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정로는 견성하면 곧 부처라고 선언한 것을 제일 첫머리에 내세우고 있다. “견성을 하면 즉 구경究竟의 무심경계無心境界가 나타나 약藥과 병病이 전부 소멸되고 교敎와 관觀을 함께 쉬게 된다”는 종경록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진여지혜의 무한한 광명은 언제나 법계를 비추지만, 중생이 번뇌망상의 어두운 구름으로 뒤업혀 이를 보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늘에 구름이 없어지면 푸른 하늘이 드러나 밝은 해를 보는 것과 같이 극히 미세한 상념(삼세三細)까지 남김없이 다 없애면 확철히 깨쳐 진여인 본래 성품을 환히 본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일체망념이 끊어져 없는 것을 무념 또는 무심이라 부른다하고 곧 이를 가리켜 무여열반이며 묘각妙覺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여기에 원효스님과 현수스님의 기신론소를 인용하면서 묘각에 이르지 못한 금가유정인 등각等覺도 부처님의 가르침과 법의 약이 필요하다고 단호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진리를 깨닫는 다는 것은 바로 진리 자체로 현성되는 것이다. 진리와 진리를 요해하고 파지하려는 사람이 이분법적으로 분화되면 그것은 진리를 바로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선문에서는 견성하면 그 자리가 바로 무심이 되어야 하고 무심이 바로 견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무심의 자리는 주객이 일치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약과 병이 함께 소멸된 현장인 것이다.
이어서 제2장인 중생의 부처 성품을 말하는 것에서는 일체중생이 갖추고 있는 진여본성은 모든 부처님의 과덕을 원만하게 갖추었으므로 이것을 불성 법성 불심 불지 등으로 부른다 하고, 이 불성은 광대 무변한 지혜의 덕을 완전하게 갖춘 모든 부처님이나, 극악 중죄인 五逆罪나 십악十惡 내지 일천제一闡堤 인 중생까지도 원만하게 갖추고 있으므로 여래와 중생의 차별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근이 끊기어 없어진 일천제라도 불성만 바로 보면 모두 성불하니 이것이 불교의 생명이요, 뛰어난 특색이라고 천명한다.
제4장 무상정각無上正覺, 제5장 무생법인無生法忍, 제6장 무념정종無念正宗에서 비로소 자신의 이념적 틀인 돈오돈수의 사상을 이끌어 오고 있다.
여기에서 “나의 본성, 즉 부처성품은 삼세여래의 궁극의 비밀스런 보배창고인, 만일 무상정각을 얻으면 나의 본성을 원만히 깨쳐서 발게 알게 된다.”는 열반경의 내용이 인용되는데 이는 견성이란 원만히 깨침(원증圓證)이며 완전한 깨침(돈증頓證)인 증오, 즉 구경의 깨침을 나타내는 것이니, 구경의 깨침이 아닌 부분적 깨침(분증分證)이나 이해적 깨침(해오解悟)를 견성이라는 주장하는 이단의 잘못된 견해에 현혹되지 말 것을 극력 주장한다.
다시 무생법인 장에서 “성문은 부처님의 성스런 마음을 모르는 공정空定에 머물러 있고, 보살은 공空(인공人空)에 빠지고 적寂(법공法空)에 막혀서 불성을 보지 못한다. 만일 근기가 뛰어난 중생이라면 홀연이 선지식의 지시를 받고 말 끝에 분명히 알아차려 다시는 계급과 지위를 거치지 않고 본성을 단박에 깨친다.”고 하는 마조어록을 인용하여 선문의 수승한 특색인 돈오본성(본성을 단박에 깨친다.)을 구경각인 진정한 깨침(증오證俉)으로 말한다. 또한 “오직 자성 보는 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가서 삿된 주장을 부순다.”는 육조단경을 선문의 제일의 지침으로 제시하며, 고금의 불조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 돈오견성법이 불조의 생명이요, 정법의 골수가 됨을 자신의 사상적 근저로 설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오매일여와 사중득활 장에서는 화두삼매의 경지가 어디까지 가야하고 어떤 상태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하는데 특히 오매일여만 이루어 가지고는 절대 자유자재한 견성의 위덕을 발휘하지 못하고 반드시 사중득활하는 활발발한 경지로 번디쳐 나와야 한다고 하였다.
제10장인 대원경지와 제11장 내외명철 제12장 상적상조에서는 흔들림 없고 수정구슬처럼 안팍이 투명해서 일체의 망상 티끌이 모두 없어진 구경 묘각의부처 자리를 증득한 깨달음을 설파하고 있다.
선문정로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장이 제13장 해오점수부터이다. 성철스님은 선수행에서 해오의 입장을 철저하게 혐오하고 있다. “깨달은 뒤에 또다시 닦을 걱이 있다.”는 식의 미지근하고 모호한 수도 방법을 호되게 쳐부수고 있다. 무여열반의 구경 묘각을 철증하지 못하면 깨달음을 얻었다해도 법문을 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이 법을 물을 때도 대답하지 못한다고 확언한다. 왜냐하면 처음 깨쳤다고 하는 것은 깨달음의 완숙이나 원만성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초견성에 비할 수 있는 미완성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성철스님께서 선문의 앞날을 염려하여 불타정심佛陀正心의 연꽃을 들어 올리는 이 모든 것은 이제 남은 이들의 몫이다. 투철한 수행자가 나와 성철스님의 고준한 경지를 이어야 할 것이며, 수 많은 사람들은 스님의 가르침을 이어 정각의 큰길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