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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정로의 돈오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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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큰스님을 생각하며 - 목정배 1993년 12월 142호
퇴옹 성철 큰스님은 세수 82세로 열반하셨다.
누구나 입에 쉽게 올리듯이 ‘장좌불와長坐不臥, 삼천배의 절. 돈오돈수頓悟頓修, 그리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식으로 스님을 대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표피적인 모습으로 스님의 사상의 편모를 이해하는 것은 구우일모九牛一毛에 그치고 말 것이다. 스님은 일생을 통해서 간화선으로 일관하고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이룬 선승이다. 더구나 긴 선종사에 무수히 명멸하는 각종의 이론異論들 가운데 단박에 깨쳐 들어가는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의 돈오돈수를 깨달음의 최고의 지표로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 이런 자신의 불교사상인 돈오적 선심을 독보적인 교학적 체계를 세워 하교下敎하고 있다.
스님의 저술은 중도론 을 골격으로 유식 중관사상부터 중국의 천태 화엄사상과 한국의 선사상까지를 관통하여 해석한 「백일법문」, 돈오점수론 을 통렬히 배격하고 선수행의 정통이론인 돈오돈수론를 제창한 「선문정로」, 상당법문上堂法門으로 행한 깨달음의 노래인 「본지광풍」, 보조 종조설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조계종사를 다시 정리한 「한국불교의 법맥」, 또한 대학생 수련회에서 행한 법문등을 모은 「영원한자유」 등이 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말씀들을 모아 11권의 법어집을 출간하였다.
「선문정로」 는 돈오돈수 사상이 어째서 선종의 정통사상 인지를 어록과 경전을 근거로 낱낱이 밝혀 주고 있다. 제 1장 견성성불見性成佛에서 제 19장 소멸불종消滅佛種까지 모두 열아홉 가지의 범주를 설정하여 처음에는 견성, 불성, 번뇌 등의 의미를 해석하고, 깨달음의 상태는 어떠해야 하는지는 오매일여寤寐一如, 사중득활死中得活,으로 나누어 자세히 제시하고 있다. 또한 깨달음의 완성으로 한 점 의혹도 없는 상태인 대원경지大圓鏡智, 내외명철內外明徹, 상적상조常寂常照,등이 불조의 정전임을 밝히고 있다. 해오점수解悟漸修, 분파분증分破分證, 다문지해多聞知解 등에서는 돈오점수의 폐해를 적시하고 선문의 최대장애가 이러한 이론이라고 분명하게 갈파하고 있다.
이처럼 「선문정로」가 정통선의 사상적 입장을 정리한 것이라면, 「한국불교의 법맥」은 돈오돈수의 선사상이 어떠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지 찾고 있다. 특히 임제선이어떻게 한국에 전해지며 보조선맥이 왜 조계종의 정통선맥이 될 수 없는지를 근거를 들어 밝히고 있다.
「선문정로」의 사상적 입장과 「한국불교의 법맥」의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주장을 빈틈없이 세우고 「본지풍광」에서는 선문의 1,700 공안에 수시垂示와 착어着語를 붙혀 훤출한 깨달음의 경지를 펴 보이고 있다. 그러면 여기에는 성철스님의 핵심저술인 「선문정로」를 간단히 언급하면서 스님의 돈오관을 살펴보기로 한다.

선문정로는 견성하면 곧 부처라고 선언한 것을 제일 첫머리에 내세우고 있다. “견성을 하면 즉 구경究竟의 무심경계無心境界가 나타나 약藥과 병病이 전부 소멸되고 교敎와 관觀을 함께 쉬게 된다”는 종경록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진여지혜의 무한한 광명은 언제나 법계를 비추지만, 중생이 번뇌망상의 어두운 구름으로 뒤업혀 이를 보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늘에 구름이 없어지면 푸른 하늘이 드러나 밝은 해를 보는 것과 같이 극히 미세한 상념(삼세三細)까지 남김없이 다 없애면 확철히 깨쳐 진여인 본래 성품을 환히 본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일체망념이 끊어져 없는 것을 무념 또는 무심이라 부른다하고 곧 이를 가리켜 무여열반이며 묘각妙覺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여기에 원효스님과 현수스님의 기신론소를 인용하면서 묘각에 이르지 못한 금가유정인 등각等覺도 부처님의 가르침과 법의 약이 필요하다고 단호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진리를 깨닫는 다는 것은 바로 진리 자체로 현성되는 것이다. 진리와 진리를 요해하고 파지하려는 사람이 이분법적으로 분화되면 그것은 진리를 바로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선문에서는 견성하면 그 자리가 바로 무심이 되어야 하고 무심이 바로 견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무심의 자리는 주객이 일치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약과 병이 함께 소멸된 현장인 것이다.
