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4일 종정 성철 대종사께서 열반에 드신 뒤, 해인사는 불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크나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예로부터 다른 사람의 죽음을 함께 슬퍼해 온 이 민족의 심성 탓도 있지만, 그렇다고만 보기에는 그 관심의 폭이 비할데 없이 지대하다. 그것은 진실에 대한 열망이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 아직도 끊어지지 않고 샘솟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철대종사는 열반으로써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어 그 조차 감당키 어려운데 마지막으로 사리를 나투셔서 또 한번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지금도 영하의 날씨인데 밖에는 경향 각지에서 온 참배객의 발길이 이 킬로미터가 넘게 줄지어 서서 그 정성을 짐작케 한다.
성철 대종사께서 열반에 드신 4일부터는 대종사의 일생에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지금은 사리란 무엇인지에 더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사리는 범어로 Sarira라인데 중국에서 설리라設利羅, 실리라實利羅라고 음역했고 우리는 이를 번역하여 신골身骨, 유신遺身, 영골靈骨이라 한다.
이 사리는 한량없는 육바라밀을 닦는 공덕과 계정혜 삼학을 수행하여 생기는 매우 얻기 어렵고 제일가는 복전福田이된다고 금광명경에 밝히고 있다. 이러한 사리는 전신사리全身舍利, 쇄신사리碎身舍利, 생신사리生身舍利, 법신사리法身舍利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전신사리는 법화경에 나오는 다보불多寶佛 과 같이 전신이 그대로 사리인 것을 말하고, 쇄신사리는 석가모니불의 사리처럼 몸에서 나온 낱 알로 된 것을 말하며, 생신사리는 여래가 멸한 뒤에 전신사리와 쇄신사리를 남겨 두어 인간과 천상이 공양할 수 있게 한 것을 말한다. 오늘날 화장한 뒤에 나오는 구슬 모양의 사리가 그것이다. 법신 사리는 대승, 소승의 일체 경전을 일컬어 붙여진 것이다. 본디 신골이나 신체, 또는 사시死屍 유골의 뜻이 있어 dhatu 타도馱都 로써 계界라 번역하고 요소要素의 뜻을 가지기도 했다. 보통 석존의 유골인 불사리佛舍利를 말하고 이러한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한 보탑을 사리탑이라 해서 우리나라의 사찰마다 이러한 탑을 중심으로 하여 가람을 설치하고 있다. 신라시대의 자장 율사가 부처님의 사리를 특별한 성물로 예경해서 오대보궁에 봉안한 뒤 예전부터 참배를 가는 것은 특별한 감음을 받는 것으로 여겨 오고 있다. 탑에 봉안할 때 사리를 넣는 병을 사리병, 사리 장엄구라고 하여 지금까지 여러 곳의 사리병과 장엄구들이 알려져 오고 있다.
불사리를 공양하는 법회를 사리친견법회 사리강舍利講, 사리보은강舍利報恩講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종정을 지내신 효봉스님께서 밀양 표충사에서 앉은 채로 열반에 드셔서 서울에서 국장처럼 영결식을 치르고 화계사에서 다비를 하였는데 그 때부터 스님네의 사리 출현에 대한 열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큰스님의 가풍마다 달라서 죽은 뒤에 사리를 수습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유촉이 있으면 수습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더욱이 선종에서는 이러한 사리 숭배를 불교의 근본 교의에 어긋난다는 뜻에서 철저하게 배제하여 왔다. 중국의 목주 화상 같은 이는 자기가 들어갈 관을 짊어지고 네 번이나 자신의 죽을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죽음을 연기하다가 아무도 오지 않고 나무꾼만 있는 곳에서 열반에 들었는데, 이는 생과 사를 자유자재로 나타내 보이신 예이다. 동리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가서 관 뚜껑을 열어 보니 목주스님의 시체가 없었다. 모두 이상하게 여기는데 하늘에서 목주스님의 특유의 평소 행적 소리가 들려 오고 향기가 주위를 진동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는 삼국유사에도 나온다. 혜공스님은 항사강 - 지금의 포항 근방의 오어사 - 가에 살았는데 화랑들이 썩어 구더기가 바글거리는 혜공스님의 시체를 보고 너무나 처량하고 안타까워서 관이라도 사다가 넣어서 묻어 드리려고 시내로 들어오다가 길가에서 혜공스님을 만났다. 어느 재 지내는 집에서 점심을 얻어 잡수시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여 확인해 보닌 과연 재 지내는 집을 다녀갔다고 했다. 급히 시체를 보았던 산으로 가 보니 시신은 없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생사에 자재하는 공부에는 사리를 남겨 현혹케 해서는 안 된다는 배려가 깔려 있는 듯하다.
