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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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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큰스님을 생각하며 - 편집실 1993년 12월 142호
갈무리와 파지로 불교 중흥을


고조되는 대중의 관심
퇴옹당 성철 대종사의 열반 직후부터 보름 넘게 신문과 방송 등 각종 언론 매체는 날마다 큰스님의 행장을 비롯하여 마지막 사리 수습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보도하기 바빴다. 평소 불교계 소식에 인색한 감이 없지 않던 언론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조금은 뜻밖이다 싶을 정도였다.
불교인은 물론 온 국민의 관심이 지대하기도 했거니와 언론 매체의 열띤 보도로 한동안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성철 신드롬’(법보신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큰스님의 법어와 법문집이 불티나게 팔리고, 다른 불교 서적에도 그 여파가 미쳐 때 아닌 불서 판매 호황을 맞고 있다. 때맞추어 큰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 출간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으며, 곁들여 화보집과 녹음테이프도 판매 호황을 맞고 있다하니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세인의 들뜬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큰스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은 ‘금세기 최후 최대의 장엄한 의식으로’ 가야산을 뒤덮은 사람의 물결을 차분하게 이끌었다. 마치 일시적인 흥분과 관심을 경책하여 진솔한 자세로 당신의 가르침을 되새기라는 듯 초겨울의 비가 내리는 가운데.
언론 매체가 보도한 내용이 사실 마음에 썩 내키지는 않지만, 일단 사회 전반적으로 대중에게 불교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고 본다. 언론은 주로 큰스님의 고행을 중점으로 부각하여 신비화시켰고 격변하는 정세를 초월하여 은인자중하면서 정적인 생활을 하는 ‘초인’으로 상징화하기에 여념이없는 듯했다.
성철스님이 평소 주장한 깨달음의 과정과 내용을 담은 불교사상보다는 장좌불와, 묵언, 무염식 등 다분히 대중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용어가 기사의 주제로 다루어져 승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있었던 점은 유감스럽다.
그러나 일단 언론의 보도에 담긴 문제점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루어 놓기로 한다. 큰스님의 열반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불교에 대한 대중의 고조된 관심이 한국불교의 중흥이라는 실제적 성과로 이어지려면 우리 스스로의 내부 정리가 절대 필요하다는 점이 더 중요한 까닭이다.
종단의 면모가 일신되어야
성철 대종사의 열반은 한국불교의 중흥을 위한 하나의 국면을 조성하였다. 큰스님의 크나큰 법력으로 말미암아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실추된 승가의 권위가 얼마쯤 되살아나고 있으며, 아울러 분규에 분규가 꼬리를 물은 전과로 포교에 큰 어려움이 있던 점들이 해소되고 있다. 실제로 교계의 ㅂ신문의 강우 큰스님의 다비식을 전후하여 구독 신청 전화가 쇄도하여 즐거운 비명을 올렸다한다.
하지만 큰스님의 열반으로 공석이 된 종정 후임 자리를 놓고 행여 잠잠해진 내황이 다시 도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큰스님 열반을 처음 보도한 방송과 신문의 기사에 이미 후임 종정직을 둘러싸고 잡음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기사가 있던 점만 보더라도 교계 밖에서조차 이 문제를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철 대종사의 다비식이 있은 지 닷새 만인 11월 1일 오후 두시 종로 대각사에서 열세명의 원로의원 가운데 아홉 명이 참석하여 93년도 정기원로회의를 열고 두 시간쯤 비공개 회의를 가진 끝에 참석자 전원 합의로 서암스님을 새 종정으로 추대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원무스님은 “서암스님이 만장일치로 새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나 본인은 아직 수락을 하지 않은 상태”라고 하면서 성철스님의 사십구재가 끝난 뒤 종정직을 수락할 예정임을 시사했다.
종정이 오랫동안 공석이 될 경우 좋지 않은 일이 생기지 않겠냐고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들조차 뜻밖이다 싶게 원로의원들만의 전격적인 종정추대인 까닭에 절차상의 문젤르 제기할 소지가 충분한 원로회의의 결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11월 18일 개회된 제110회 정기중앙종회의 개회사에서 종하스님은 서암스님의 종정추대와 관련하여 “절차를 무시한 편법”이라고 비난하면서 차츰 전면적인 문제로 비화되는 듯싶다.
