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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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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이야기 - 이원섭 1989년 12월 94호
ㄱ. 모임 사람들
법화경이 설(說)해진 곳은 마가다(Magadha)라는 나라의 수도 왕사성 교외에 있는 기사굴산(영축산)이다.
그런데 먼저 거기에 모인 수효가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한다. ‘다 아라한이라 온갖 더러움 이 미 다하여 다시 번뇌 없으며 자리(自利)얻으며 모든 삶의 결박 다하여 마음에 자재(自在)얻은 이들’이라는 일만삼천의 대비구를 비롯한 여러 비구, 비구니와 팔만의 보살이 참석해 있는 것은 그렇다치고, 제석천, 범천을 비롯한 열명의 천상계의 임금이 각기 몇만씩의 전속을 끌고 와 있는 데다가 열덟 용왕과 네 긴나라 왕, 네 건달바 왕, 네 아수라 왕, 네 가루라 왕이 각기 약간백천(若干百千)의 전속을 데리고 있었으며, 다시 마가다국의 아사세 왕도 약간백천의 무리를 끌고 참가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산스크리트 원본에 의하면 ‘약간백천’이 ‘몇 천만, 몇 십만’으로 되어 있으므로 결국 몇 억이나 몇 천억의 수효라 해야 한다. 이렇게나 엄청난 무리를 어떻게 수용하며 천인(天人), 용왕 따위의 이르는 바 천용팔부(天龍八部)를 굳이 뜰어들인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말할 것도 없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므로 필경은 하나의 픽션이라 해야겠는데, 바로 이것이 대승불교의 일반적 특징이기도 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 대승경전들은 있었던 일의 충실한 기록이 아니라 불교인들에 의해 창작된 픽션이다. 그리고 픽션이라 해서 나쁜 것만도 아니니. 어째서 그런가 보자.
흔히 사람들은 아함경이야말로 부처님의 실제의 설법을 원형에 가깝게 전해주는 경전이라 말한다. 물론 이것은 어느정도 사실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거기에도 문제가 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유사 이래 한번밖에 없었던 큰 체험이었다면 “이는 고(苦)다. 이는 집(集)이다.”하는 따위의 기술이 그런 체험의 생생한 전달일 수는 없는 일이니, 하물며 그런 언구에 매여 이를 묵수 (墨守)하려 들 때에야 어떤 결과가 오겠는가. 그러므로 경전의 언구를 하나의 시사(示唆)로 보아 이를 떠나 자기의 처지에서 진리를 주체적으로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구도방법이라 하겠으니 그런 길을 간 것이 대승불교였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진리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파헤쳐지는 것에 의해 영원히 새로울 것이 요구되는 생명의 샘이었다. 그러기에 서슴없이 경전을 만들어갔으니, 얼핏 보아 신성모독이라고도 여겨지는 이런 행위가 타성에 떨어지기 쉬운 위기로부터 진리를 구해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부처님의 참된 정신을 소생시키는 결과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리하여 법화경 또는 그런 동기에 의해 참조된 진리 탐구의 한 결실이라 할 때 거기에 등장하는 천문학적 숫자의 갖가지 중생도 그 사실 여부보다는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는 쪽이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런 각도에서 다시 이를 검토한다면 우리는 다음같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비구와 보살은 말할 것도 없고 천용팔부까지도 청중으로 선택된 것은 그들 모두에게 공통되는 어떤 가르침이 설해질 것을 시사함이 아니냐는 것이다. 지금껏 불교안에는 원시불교의 전통을 묵수하려는 정통파와 ‘보살’이라는 이상적 인간상을 들고 나와 불교를 새로운 형태로 전개시키려는 개혁파가 병립해 왔다. 그리하여 개혁파는 스스로 대승이라 자처하면서 상대를 소승이라 배격하고 정통파는 정통파대로 개혁파를 이단시 해왔다. 그래서 두 진영 사이에 알력이 끊이지 않았거니와, 이들을 한 자리에 앉힌 바에는 두 입장을 함께 살리고 지양시키는 새로운 가르침이 설해짐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인가. 물론 대승경전에도 보살과 함께 비구는 등장하니까 속단할 것은 못 되나, 그 엄청난 수효를 볼 때 무엇인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상상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 천용팔부까지 동원한 것도 이제부터 설해지는 가르침이 이 세상의 소승, 대승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적으로 삼세(三世)에 걸치고 공간적으로 시상(十方)을 포괄하여 온갖 중생을 하나의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새로운 메시지가 발표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아직 사태는 명확치 않으나 예사롭지 않으므로 좀더 사태를 지켜보자.