유교경에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일체 중생을 측은하게 여기시는 뜻에서 당신의 유골인 사리를 남기셔서 여덟 섬 네 말이나 되는 많은 사리가 인간과 천상에 복전이 되고 있다고 적혀 있다. 그 뒤에도 사리불 목련존자 같은 이나 남방의 많은 스님들의 사리가 전해 오지만 이 모든 것은 인생이 무상하고 사바세계는 그대로 고통의 바다임을 알고 하루 속히 이 괴로움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공부를 하고 나니, 어떤 징후들을 보여주지 않고서는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믿음을 갖게 하는 수단으로써 시현해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근대의 큰스님인 용성 대종사께서는 살아 계실 때 사리가 나와서 지금도 해인사 용탑에 모셔져 있는데 그 사리는 상궁이 수습해 가지고 있으면서 저녁마다 기도할 때면 모시곤 했는데, 하룻밤에는 방광을 해서 서울 남산의 소방서에서 화재가 난 줄 알고 경복궁까지 세 번이나 출동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또 해인사 퇴설당에서 공부하던 어떤 스님은 살아서 사리가 나와서 늘 주머니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젊은 수행자들에게 자라하였는데, 한 해 여름에는 젊은 수좌가 노스님의 주머니 속에서 몰래 사리를 꺼내 백련암 밑의 큰 바위 아래 단지에다가 묻어 두었다. 그러곤 그 젊은 스님이 사리를 보자고 노스님을 채근하니 사흘 뒤에 보여 준다고 했는데 과연 사흘 뒤에 본디 자리로 되돌아가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사리는 자유자재로 왕래하고 때로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분신 - 여러 개로 나뉘어지기도 함 - 하기도 한다.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불의 명호는 이러한 뜻도 포함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경전에서는 사리에 대하여 말하기를 머리카락 같은 데서 나오는 사리는 색깔이 검고, 살에서 나온 것은 붉고, 뼈에서 나온 것은 희다고 되어 있다. 지난해 자운 율사의 사리는 19과였는데 척추속에서 여러 과가 박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산스님은 53과가 나왔다. 이번 성철 대종사의 사리는 뼈 속에서 나온 것이 많았으며 사리화舍利花도 많아서 사리를 수습했던 큰스님들이나 시봉들은 환희심에 충만했었다.
법신사리는 법송사리法頌舍利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이 남기신 교법을 사리라고 일턷는 경우이다. 그래서 지금도 사찰에 건립된 탑에는 법신사리를 봉안하는 경우가 많다.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의 진성공품眞性空品을 해석한 원효는 사리불<범어Saiputra>이 부처님께 “보살도를 닦는 데에는 이름과 모양이 없고 삼계三戒라는 위의도 없는데 어떻게 이것을 거두어 잡아 중생들을 위해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묻는 부분에서 진여의 법은 온갖 공덕을 갖추고 있으며 온갖 행덕의 본성인 까닭에 진성이라 하고, 이 진성은 이름과 상을 초월하였으며 진공이라 한다. 이 진성은 상을 떠나고 성을 떠난 것이다. 허망한 상을 떠났기 때문에 허망한 상이 공하고, 진실한 성을 떠났기 때문에 진실한 성도 공한 것이므로 진성공이라 한다. 이제 신자身子사리불은 신골에서 나온 아들인바 “모든 법행은 법신에서 나온다” 고 말한 부분을 인용하여 사리불의 이름은 부처님의 사리에서 따온 것이라고 은근히 밝히고 있다.
