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밑으로 신문 밀어넣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밝힌 한실장은 신문을 주워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가 깰가봐 그러지도 못하고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며 그냥 누워 있었다.
막내딸 도시락 때문에 늘 새벽잠을 설치는 아내한테 조금이라도 더 자게 해주고 싶다는 배
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자기 뜬눈으로 밤을 밝힌걸 가급적 아내한테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잖아도 요즈음 자기 눈치만 살피면서 불안해하는 아내한테 초조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내가 더 불안해할 것 같아서였다.
“결국 이 지점을 향해서 내가 일생을 달려왔단 말인가?”
한실장도 밤새도록 한 생각을 다시 반복해 하고 있었다. 생각을 하려 해서가 아니라 요즈음은 눈만뜨면 그 생각이 머리 속에서 불쑥불쑥 떠올랐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말이야 숱하게 들어왔지만 그 자신이 인생이라는 것을 거의 다 살고나니 정말로 허무하다는 것이 뼈가 시리게 느껴졌다.
전재의 와중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와 삶의 터전을 찾기 시작했을 때 한승소 씨도 출판사에 첫발을 들여 놓았다. 그의 나이 스무살 때였다.
말이 출판사지 사장집 문간방을 사무실로 쓰고 있던 그 출판사는 편집이나 교정일 이외에 문선까지도 해야만 했었다.
하기 때문에 한승소 씨는 사장집 문간바에서 퇴근도 못하고 밤낮으로 온갖 일을 다 했는데 겨울철에는 불기만 스쳐간 조개탄 난로를 다리 사이에 끼고 자다가 바지가랭이를 태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속에서도 한승소 씨는 사장이 베껴주는 일본책 원고로 세계문학전집을 만들고 세계동화전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책들은 읽을거리에 굶주려 있던 그 시대 사람들한테 너무나도 긴하게 잘 읽혀져 나갔다.
독자들한테 요긴하게 잘 읽혀져 나간다는 말은 그만큼 사업이 잘 된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한승소 씨가 몸 담고있던 출판사는 일취월장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문간방에다 출판사 사무실을 얻어서 정식 출판사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자 출판사에는 자연 내노라 하는 지식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따라서 한승소 씨의 사교범위도 자연 화려하게 확대되어 나갔다. 그나 매일 만나는 사람은 대학교수, 소설가, 시인, 화가가 아니면 언론계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명실공히 문화의 심장부에서 심장 뛰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게끔 되었다. 회사의 발전은 자연 한승소 자신의 발전이었다. 회사가 문공부로부터 우수한 출판사로 지목되어 몇 번의 표창장을 받게 되자 한승소 씨도 어느덧 대한민국의 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사람으로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한승소 씨 자신도 자기 스스로를 그런 사람이려니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회적인 명예나 가치뿐 아니라 생활도 거기에 비례해서 발전해 나갔다.
그는 대출판사의 편집상무로서 손색이 없는 생활을 했다. 기사가 딸린 자가용에 45평 아파트에 아들 둘, 딸 하나에 ....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집안에서는 출세한 사람으로 치부 했고 자기 자신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사장 이들이 미국서 돌아옴으로 해서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그건 정말로 기가 막힌 일이었다. 옛날 자기가 사장집 문간방에
서 일하고 있을 때 사장 사모님은 툭하면 “학생, 시장 좀 다녀와야 하는데 애기 좀 봐줘요” 하고는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아이를 한승소 씨한테 맡기고는 총총히 대문 밖으로 사라지곤 했다.
한승소 씨를 학생이라고 부른 것은 나이가 어린 탓도 있었지만 그가 실지로 모 대학에 적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학교에 적만 두고 있으면 대리시험을 쳐도 졸업장이 나오던 때였으므로 한승소 씨는 모 대학 영문과에 적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흔한 ‘미스터 한’ 소리 한번 못 듣고 늘 학생으로 불리우고 있었다.
사모님이 맡긴 아이는 엉금엉금 기어다녔기 때문에 방안에 그냥 놔두면 온갖 말썽을 다부리므로 아이를 맡는 즉시 둘러업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모님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지 아이를 맡길 때면 언제나 아이를 업을 수 있는 포대기와 갈아채울 수 있는 기저기도 함께 맡겼다. 시장을 다녀올 때 쯤이면 보통 한두번 정도는 오줌을 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사장 아들 아니 지금 사장은 한승소 씨가 업어 키우다시피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오자마자 자기를 눈에 가시처럼 못마땅해했다. 의식이
구태의연하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획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승소 씨는 사장 아들이 사장자리에 취임한 이후 6개월 동안 온갖 수모를 다 견뎌냈다. 자기를 마치 낡은 기계 취급하듯 하는 사장이 괘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와 정면으로 맞서서 대결하기에는 자기가 너무 무력했다. 그래서 한승소 씨는 나가라는 말은 차마 못할 테니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뎌보자 하며 하루하루를 찾아왔다.
참을 수밖에 없는 건 자식들 때문이었다. 첫아들은 대학을 졸업시켰지만 둘째, 셋째는 아직 재학중이므로 치사하고 아니꼽다고 해서 그만둘 배짱이 아니었다. 배짱이고 뭐고 간에 가장인 자기로서는 그럴 수 없었다.
이쯤 되자 한승소 씨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반에 대해 회의가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때는 문화 발전에 공헌을 했다는 지부심도 가졌지만 그 자부심은 어디로 꼬리를 감췄는지 그의 가슴 속에는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능력도 영향력도 없는 초라한 늙은이라는 자멸감뿐이었다.
“기계도 낡으면 가는 법인데 사람이라고 안 그럴 수 있나”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러나 그의 가슴 속은 “결국 내가 이 지점을 향해서 달려왔단 말인가” 하는 회의로 꽉 차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내가 살며시 일어났다. 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시간이 늦었다고 생각하는지 언제나 후닥닥 얼어났는데 요즈음은 행여나 남편인 자기 잠이 깰가봐 조심조심 일어나는 것이었다. 조심조심 일어나는 것으로봐, 아내도 벌써 잠이 깨어 있었던 듯했다.
“여보.” 한승소 씨는 아내를 불렸다.
“네 ”
아내가 놀라며 남편 얼굴을 돌아다 보았다.
“능엄신준지 뭔지 그거 이제부터는 큰 소리로 읽어. 내 눈치 보지 말고…”
한승소 씨는 아내 손을 꼭 잡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의 손안에 들어 있는 아내 손은 탄력없이 꺼칠꺼칠했다.
아내도 자기처럼 생활에 위협을 받는 힘없는 늙은이로 이미 늙어 있었다.
‘향도 태우고 싶으면 태우고.“
“여보 …”
아내 목소리는 떨렸다.
어둠속이라 다행이군. 한승소 씨는 떨리는 아내 목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서로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