대중들은 돌이켜 생각하기조차 싫은 91년의 ‘승려대회를 통한 힘겨루기’가 혹여 재현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과 긴장감으로 이번 종회를 주시하였다.
그런데 종정 투대와 관련한 종헌 조항을 살펴보면 그 이전 원로회의에서 재적과 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종정 추대를 하던 것이 1988년 개정되어 종정추대위에서 하도록 되어 있다. 임기도 십년에서 오 년으로 줄었다. 그러나 1991년 종정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각축을 벌일 당시 원로회의는 1988년의 개정된 종헌은 원로회의의 의결을 거치지 않은 불법이라고 하여 성철스님을 종정으로 재추대하였고, 이것이 그냥 관례로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지금 종회가 굳이 ‘종헌’ 조항을 내세워 고집을 부린다면 결국 열반에 드신 큰스님에게까지 흠집을 내는 일이다. 소급하여 책임을 묻는다면 지금껏 ‘모호한 법’을 방치하여 종단운영을 임의적으로 하여 온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겠다. 1991년 당시에는 필요에 따라 묵인하였다가 이제 와서 원로회의의 결과를 존중치 않는 이면에는 다른 복선이 있지 않나 의심스럽다. 1962년 제정 공포된 뒤 십여 차례 이상 개정에 개정을 거듭한 종헌이 더 이상 권위를 잃지 않도록 원로의원들의 의사가 존중되길 바란다.
우리는 이번 원로회의에 참석했던 한 원로의 의견을 대단히 뜻깊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간 원로들이 잘못하여 종단에 불협화음이 있었던 것”이라는 그의 자성의 변은 동시에 앞으로 종단운영에서 원로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결의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원로회의가 종단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그 동안 꾸준히 제기 되어 왔고, 분규 등 제반의 현안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무기력한 원로회의를 보면서 많은 종도는 안타깝게 여겨 왔다. 이제 불교중흥의 새 국면을 맞아 원로의원의 결의에 접하며 기대를 갖는다.

개혁으로 갑술년을 맞도록
이번 정기중앙종회에는 상정된 안건이 수두룩하였다. 93종정감사, 94예산심의를 비롯하여 지난 109회 임시종회에서 이월된 안건을 포함하여 꽤 많은 안건이 상정되었다. 그 가운데에는 ‘실천불교전국승가회’가 청원 제출한 종단개혁안이 있었으나 지난번 임시종회에서 그랬듯이 또 다음으로 이월시켰다. 도대체 종회가 종단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종회에서 다루려고 안건으로 채택했는지 묻고 싶다. 종헌의 정기종회 조항에 회기 일정에 대한 명시가 없으니 하루에 그쳐도 ‘합법’이겠지만, 명색이 정기종회인데도 고작 사흘에 그치고 그나마 상정된 안건의 일부만 처리하고는 다음으로 넘어가는 어물쩡한 운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다.
지금 종단 안에서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굵직한 현안 문제만도 여럿 있다. 종립대학인 동국대의 문제와 중앙승가대 학장 문제, 불교방송국과 신규 사업인 불교유선 텔레비전방송의 문제 그리고 종회제도의 개혁은 해를 넘길 수 없는 현안이다. 그런데도 어쩔수 없이 해를 넘겨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갑술년에는 현 총무원장의 중임임기도 만료되어 후임 총무원장을 선출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 총무원장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가장 빠른 시일 안에 종단의 개혁을 확실하게 추진해야 한다.
거목의 그늘 아래에 있을 때는 그토록 지중한 존재로 느끼지 못한 중생이 막상 거목이 없어져 그 그늘의 크기를 가늠하자니 한량없는 그리움만 가득하다. 성철 큰스님이 한국불교에 주시고 간 대중의 불교적 관심을 새로운 양분으로 소화해야 할 과제가 남았다. 혹시라도 종정 추대로 인한 잡음이 더할 경우 큰스님의 그늘에 답하는 예의가 아니겠다.
대중이 합심하여 종단의 전향적 발전을 위해 모두 제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종회의 개혁은 필연이다. 당장 오늘 나라 안팎에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변화의 소식들만 보더라도 한국불교의 행보가 얼마나 더딘지 뼈저리게 느껴지지 않는가.
갑술년은 불교 도약의 전기가 될 중요한 해이므로 지금부터 준비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