앞에서 밝혔듯이 우리 시대는 거짓에 미만되어 있으므로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정치인이나 경제인, 사회의 어느 한 곳도 의심스럽지 않는 곳이 없기에 진실된 모습, 참된 수도자의 자세에서 우리의 본 모습을 밝혀 보고자 한 것이 바로 사리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졌으리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뜻은 성철 대종사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당신은 이러한 사실을 미리 짐작했기라도 한 듯이 열반송에서도 첫머리에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였다.”
그것은 당신이 뼈를 깎는 수행의 근본을 삼았던 삼취계三聚戒나 도품道品, 반야般若, 선정選定, 설법說法, 그 어느것 하나도 허망한 상을 떠나지 않음이 없다는 사실을 역설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철 대종사가 열반에 드시고 벌써 삼 주일이 되었다. 아직도 영결식을 치른 나의 마음 속에는 그 바쁨으로 해서 열반에 대한 실감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새로이 성관 혜암스님을 방장으로 모시고 퇴설당에서 “저희들을 잘 이끌어 다시 매하지 않도록 지도해 주소서”하는 예배를 드리면서도 내게 성철 대종사의 열반이 다가서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법구에서 나온 사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도둑놈아 밥값 내 놓아라.”
해제 때마다 벽력처럼 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는 뭘 훔쳐 갔다고 매번 그런 말씀인가 불만스러웠는데, 이제 마지막 사리 출현으로 “내 법까지 훔치는 도둑놈들”하고 외치고 계시는 것 같다.
인과 연으로 생기는 이치
이 이치는 멸하고 생기는 것 아니다.
모든 생과 멸을 멸하는 이치
이 이치는 생기고 멸하는 것 아니다.
「금강삼매경론」
무관스님은 월정사로 출가하여 해인강원을 나왔다. 대구 은적사 부설 룸비니유치원장을 거쳐 해인강원 강주를 역임했으며 지금은 해인사 교무 소임을 맡고 있다.
불교의 새로운 장을 여는 해인사대장경연구소
세계적인 민족문화 유산이자, 불교 성보인 고려팔만대장경에 담긴 선조들의 얼을 오늘에 계승하여 다가오는 정보화 사회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기 위하여 ‘고려대장경의 전산화’와 ‘대장경의 발전’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갖고 “해인사대장경연구소”가 설립되었습니다.
대장경연구소는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일본과 대만 그리고 미국 등 외국에서도 불고 경전의 전산화를 위하여 많은 재정과 인력이 투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의 전산화에 대한 이해는 무척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강원교재연구프로그램과 120만 자의 입력데이타, 고려대장경 대반야부 200만 자 입력데이타를 확보, 불교학, 중문학, 한학을 전공하는 스님과 국내의 우수한 학자들로 구성된 검정위원회를 구성, 입력데이타의 교정을 위한 이체자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연구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대장경 전산화는 불자들의 신심과 동참이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칠백 년 전81,258판의 목판대장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칠백년 만에 대장경불사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선조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 자의 오자도 없는 뛰어난 프로그램의 전자대장경을 만들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이 우리 불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대장경 불사는 불자들의 신심과 원력이 바탕이 되어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장경불사 동참 방법
후원회 가입
일반회원/10만원, 특별회원/100만원(10회 분할, 은행 온라인이나 지로 이용)
교정자원 봉사 요원 참여
대장경 교정자원봉사자 참여 신청/ 전화. 서신접수
교정자원봉사자 연수교육 실시/12월 17일 ∼ 19일 (2박 3일)
인원/1차 연수 인원25명