이어서 제2장인 중생의 부처 성품을 말하는 것에서는 일체중생이 갖추고 있는 진여본성은 모든 부처님의 과덕을 원만하게 갖추었으므로 이것을 불성 법성 불심 불지 등으로 부른다 하고, 이 불성은 광대 무변한 지혜의 덕을 완전하게 갖춘 모든 부처님이나, 극악 중죄인 五逆罪나 십악十惡 내지 일천제一闡堤 인 중생까지도 원만하게 갖추고 있으므로 여래와 중생의 차별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근이 끊기어 없어진 일천제라도 불성만 바로 보면 모두 성불하니 이것이 불교의 생명이요, 뛰어난 특색이라고 천명한다.
제4장 무상정각無上正覺, 제5장 무생법인無生法忍, 제6장 무념정종無念正宗에서 비로소 자신의 이념적 틀인 돈오돈수의 사상을 이끌어 오고 있다.
여기에서 “나의 본성, 즉 부처성품은 삼세여래의 궁극의 비밀스런 보배창고인, 만일 무상정각을 얻으면 나의 본성을 원만히 깨쳐서 발게 알게 된다.”는 열반경의 내용이 인용되는데 이는 견성이란 원만히 깨침(원증圓證)이며 완전한 깨침(돈증頓證)인 증오, 즉 구경의 깨침을 나타내는 것이니, 구경의 깨침이 아닌 부분적 깨침(분증分證)이나 이해적 깨침(해오解悟)를 견성이라는 주장하는 이단의 잘못된 견해에 현혹되지 말 것을 극력 주장한다.
다시 무생법인 장에서 “성문은 부처님의 성스런 마음을 모르는 공정空定에 머물러 있고, 보살은 공空(인공人空)에 빠지고 적寂(법공法空)에 막혀서 불성을 보지 못한다. 만일 근기가 뛰어난 중생이라면 홀연이 선지식의 지시를 받고 말 끝에 분명히 알아차려 다시는 계급과 지위를 거치지 않고 본성을 단박에 깨친다.”고 하는 마조어록을 인용하여 선문의 수승한 특색인 돈오본성(본성을 단박에 깨친다.)을 구경각인 진정한 깨침(증오證俉)으로 말한다. 또한 “오직 자성 보는 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가서 삿된 주장을 부순다.”는 육조단경을 선문의 제일의 지침으로 제시하며, 고금의 불조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 돈오견성법이 불조의 생명이요, 정법의 골수가 됨을 자신의 사상적 근저로 설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오매일여와 사중득활 장에서는 화두삼매의 경지가 어디까지 가야하고 어떤 상태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하는데 특히 오매일여만 이루어 가지고는 절대 자유자재한 견성의 위덕을 발휘하지 못하고 반드시 사중득활하는 활발발한 경지로 번디쳐 나와야 한다고 하였다.
제10장인 대원경지와 제11장 내외명철 제12장 상적상조에서는 흔들림 없고 수정구슬처럼 안팍이 투명해서 일체의 망상 티끌이 모두 없어진 구경 묘각의부처 자리를 증득한 깨달음을 설파하고 있다.
선문정로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장이 제13장 해오점수부터이다. 성철스님은 선수행에서 해오의 입장을 철저하게 혐오하고 있다. “깨달은 뒤에 또다시 닦을 걱이 있다.”는 식의 미지근하고 모호한 수도 방법을 호되게 쳐부수고 있다. 무여열반의 구경 묘각을 철증하지 못하면 깨달음을 얻었다해도 법문을 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이 법을 물을 때도 대답하지 못한다고 확언한다. 왜냐하면 처음 깨쳤다고 하는 것은 깨달음의 완숙이나 원만성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초견성에 비할 수 있는 미완성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성철스님께서 선문의 앞날을 염려하여 불타정심佛陀正心의 연꽃을 들어 올리는 이 모든 것은 이제 남은 이들의 몫이다. 투철한 수행자가 나와 성철스님의 고준한 경지를 이어야 할 것이며, 수 많은 사람들은 스님의 가르침을 이어 정각의 큰길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