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하러 나온 스님들이 소리죽여 웃었다. 도량석으로 부르는 노랫소리는 더 이어져 나갔다.
목소리가 구성져 조금도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도량석 목탁을 두드리며 천하를 호령하듯 성대를 한껏 높여 그는 노래 부른다.
타향 땅 밝아서 돈 지
십년 넘어 반평생
사나이 가슴 속에 한이 서린다.
황혼이 찾아들면 고향도 그리워져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세
“저 스님은 아마 오늘 아침 대중공사에서 쫓겨나게 될 걸” 웃음을 찾으면서 예불을 올리고 나서 누군가 수군거렸다. 그러나, 이미, 도량석을 마친 스님은 그 길로 바로 미리 싸둔 걸망을 진 채로 일주문 밖으로 사라진 뒤였다.
휘영청 밝은 달빛 속에 그가 남긴 발자국만 뚜렷이 눈 위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2. 시민회관 대법회
납월 팔일, 그러니까 12월 8일 성도절(成道節)기념행사가 시민회관에서 준비되었다.
청년회 주관으로 예년에 없던 대규모 법회였다. 청년회에서는 법사로 선방 수좌 스님을 청하였다. 수좌 스님은 법사로 가겠노라 승낙은 하였으나 원고를 준비한는 데에 익숙치 않았다. 그래서 그냥 평소의 실력대로 설법을 하지 싶어, 아무 준비없이 연단에 나섰다. 난감한 시간이 흘렀다. 아무런 말도, 생각도 나오지 않아 말없이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청중은 다만 법사의 입이 열리기만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법사로 나선 수좌 스님은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보려고 애썼으나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고통이었다. 순간, 최후수단으로 좋아하는 유행가 한 곡을 불러대기 시작하였다.
꽃피는 유달산아 꽃을 따는 처녀야
달뜨는 영산강에 노래하던 총각아
그리움을 못 잊어서 천리길을 왔건만
님들은 어디 갔나 다 어디 갔나
유달산아 말해다오 말 좀 해다오.
스님은 노래의 마지막 구절 ‘말해다오 말 좀 해다오’에서 힘을 얻은 듯, 그러고 나서부터 슬슬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청중은 이 기이한 법문에 어리둥절하여 서로 얼굴을 마주보다가 우레와 같은 박수로서 일제히 찬사를 보내었다.
법사는 드디어 제 힘을 되찾아 정해진 그 한 시간을 멋진 법회로 이끌어나가 청중을 사로잡았다.
“야 멋진 법사야!”
청중은 법회가 끝날 무렵에 다시 박수로써 아낌없이 찬사를 보내었다. 그리하여 뜻밖에 대성황을 이룬 법회가 되었다.
3. 가사불사 뒷날
두달 동안에 걸쳐서 가사불사가 회향을 보게 되었다. 비구, 비구니, 청신사, 청신녀를 합해서 예순여 명이 동참하여 재단, 재봉, 포장하는 일을 드디어 마쳤을 때의 이야기다.
한 비구 스님이 뒷산에 올라가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노래를 부르기에, 한번 올라가 보았다. 그 스님은 체격이 장군 같은 이었다. 평소에 건강하고 딴딴해 보이더니만, 웬지 그 날은 달라보였다.
“아니, 스님이 웬 일이요?”
내가 물었다.
“정말, 미치겠네!”
그는 더욱 크게 노래를 불렀다.
나중에 조용히 그의 속사정을 들어보니, 의외로 놀라왔다. 간밤에 가사불사에 동참하였던 사부대중이 모두 떠나고, 떵 빈 방에 그가 홀로 서 있자니 괜히 화가 치밀어올라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다른 방은 어떤가 하고 가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신발이 가득 차 있던 댓돌도 쓸쓸히 그의 신발 한 켤레 뿐이었다. 방마다 웃음소리, 재봉틀 소리가 가득하더니만 이게 웬 정적인가 싶었다. 빈 장터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처절한 슬픔 같은 게 고여왔다. 스스로도 이 슬픔에 놀랬다. 그래, 그는 갑자기 찾아온 정적을 이겨내지 못하여 한껏 고함치는 것으로 화풀이마냥 풀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화는 쉽게 풀리지 않아 눈물로 변하여 마구 쏟아져 내렸다. 참으로 정이 무엇인가 싶었다.
그날 그와 함께 시내에 나가 영화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들은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그의 출가에 관한 내력이었다. 군대생활을 하던 중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새 삶을 맞이한 기분으로 입산출가의 길을 나섰다는 이야기다. 통신병인 그는 전화선이 끊어진 곳을 찾느라고 숲속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날씨가 더워 숨이 꽉꽉 막힐 지역이었다. 지루하게 계속 전화선 연결 부분만 찾아나서다가 정신없이 내달려서 벼랑 아래로 곤두박질을 하게 되었다. 그는 다행히 벼랑 중간쯤에서 큰 나뭇가지에 걸렸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의 순간이었다. 그때에 시간이 뚝 멈춘 듯한 느낌이었다고 기억을 되살리면서 “부처님께 인연이 되려고 벼랑에 떨어진 것이지요”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제대 뒤에 집을 떠나 곧 출가의 길을 나섰다. 그는 그때에 이 년 남짓한 출가 생활을 이어오던 중이었다. 연륜이 짧아서인지, 감정이 풍부하고 기분에 쉽게 좌우되곤 하는 그가 옆에서 보기에도 어려워보였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죄다 듣고 나서,
“어디, 보궁 같은 성지참배를 나서서 바람을 쐬고 오면 좀 나을 것이요”하고 권하였다. 그는 쾌히 그 뜻을 받아들여 걸망을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