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 이야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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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강좌 - 여연
1982년 11월 9호
○ 물 끓는 모양
게눈(蟹眼)이 지나더니 고기눈(魚眼) 얼마냐고
소소히 솔바람소리 들려오네
몽즙출마(夢葺出磨)에 여린 구슬만 떨어지고
다시 어지러이 물 끓어 비설(飛雪)이 가볍네
은병에 탕(湯)을 끓여 제이(第二)를 자랑하니
옛 사랑도 그 물끓임을 알아낼 수 없네
노공과 이생은 좋은 화로를 만들어 찻물을 끓이고, 홍옥(紅玉)을 쪼아 찻그릇을 만들었는데
나는 참으로 가난하여 세상의 쓴 고기만 맛보니, 아미(娥眉)를 거느리고 옥그릇을 나눠 갖지 못하였네
어찌 부호의 차마시는 사치를 배워 좋은 화로 값비싼 석조(石銚)를 마련하여 그들을 따를 소냐
뱃속에 가득 쌓인 문자 5천권은 바라지도 않으나
오로지 차 한 잔으로 중천(中天)에 해뜨도록 잠이나 즐겼으면.
이 시는 소식(薰戰)의 차노래 (茶歌)로서 물이 끓는 정황을 잘 헤아릴 수 있으며, 한 생을 사치부리지 않고 허영스럽게 떠돌지 않는, 그야말로 한적하고 자연(自然)스런 차생활의 높은 경지를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인간(人間)이 사는 마을에는 늘 떨쳐버릴 수 없는 시끄러움이 가득한 것 같다. 있는 자들의 저 과분한 사치는 가장 고요롭고 순연한 차생활마저도 값비싼 그릇들로 소란을 피우는 법석이 비단 옛 뿐이겠는가?
다신전에서는 탕(漫)의 끓는 상태를 분별하는 방법을 세가지의 큰 것과 열 다섯 가지의 작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 첫째는 물이 끓는 모양에 의하여 알아내는 형변(形辦) 이고, 둘째는 물이 끓는 소리를 들어 알아내는 성변(聲辦)이며, 마음은 탕물이 끓어오르는 기세에 의하여 분별하는 첩변(捷辦)이 곧 세 가지 큰 것인데, 형(形)은 차관(茶權)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성(聲)은 밖의 것이다.
형변은 찻물이 끓으면서 생겨나는 작은 기포(氣泡)를 형용한 말인데, 육우의 다경에서는 물고기의 작은 눈처럼 물방울이 맺히면서 솔바람 부는 그윽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일비(一佛), 물솥의 연변(緣邊)에 샘솟듯 탕이 끓기 시작하고 수기(水氣)가 서려서 물방울이 고운 구슬처럼 연이어 맺히게 되는 상태를 이비(二沸), 물이 펄펄 끓어 파도의 여린 무늬가 일어나는 듯 물결치는 상태를 삼비(三沸)라 하였다.
삼비가 넘어가면 너무 탕이 짙어 노수(老水)가 되어 차맛을 잘 낼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또한 이비 때 끓은 물 조금을 따로 떠놓았다가, 대젓가락으로 물이 끓는 중심기류(氣流)를 다듬어주어 물의 강한 기세를 고요롭게 다스려 주는데, 다시 수기가 극렬해지면 전에 떠놓았던 물을 부어 물 기운을 순연케 하여 탕수의 화(華)를 육화(育化)시킬 수 있다 하였다.
이렇게 물기운이 충만하여 잘 다스려지는 것을 초의스님은 경숙(經熟)이라 다신천에 적고 있다. 그 천의 결숙(結熟)이 있고 너무 끓여진 노수의 상태인 순숙(純熟)이 있는데, 물의 끓은 상태의 갖가지를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나 형상에 비유하고 있다. 가령 솔바람 부는 소리라던가 전나무에 비내리는 소리 따위의 표현은 우리의 가슴을 사무치게 한다. 그 밖의 기포에 따라 포말이 버끔버끔한 상태의 바닷게 눈, 물망울이 또릿또릿한 모양의 새우 눈 등의 재미있는 표현도 쓰인다.
소리에 있어서는 맨 처음 일어나는 초성(初聲)과, 물이 돌돌 말리면서 회전하는 상태의 전성(轉聲), 물이 맹렬하게 기세를 떨치는 정황의 진성(振聲), 물 기운이 소용돌이 치면서 사납게 휘몰아부치는 취성(驟聲)등이 있는데, 그 네 가지가 다 맹탕(萌揚)이라고 말하고 있다.
맹탕이라는 것은 곧 물이 덜 영글었다는 뜻으로 완전치 못함을 말한다. 우리가 일상 먹는 밥을 짓는 데에도 물의 뜸을 잘 다스려야 그 밥이 맛이 있듯이, 물이 영글지 않고 간(間)이 맞지 않으연 차맛을 잃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도 삼삼하고 담백하게 간을 맞추어 저 무한히 들끓는 내부의 생업을 잘 가꾸지 않으면, 참으로 소중한 우리의 생명이 덜익은 물처럼 맹탕 헛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시끄럽고 들뜬 자기의 영혼을 고요롭고 맑은 영상을 통해 평화의 간을 맞추고, 맹렬하게 휘몰아부치는 취성의 물기운처럼 열뇌(熱惱)하는 망상을 솔바람 불고 전나무에 가을비 내리는 듯한 아늑한 정적의 간을 맞추고, 또한 구르고 돌돌 말려 회전하여 맹탕이 되는 전성처럼(轉聲) 채워도 채워도 가득차지 않는 욕망의 물기둥들을 보시하고 나눠 갖는 따뜻한 사랑의 간을 맞추고, 덜익어 소리내는 초성(初聲)과 같이 어느 것에나 경박하게 부딪쳐 소리부터 내는 우리들의 얕은 지혜를,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이 현실(現實)을 좀 더 깊게 여과하는 지성의 간을 맞추어야 될 것 같다.
차생활의 다른 것은 다 버리고 모르더라도 물을 간에 맞추어 익히듯이, 우리가 처한 역사현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으며, 우리의 전통문화가 어떻게 여과되어 이 시대에 새롭게 조명되고 수용될 것인가 하는 것만은 알아야 할 것이다.
생활구조와 사고방식까지도 서구화되어 참으로 곱고 여유있는 우리의 생활 공간이 침식당한 지 오래인 이런 상황에서, 우리 차인들은 좀 더 바람직한 자기 여과를 통해 이 현실에 간을 맞추어서, 긍지 높은 전통문화인으로 자부하고 행동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예의 바르고 맑은 아침의 나라」로 칭송 들었던 우리의 옛 조상들에게는 결코 부끄럽지 않은 자손이 되고, 지금 자라는 세대들에게는 역사 속에서 변명하지 않는 지혜인이 되도록 노력하며, 생명의 실상에 바른 눈을 뜨도록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차생활의 바르고 참된 덕목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