잘못을 범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불전(佛典)에서는, 삼라만상이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생멸변화(生滅變化)하는 것을 보고, 우리의 마음이 분별하는 작용을 내어서 시간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지 시간이라는 것이 독립적인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고있다.
이것은 지금부터 2500여년 전에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지만, 현대의 철학자나 심리학자 물리학자들도 한결같이 수긍하는 바이다.
불경이나 고승들의 어록(語錄)을 보면 시간의 개념에 대해 시(詩)로서 표현한 귀절이 많은데, 몇 귀절만 소개하기로 하겠다.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다 평등하여 마침내 오고 감이 없다네
(三世悉平等 畢竟無來去 ; 원각정 보안보살장)
아득한 긴 세월이 한 생각 찰나이고 찰나인 한 생각이 한량없는 세월일세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 의상대사법성게)
이 시들은 시간이라는 개념이 안위적으로 토막을 지어 과거 현재 미래로 분별하는 것이지, 진리의 입장에서 관찰해보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임을 잘 밝혀준다.
좌선(坐禪; 불교의 영상법)을 하여 삼매(三味; 정신통일의 극치)에 들면, 몇 분이 흐른 것 같은데 몇 시간이 흘렀거나, 초저녁에 좌선을 하여 한두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삼매에서 깨어나면 다음날 아침이 되어 있는 신비한 체험을 하는 수가 있는데, 이러한 일들은 시간의 흐름이란 단지 심리적인 것임을 잘 증명하는 예가 될 것이다.
이상에서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불교의 시간관을 소개하였다. 다음은 필자 자신의 시간에 대한 견해를 밝혀보겠다.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잠이 들었을 때도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껴야 할 것이다. 뇌(腦)를 다쳐 의식을 잃었을 때나 병으로 신체의 감각기관이 모두 마비되어 식물인간(食物人間)이 되었을 때도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껴야 할 것인데, 심리학자나 의사들의 연구에 의하면 전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시간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어도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므로 독립적인 실체로 존재한다는 보편타당성을 잃는다. 따라서 시간이란 다만 마음 속에서 생기는 심리작용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공간과 더불어 사물의 존재변화를 설명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진리의 측면에서는 그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이 세계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작용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아지랑이와 같은 환상의 세계임을 똑똑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불경에서는 진리의 세계에 도달하여 부처(Buddha)가 되면 시간과 공간의 굴레를 벗어나며, 나아가 시간과 공간을 자기 뜻대로 부릴 수 있으며 대자유를 누리는 해탈인(解脫人; 모든 속박을 벗어난 이)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주와 인생의 모든 비밀이 자기의 마음 속에 있으니, 자기의 주인공(主人公)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마음공부를 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은, 우리 모두가 다시금 깊이 음미해 봄직한 말씀이라 할 것이다. (해인사 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