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에 다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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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 박필규
1982년 10월 8호
가야산, 첩첩한 산과 바위, 그 큰 도량에서 풍기는 삶에의 뜻파 힘이, 지축(地軸)을 흔들며 무한한 시공(時空)으로 뻗침에 접하여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자기의 삶을 다짐해 봅니다. 분명한 존재의 한 몫을 맡아 있으면서 나는 얼마나 자질구레하며, 눈 앞의 “자신”뿐인 좁은 삶이었던가를.
무위자연(無寫自然), 펼쳐진 실상(室相)이, 그대로 비단에 놓인 수(錦繡)임을 주억거리면서 숲속에 섭니다.
고운(孤雲)선생이 노니시던 학사대의 전나무는 천년을 살고 있거니와, 그 나무와 아울러 해묵은 수 없는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이에 엉킨 담장이, 어름, 칡덩굴들도 쉬이 들어가지도 못하는 비경(秘境)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는 우리나라입니다. 제 나이를 돌아보니 인생의 깊숙한 곳까지 걸어 온 나이입니다. 그런데 둘러보니 나무들의 이름을 통모릅니다. 겨울 등걸이나 가지도 그렇거니와, 무성한 여름의 잎과 꽃인들, 가을에 영그는 갖가지의 곱고 아름다운 열매를 본들, 저는 그것이 무어라는 이름인지, 저 고운 소리의 산새 이름이 무엇인지 통 모르는 문맹(文盲)입니다. 이제 훤히 알아 뒷사람들에게 가르쳐줘야 할 나이인데 말입니다.
암자의 큰스님께 “고리수”를 배웠습니다. 사탕을 만든데서 사탕나무란 별명이 있는 이 나무는 큰 고목들도 많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학자가 신기하다 해서 미국에서 들여와 보니 해묵은 고목들이 가야산에 많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봄 날, 흰 눈이 걷힌 땅위로 빽빽한 녹색에 자주빛 무늬가 얼룩얼룩한 계란모양의 넓죽한 입사귀가 불쑥불쑥 땅위에 머리를 내어 밀었습니다. 문맹의 이 나그네에겐 무척 이국적이고 엉뚱한 몸짓으로 “들여 온 식물”인줄 알았습니다. 四月도 익어 갈 무렵, 그 잎새 사이에 파름한 분홍빛이 고운, 간드러진 나리 꽃이 나즈막이 귀엽게 고개 숙여 피는 것이었습니다. 닷푼(五分)이나 될 꽃술은 우물을 들여다 보듯 아래로 숙이고, 그 주위에 진한 자주빛 무늬가 보이는 여섯 꽃잎은 팔들을 뒤로 젖히고 있는 양 뒤로 오무려서 화사하고 간드러진 멋을 풍기는 것입니다. 썩은 가랑잎 아래 검은 땅속으로 뻗은 뿌리는 여간 깊게 묻힌 것이 아니어서, 이 간드러진 아름다움을 장만하기에 합당한 뿌리입니다. 알고 보니 이것은 옛날 우리 조상들이 희고 뻐득뻐득한 고운 녹말을 내어서 환자나 아기에게 암죽을 끓여 먹이던 자양분 많은 “얼레지”꽃이었습니다.
가야산 보고(寶庫)에 숨은 식물이 어째 백, 이백으로 그치겠습니까. 이 아름다운 산속에 심취하는 나그네로서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팔만대장경과 함께 아무쪼록 노스님분들께서 아시는 가야산의 신비를 후생에게 활짝 열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홍류동(紅流洞)을 지나갑니다. 저 바위에 낀 검자주빛 이끼, 병풍으로 깎아지른 언덕에 선 노송(老松)과 한 떨기 또 한 떨기 바위에 엉석피우며 피어난 분홍빛 진달래도, 못 헤아릴 긴 세월의 “피고짐”의 되풀이 입니다.
무위자연의 모습가운데에다, 내 이름 석자 남기겠노라고.부질없이 새겨놓고 간 잊혀진 헛 이름이 석합니다. 이름 석자가 세상의 빛이 되어 남지 못할지언정 혹시라도, 저 영원한 바위에 구차하고 무료히 남아서 얼굴 붉힐까 걱정입니다. 자연보호라고 구호도 외치고 휴지 줍기에 그쳐선 안될 것 같습니다.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친근을 가져서 내 몸이 대자연속의 일부임을 실감해야겠습니다.
가야(伽椰)가 드리우는 무언(無言)의 교훈에 고개 숙이며, 부처님의 법은, 스승을 통하여 더욱 간곡하게, 쉽게 배우고 싶은, 또 그렇게 해서 뒷사람에게 남겨 주고 싶은 간절한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