ㄴ. 광명이 미치는 곳
그런데 이렇게나 엄청난 수의 대중이 모여 있던 시기는 부처님이 막 무량의경(無量義經)을 설해 마치시고 나서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昧)에 들어 계시던 시기였는데, 이때 만다라화, 마하만다라화, 만수사화, 마하만수사화가 하늘로부터 내리며 두루 부처님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는 일이 일어났으므로 대중들이 모두 기뻐하는 중, 부처님이 미간의 백호상으로부터 광명을 놓아 동방의 만팔천국토(萬八千國土)를 비추셨다. 이를 차토육서(此土六瑞)라 하니 이 국토에서 일어난 여섯 가지 기적이라는 뜻이다. 거의가 있기 어려운 일들이거니와 그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첫째는 설법서(說法瑞)니,「무량의경」을 설하신 일을 말한다. 경을 설하심이 왜 기적이냐 할지 모르나, 일찌기 없었던 진리를 밝히심이 본래부터 기적 중의 기적에 속할 것은 뻔한 데다가 저 경은 무량한 도리가 하나의 진실로부터 나옴을 밝히셨으므로 기적으로 보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하나의 진실이란 무상(無相)이요 무상은 곧 실상(實相)인 터이므로 무량한 것이 하나의 실상으로 돌아감을 설하신 법화경의 전제가 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천태대사가 「무량의경」을 법화경의 개경(開經)-서설(序說)으로서의 구실을 하는 경-으로 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둘째는 입정서(入定瑞)니, 무량의처삼매에 드신 일이다. ‘무수히 갈리는 온갖 도리의 기초’ 가 되는 선정이 무량의처삼매니, 실상을 관조하는 삼매다. 삼매에서 설법이 나오는 터이므로 법화경을 설하시기 위한 선정이라 볼 수도 있다. 셋째는 우화서(雨華瑞)니, 하늘로부터 만다라화 따위의 네 가지 꽃이 뿌려졌음을 이른다. 이는 십주(十住), 십행 (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의 수행이 법화경의 진리에 의해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佛果〕에 이를 것을 상징하니, 깨달음이 과일〔果〕에 비유된다면 그 인(因)인 수행이 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지동서(地動瑞)니,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한 일이다. 땅은 곧 무명에 덮여 있는 마음이므로 장차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等覺) 묘각(妙覺)의 과정을 거쳐 무명을 깨고 성도할 것임을 나타낸다. 다섯째는 중희서(衆喜瑞)니, 꽃비가 내리며 땅이 진동함을 보고 대중이 기뻐한 일이 그것이다. 감동하여 마음이 열리는 이런 사실이 없었다면 부처님인들 어떻게 법화경을 설하실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여섯째는 방광서(放光瑞)니 빛을 놓아 동방의 만팔천 국토를 비추신 일을 가리킨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중생의 번뇌를 깨고 의혹을 제거해 주실 것임을 예고하는 조짐이므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차토육서에 이어 피토육서 (彼土六瑞)가 나타나니 부처님의 광명에 의해 비춰진 동방 만팔천 국토의 여섯 가지 양상이다. 첫째는 견육취중생(見六趣聚生)이니 영축산의 대중의 눈에 저 땅의 육취중생이 샅샅이 보인 일이요, 둘째는 견제불(見諸佛)이니 그곳에 계시는 여러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일이요, 셋째는 문불설법 (聞佛說法)이니 그 여러 부처님의 설법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일이요, 넷째는 견사중득도(見四聚得道)니 그곳 사부대중이 온갖 행을 닦아도 얼음을 볼 수 있는 일이요, 다섯째는 견보살행행 (見菩薩行行)이니 그곳 보살들의 보살행 닦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일이요, 여섯째는 견불열반(見佛涅槃)이니 여러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에 사리를 탑에 모셔 공양함을 본 일이다.
상상력에 절도가 없는 것이 인도 사람의 특성이라고는 하나, 방광만해도 현실의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터에 왜 우주 저쪽의 일까지 이렇게나 구체적으로 나열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이것에는 이상한 점이 있으니 부처님이 출현하심으로부터 대승불교가 생길 때까지의 인도의 현실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성도(成道)하사 정각의 내용을 중생들에게 설하심으로써 불교가 생겨났는바 이는 저 국토의 육취중생을 본 일, 여러 부처님 계심을 본 일, 부처님들의 설법하심을 들은 일과 홉사하다. 또 인도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출가, 재가의 신자가 생기게 되어 교단이 성립했으니 이들 중에는 사제, 십이인연의 도리를 닦아 아라한 벽지불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저 국토에서 도를 얻은 사부대중에 해당한다. 또 부처님이 입멸하시자 불사리탑을 공양하는 풍조가 재가신자들 사이에 나타났으니, 이것이 바로 저 국토의 견불열반(見佛涅槃) 그것임은 이를 것도 없다. 그리고 시일이 흐름을 따라 인도에서는 전통을 고수하는 비구의 교단과 불탑공양에만 매달리는 재가신자를 못마땅하게 여겨 범부인 자기를 성불이 가능한 자(보살)로서 내세우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니 그것이 대승불교였다. 그렇다면 이것은 저 국토에서 보살행 닦음이 목격되었다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피토육서는 단순한 공상이나 환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인도에서 전개되고 있었던 불교적 현실의 투영도였다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요약하면 대승 소승의 갈응과 부처님이 안 계신 데서 오는 혼란이라 하겠는데, 이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화경이 등장했음을 시사하는것이 아닐 수 없다 곧 지금껏 불교 안에는 여러 가르침이 있어서 혼란을 빚어왔는데 그런 가르침들을 설해오신 부처님의 진의는 어디에 있었으며 진정한 불교란 무엇이냐 하는 점을 탐구함이 법화경의 첫째 과제요, 부처님이 안 계시는 상황속에서 진청한 불타관(佛院觀)을 모색해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지주(支柱)를 확립함이 둘째 과제라는 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